6년간 매주 1회씩 신문 한면을통째로 채운다는것 어려웠지만잘 마무리한데 안도감·자부심때론 취재 내용으로 비난 받았고다 쓴 원고 못싣거나 부상입기도울산 언론사 정리에 사명감 느껴재충전 후 정리작업에 몰두할것“잠시 숨고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못다한 일도 챙기고, 여행도 다니면서, 다음 작업을 구상해야 겠지요.”지난달 300회를 끝으로 본보 ‘인물로 읽는 울산
해방전후 독립운동·좌우익 투쟁속많은 인물들 명멸했지만 기록 없어울산의 전설들, 역사로 재탄생울산을 빛낸 인물부터 악인까지본 글 통해 250여명 이상 언급전국각지·일본까지 오가며 취재질타와 격려속 조심스레 글 써미처 언급하지 못한 인물도 있어문화계 박영출, 광폭적 조명 필요‘인물로 읽는 울산유사’가 300회로 마침표를 찍는다. 신문스크랩을 뒤져보니 처음 연재
해방후 부산서 발행되던 신문으로초기엔 민주중보로 발간1950년 2월부터 민주신보로 개명경영악화 타개책으로 울산지사 낸듯울산 각계인사 참여한 좌담회와당시 울산 대표산업이었던장생포 포경·어획량등 기사로 소개세무행정·밀주·교육 문제도 담아해방 직후 부산일보, 국제신문과 함께 부산에서 발간되었던 민주신보의 울산 특집판이 최근 발견되어 울산 언론계의 관심을 끌고 있
지역 문학·언론인 이용우씨의 장남이상걸 재경향우회 부회장이 소장창간호 이후 책자 발간되지 않아김태근씨의 ‘울산읍의회에 고함’이용우씨의 김수선의원에 ‘정서’지역 정치인 비판하는 글로 주목1955년 김태근·이상숙·이용우 등 당시 울산의 대표적인 문인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잡지 (활로) 창간호가 발견되어 울산문화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이 잡지는 해방 전후
일제강점기 조선 대표했던 유림… ‘1차 유림단’ 사건 주도아들 찬기가 손후익 딸과, 딸 덕기가 이재락의 아들과 혼인심산, 요양차 범서읍 손후익 집·성안동 백양사에 머물렀고독립군자금 모금에 나섰을땐 웅촌의 사돈 이재락 집 찾기도‘김창숙선생기념사업회’가 을 출간했다. 이 책은 지난 해 연말 심산(心山)
1930년대 울산서도 신파극 시작해방후 애국투사들 주제로 공연김선줄씨가 창단한 진달래 극단병영 영남여관서 오랫동안 공연후에 영화상영·선거본부로 사용한때 성황 누리던 울산지역 연극60년대 영화관 들어오자 사양길2000년 전국연극제로 반짝 인기인간은 배우고 세상은 무대’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연극 속에 인생의 희노애락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연극의 역사를 말하면
사성공파 재실 모운재 상량식에최형우 전 내무부장관등 참석문중 출신 유명인 새긴 비도 세워두서면 출신 울산문사 최예 선생조선시대 학문으로 입신한 문사로울산의 귀한 문화자산임 기억해야지난 7일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의 고향인 울주군 서생면 위양리에서는 경주 최씨 사성공파 재실인 모운재(慕雲齋) 상량식이 있었다. 이날 행사에는 사성공파 시조 최고운의 31세손인
젊은 시절 울산체육회에 헌신했던 대륙 선생50대후반부터 수감·출소자의 복지 위해 노력1994년 숨거두며 그들 돌보라고 자녀들에 유언아들 수만씨, 부친 장례식때 받은 부조금으로도서 1200여권 구입…울산구치소 도서관 개관울주군 청량면 문죽리에 있는 울산구치소는 현재 6000여권의 도서를 갖추고 독서를 통한 수감자들의 정서순화에 힘쓰고 있다. 그런
사이공서 中식당 운영하던 부잣집 딸현지서 한국인 남편 만나 2남2녀 낳고월남 패망때 남편과 한국 넘어왔지만한국인 아내 있는것 알게돼 망연자실장사·막노동 등 험한일하며 가정 꾸려나중엔 병든 남편·본부인 자녀 돌보며뒤늦게 우리말 배우고 한국 국적 얻어1992년 한-베트남 수교후 활동폭 커져벚꽃이 휘날리는 4월을 항상 잔인하게 맞이해야 하는 사람이 울산에 있다.
간송, 1921년 울주군 웅촌서 태어나어릴적 일본서 생활하다 해방후 귀국1951년부터 마을문고사업 시작자신의 책으로 무료도서관 열고먼곳엔 책 보내는 순회문고도 운영1980년 막사이사이상 수상받은 상금으로 간송도서관상 제정1967년 정부 지원 끊겨 어려움 겪자이후락 찾아 이사장직 부탁, 수락받아1970년 주일대사로 갈때까지 육성시켜오는 4월26일 개관하는 울
2천여만원 상당 건립비용 모금운동나머지는 15대 김영균 회장이 부담1982년 8월15일 태화강변 JC공원에이후 태화강에 강변도로 생기면서1998년 중구 북정공원으로 이전 후시립미술관 공사로 중구청에 보관미술관 완공후 북정동 우체국 자리에독립운동공원 조성해 이전 계획울산시는 옛 울산초등학교에 미술관 건립하면서 북정공원에 있던 고헌 박상진 의사 동상을 잠시 다
둘 다 일산진에 큰 어장 경영하며항일운동 벌이기위해 사회단체 가담기자로 활동하며 신문지국 운영세빈, 1938년 보성학교 폐교에 항거46세로 분사…여운형 선생도 참석세륭도 ‘독립운동가’ 기록 있어향토사학자가 공훈서 상신했지만신간회 활동후 구체적 행적 없다며형제 둘 다 미서훈자로 남아최근 들어 울산항일독립운동기념탑을 세우기 위해 구성된 건립자문위원
1937년 울산 태화동서 태어나울산초-제일중-울산농고-해사 거쳐월남전에 의전관겸 행정장교로 참전고교때 백일장서 장원했던 문학도로일기 통해 월남의 생생한 현실 기록손영길 장군과의 만남도 일기에 남겨해군 장교로 있으면서이후락 실장·손 장군과 인연 맺어책 후기에 故김호경 중위 이야기도울산 출신의 권정식 전 제독이 월남참전기 을 출간했다. 권
할아버지 김한경때부터 천석꾼 부자로울산 전역에 많은 전답 소유서울서 중·고교·전문학교 졸업후부산 수산대학 거쳐 고향 울산에 정착학교 교사, 수협, 정치판 등에 헌신출마는 안했지만 평생 야권에 머물며선거에 나선 친구·후배들 도와“공허한 세월…주위에 감사” 짧은 유언화장후 종교·추모의식 갖지말것 당부18일 김창식 옹이 향년 93세로 별세했다. 흔히
80년대초 울산·울주대학생연합회서울산 최초 공공도서관 건립 여론몰이각계에 건립 취지문·성명서 보냈지만긍정적 반응에도 구체적 답변 못받아성남동서 시민상대로 캠페인 벌이다오흥일 회장 등 경찰서 연행되기도1984년 8월 북정동에 도서관 들어서울산시립미술관 건립을 위한 주변 환경 정비작업으로 지난 달 울산중부도서관이 철거됐다. 그러나 울산 최초의 공공도서관인 이
울산 출신으로 어릴적부터 미술에 두각중학생시절엔 부산 동아국제미전 입상고교땐 도내 미술대회 휩쓸어 유명해져2000년대부터 본격 해외전 국제적 명성활발한 작품활동과 달리 은둔생활 즐겨삼남면 작업실서 교류없이 지내다 영면심수구 작가가 지난달 20일 타계했다. 고인은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죽음을 외부에 알리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장례식도 영정사진도 없이 형
1926년 북정동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진주사범 진학, 울산서 교사 생활중6·25전쟁 발발 동생과 전방 입대 자처전후 일본어 잘해 육군본부에 배치5·16후 군정에 참여한 김종필과 친해져육군 소령 제대 등 출세의 길 열렸지만군수직 뿌리치고 울산여고 교사로 근무교육계 고위직도 사양, 교감으로 퇴직퇴임후 임진왜란 관련 연구에 심혈연구차 日구마모토·학성공원 자주 찾
울산서 유명했던 뱀장수 김해술씨남녀노소 이름 부르며 친근했던 인물뱀탕을 많이 먹어 몸에 열이 많아겨울에도 러닝셔츠만 걸치고 다녔지만아이러니하게도 동사로 생 마감군시절 고문으로 지적장애 가졌다 말해'인물로 읽는 울산유사’를 6년 가까이 쓰면서 독자들의 가장 많은 요청 중 하나가 해술의 행적을 취재해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많은 독자들은 해술이가 왜 요즘
1920년 울산서 태어난 이 교장대부분의 교사 생활 울산서 보내검소하고 도덕적인 모습 존경받아차녀 이정미 전 재판관도 울산 출생대현초-학성여중 거쳐 마산으로“탄핵 선고하는 모습, 부친 닮아”이재만 교장은 비록 고인이 되었지만 딸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 때문에 유명 인물이 됐다. 이 전 재판관은 지난 해 3월10일 헌재소장 권한대행 신분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중구 ‘젊음의거리’ 넝마꾼 집중적 거주‘거지-문학소녀 결혼’으로 전국에도 소개결혼 말린 신부부모도 ‘천생연분’ 인정독지가 도움으로 안정된 일자리까지 찾아동원예식장 지으며 1965년 넝마촌 사라져일부 넝마꾼 태화교 밑에서 생활 이어가해방을 전후해 우리나라에는 넝마주이가 많았다. 넝마꾼으로도 불린 이들은 헝겊과 헌 종이, 박스, 빈병 등 길가에 버려져있던 물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