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고요한 백사장 위에발자국 흔적 하나 남아 있었네파도가 밀려와 그걸 지우네발자국 흔적 어디로 갔나?바다가 아늑히 품어 주었네 온갖 사람들이 모두 몰려나와 바글거리는 바닷가, 육체의 에너지가 폭발하는 계절, 그래서 8월의 바다는 고독하다 했던가요.행복과 불행, 풍요와 빈곤, 군중속의 고독이라는 모순 때문이라고도 하지
남창에 가면청부살인하며 먹는 국밥집 있다그 감칠맛 그리워지는 날엔동해남부선 기차에 얹혀덕하역 지나 남창역에 내려남창시장 초입 국밥집에서족히 한 시간 넘게 줄서남창막걸리 한 잔 곁든기적소리에 말아 먹는따로국밥 한 그릇-중략-여기저기 죽여줘 죽여줘청부살인하며 먹는그 맛 천하일미다 올 여름 불볕더위의 위용이 대단합니다. 에어
여차하면 가리라옷깃만 스쳐도발자국 소리만 들려도너에게 확 옮겨 붙으리라옮겨 붙어서 한 열흘쯤두들두들 앓으리라살이 뒤집어지고진물이 뚝뚝 흐르도록앓다가 씻은 듯이 나으리라-생략- 화락 타오르는 불의 색을 띤 나무, 그리고 속에서 끓어 넘치는 나무, 사랑의 속성을 묘파한 나무로 손색없이. 바라만 봐도 휘발유 먹은 숨결은 확
몸은 쥐어짜 봐야각설탕 하나만큼의 당분과닭장 하나 칠할 수 있을 정도의 석회질과장난감 카메라 플래시 한 방 터트릴 칼륨과감기약 일 회분 정도의 마그네슘성냥개비 2200개를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인과비누 일곱 장을 만들 수 있는 지방으로기껏 이루어져 있다는데어디서 오는 것일까캄캄하게 앞산을 가로막는 이 그리움의 질량은 아
사람들은 참 아무것도 모른다.밭 한 뙈기 논 한 뙈기그걸 모두 ‘내’거라고 말한다.이 세상 온 우주 모든 것이한 사람의 ‘내’것은 없다.하나님도 ‘내’거라고 하지 않으신다.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생략- 본시 내 것은 없다는 뻔한 것 조차도 모르고 사는 우리들입니다. 내 땅, 내 집, 내 차, 내 아이, 내
늘하품만 한다고머리통쥐어박지 마세요.늘품고 있는 게 있다고요,에디슨처럼.‘꼴통!’이란 말정말 듣기 싫어요.이렇게 불러 주세요, 아빠.‘늘품!’ 늘품! 이 무슨 말인가 했더니 ‘앞으로 좋게 발전할 품질이나 품성’이란 뜻이네요. 어감도 좋고 뭔가가 따뜻하게 다가오네요.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알이 깨어나기 전에는, 하나의
친구 따라빙글빙글 원을 그리다장독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고추잠자리너, 우리 고추장 먹었지?아니기는?꼬리까지 빨갛게 물들었는걸. 가을을 알리는 입추(立秋)가 지났는데도 한증막 같은 불볕 찜통더위는 여전하네요. 그런데도 이십사절기는 빈틈이 없다보니 벌써부터 아침저녁으로 귀뚜라미가 낄낄낄 머잖아 가을이 온다고 알리네요. 이보다
눈이 크고 얼굴이 까만나영이 엄마는필리핀 사람이고,알림장 못 읽는준희 엄마는베트남에서 왔고,김치 못 먹어 쩔쩔매는영호 아저씨 각시는몽골에서 시집와길에서 마주쳐도시장에서 만나도말이 안 통해그냥웃고만 지나간다.이러다가우리 동네 사람들 속에어울리지 못하면 어쩌나?그래도 할머닌걱정 말래.아까시나무도달맞이꽃도개망초도다 다른먼 곳에서 왔지만해마다 어울려 꽃피운다고.
아빠가 물었다-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은?미나가 대답한다-중국산-뭐?아빠가 놀란다아빠,우리나라에 있는 중국산그것보다 높은 산이 있을까요? 우리나라 산 중에 제일 높은 산이라? 누구나 번뜩 백두산이라 말하겠지요. 그런데 재치 있는 아이의 생각은 다르네요. 한라산, 지리산도 아니고 중국산이라 말하네요. 원산지의 표시로 산
간판이 동그란 빵집 앞을 지나갑니다.빵을 본 눈이 동그래집니다.고소한 빵 냄새를 맡은 코가 동그래집니다.빵, 먹고 싶어 말하는 입이 동그랗습니다.입안에 군침이 뽀골뽀골 동그랗습니다.꼬르륵, 소리가 동그랗게 납니다. 빵, 빵은 삶의 대명사나 다름없지요. 천하장사도 배고픔 앞에서는 이길 재간이 없는 것이 빵이고 보면, 빵
갑자기 모든 것이 낯설어질 때느닷없이 눈썹에 눈물 하나 매달릴 때올 사람 없어도 문 밖에 나가막차의 기적소리 들으며 심란해질 때모든 것 내려놓고 길 나서라.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물위를 걸어가도 젖지 않는 滿月(만월)같이어디에도 매이지 말고 벗어나라.-생략- ‘나를 기억할 때 또한 이것을 기억하라. 그대 안에서 가장
여름 한낮고요한 버스는 장의차 같네나를 운구해 가는 저 햇빛들의따가운 행렬나는 이런 상상을 하네즐거운 송장이 되어내가 안치되고 싶은 곳,가령 고슴도치가몸뚱일 박고 단물을 들이키는 수박의 농익은 살벌레가 들어앉은 풋살구그 발그레한 봉분그 부드러운 석실-생략- 죽음에 대한 성찰을 위해, 또는 삶을 돌아보기 위한 것으로 웰다
잊어 버렸다내가 왜 싸웠는지를잊어 버렸다내가 왜 울었는지를새들이 왜 날아가는지잊어 버렸다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이유를잊어 버렸다잊어 버렸다잊혀지는 것을 정보의 홍수 속에서는 단기 기억들을 붙잡지 못합니다. 잊는 것과 잊혀지는 것. 그래 그런지 기억이란 현상은 참 묘합니다.올 여름은 매우 무더울 것이라는 짜증의 경고음이 감
내 키가 작아지는 슬픔도내 몸에 칼을 대는 두려움도무서워하지 않겠습니다내 남은 생을 한 줄의 문장으로 풀어그대를 동여 맬 수 있다면슬픔도, 두려움도 즐기겠습니다 연필은 제 몸이 깎여 나가는 무수한 상처를 입으며 심心을 모조리 탕진하는 운명입니다. 뼈를 깎이는 거대한 공포 앞에서도 두려워 않는 것, 그것은 온 생을 던져서 하나의 문장을 완성하려는 결의의 고백
바람이 분다저절로너는 풀이고너는 나무이다바람이 또 분다저녁 바다저절로 파도쳐우리는 모두 무엇이 된다 이 세상 의미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주어진 능력으로 세상을 알아가고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들 갑니다. 삶과 죽음에 대하여, 또는 신과 인간, 예술, 역사, 자연과 우주에 대해서도 물음표를 던지
“우리 아기 얼굴빛이 왜 이렇지요?”엄마 사과가 아기 사과를걱정스럽게 들여다보았습니다.“편식이 심하군요”“일광욕도 자주 시키세요”.왕진 온 햇살이금빛 주사기를 뽑아들고아기 사과의 파아란 엉덩이에다꼭 꼭 찔렀습니다. 지금 사과농장에 가면 가지를 휘어잡고 주렁주렁 매달린 연둣빛 풋사과들이 한창 얼굴 화장을 하고 있네요. 작
보길도는몇 억 년 전 쥬라기공원이었을거야금방 깨고 나올크고작은공룡알이 셀 수 없이 많아어미 공룡들 사라졌어도정성 다해 보살피면틀림없이 깨어날 날 기다리며바다는밤낮없이 품고 쓰다듬는다.“아기공룡들아 빨리 나와 놀자!” 우리나라 땅끝마을이라 불리는 전남 해남. 그곳에서 여객선을 타고 오우가를 지은 고산 윤선도의 은거(隱居)
계란 반찬누나가 먼저 찍어 먹었다고울고형이빨리 먹는다고징징대면서식사 시간한바탕 전쟁을 치르는데가족이 많을수록집 안에 꽉 찬시끄러움도떠나고 나면소중하고 그리운 것인지달랑수저 두 벌목을 빼고 서 있다. 한집에 사는 가족은 때로 다투면서 정이 든다는 말이 있지요. 특히 꼬맹이 아우와 형이 그렇지요. 별것도 아니면서 트집을 잡
누구의웃음소리일까?참 시원하게 웃는다.산모퉁이를 돌자마자비로소 나타난하얀 웃음 실타래.눈앞으로 확 풀어지더니가슴속으로내리꽂히는세상에서 가장 큰웃음소리. 여름날 시원하게 쏟아붓는 폭포를 보고 표현하는 방법도 여럿이네요. 어떤 이는 선녀의 면사포라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깊은 물웅덩이에 천 년 묵은 이무기가 흰 뱀(白
밭매니껴?밭매니더고구마 잘됐니껴?잘됐니더점심은 잡샀니껴?국시 먹었니더안동 말만 듣다가땅속에서 나온 고구마가한마디 했답니다할매,내 어떠니껴? 같은 경상도라 할지라도 그 지역 특색이라 할 수 있는 억양이나 사투리가 조금씩 다르다 보니 때론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오기도 하지요. 경주 말씨에 “우리가 다리가(우리가 남이가.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