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울산의 중심인, 지금의 옥골샘 6길에는 허름하고 작은 음식점들이 즐비했다. 이 곳에서 사람들은 음식과 술을 나누며 고단한 하루를 내려 놓았다. 온갖 국물이며 파전, 빈대떡 등 이 골목의 음식들은 맛도 맛이거니와 주인장의 넘치는 정과 그에 비해 감사하리만치 저렴한 값으로 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70년대 중반 미나리 인기 업고술집·식당 70여곳 들어서
“미국 자동차산업의 중심지였던 디트로이트시가 여러 요인으로 산업과 도시 기능이 마비되었으나 노·사·민·관이 혼연일체가 돼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고, 무엇보다 노동조합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에 앞장 서는 모습에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김철 울산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 17일부터 22일까지 4박 6일간 일정으로 지역 기업체 노사, 한국노총,
UNIST 그래핀 연구센터(센터장 백종범)는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그래핀’을 연구하는 가장 핫(hot)한 연구센터다. 그래핀 단일 연구기관으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설립됐고 20명의 참여 교수를 포함한 최대 연구 인력과, 아시아 최초로 원자레벨까지 관찰할 수 있는 전...
1994년에 문을 연 (주)유성(울산시 남구 용잠동·대표이사 사장 류해열) 중앙연구소(소장 이재정)는 지역 중소기업에서는 비교적 오래된 연구소다. 20여년 동안 해마다 매출액의 5% 이상을 연구개발비를 투자하고 있는 회사의 든든한 후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연구...
1975,6년께 실개천 미나리꽝 위에 세워진 ‘미나리 카바레’ 주부들 장바구니 들고 찾아 골목길 줄서 차례 기다리기도 해외 파견근로자 많던 시대, 혼자있는 아내 춤바람 걱정도 요즘은 40~70대 사교댄스장 활용…술 안팔고 낮에만 영업 “수익 많이 줄었지만 찾는이 여전한데 마음대로 없앨 수야” ‘춤도 돌고, 돈도 돌고, 사람도 돌았다.’70년대
현대중공업 선박연구소는 기업체 부설 연구소들이 거의 없던 1984년 10월 선박해양연구소 이름으로 문을 연뒤 30년 가까이 선형 등 핵심 기술 개발을 통해 현대중공업이 세계 최고의 조선회사로 성장하는데 첨병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현대중공업이 세계 1위의 조선업체로 불...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자 제58회 현충일인 6일은 조국을 위해 산화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날이다.6·25전쟁 63주년과 정전 제60주년을 맞아 올해 울산시와 울산보훈지청은 시민들의 올바른 통일안보 의지와 숭고한 애국정신으로 민주시민사회를 구현할 각종 행사와 사업을 강화한다.이를 통해 국가유공자와 유족의 영예와 자긍심을 고취하고, 보훈대상자의 공헌
우리나라는 지난 2011년말 기준 국·공·사립 및 대학박물관이 총 694개관으로, 인구 7만3000명당 1개 박물관 수준에 이르렀다. 이는 선진국 수준에 버금가는 것이다.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 9월 문화체육관광부에 박물관 정책을 담당하는 전담부서로 ‘박물관정책과’를 ...
영남권 최대 시험인증기관인 KTR(화학융합시험연구원) 영남본부(본부장 이운기)는 울산지역의 가장 성공적인 R&D 기관 유치 성과 중 하나로 손 꼽히고 있다.2007년 3월, 중구 다운동 울산테크노파크 부지에 들어선 KTR 영남본부는 조선, 플랜트, 원자력, 풍력 및 신재생에너지, 금속, 소재 등 주요 기간산업에 대한 시험평가 및 인증,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
합천서 공무원 생활하며 차에 관심 가지기 시작공직 퇴임 후 울산서 차회 조직하고 차나무 연구과거 차인 행적 더듬은 것 회보 등에 글로 남겨태화강 개발과 함께 그동안 친환경 사업을 펼쳐온 울산시가 올해 봄 기쁜 소식을 전했다. 그동안 태화강에서 자란 차 잎을 제다해 울산을 찾는 외지인들과 시민들에게 선물한다는 것이었다. 풀과 나무 사이에 인간이 있는 모습을
일제강점기 울산 사람들 대부분은 가난하게 살았다. 당시 울산 사람들은 주로 농사를 짓고 어업을 했는데 농민들은 많은 토지를 일본인들에게 빼앗겼고 어민들은 일본 대형 어선들의 울산항 진출로 구차한 삶을 살아야했다. 이처럼 대다수 울산인들이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 때도 멋쟁이 생활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울산에서 가장 멋지게 살았던 사람들이 누구였을까. 많은 사람
1920년대 방어진·1937년 울산에영화관 들어서 지역민에 큰 인기대구서 영화사업한 사위 권유로 고기업, 성남동 극장 건립 ‘큰돈’ 유명 배우·가수 등 불러 공연도손자 고원준 호텔 건립하며 매각요즘은 집집마다 텔레비전이 있어 영상 문화가 대중화되었지만 70년대까지만 해도 종합예술로 영화만큼 울산시민들을 감동시킨 것도 없다.울산에서 영화관이 문을 연 것은 일
60~70년대 울산에서 살았던 사람들 중 오석봉, 조덕구, 이철응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오석봉은 줄 담배로, 조덕구는 신문 읽기로, 이철응은 술을 많이 마셔 당시 울산시민들 사이에 회자되었다. 이들은 잠을 자고 밥을 먹는 시간을 빼고는 하루 종일 담배를 피우고 신문을 읽고 술을 마셨다. 당시만 해도 별다른 오락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성남동과 옥교
[경상일보=이형중 기자] 울산시의회(의장 서동욱)는 올 들어 첫 임시회인 제151회 임시회(2월18일~2월28일)를 시작으로 제152회 임시회(3월12일~3월21일)를 통해 집행부로부터 올해 주요업무계획을 보고 받고 시 및 교육청의 주요현안에 대한 행정사무처리상황보고 청취 및 각종 조례안 심의과정을 거치면서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질의와 현장 활동을 벌였다
일제강점기 주요 배 산지인 대현면 출신 부잣집 아들로조선 최고명문 서울제일고 졸업신간회·울산노조운동 등 식민지 지역민 권익찾기에 앞장읍의원·신문기자로 활동하면서울산농고 승격·물 문제 등 해결배농사 지으며 농사기술도 좋아묘종품평대회서 최고상 받기도김활천(金活天)은 울산이 낳은 수재로 일제강점기에는 조형진(曺亨珍) 박병호(朴秉鎬) 강철(姜鐵)과 함께 일제 식민
1950년께 울산초 앞 약국 개업시계탑 사거리로 이전후 성업울산지역 여론의 구심점 역할市약사회 초대회장으로 활동1965년 고혈압으로 54세 타계범석(凡石) 오원근(吳洹根)은 우리나라에서 주는 정식 약사자격증을 갖고 울산에서 약국을 개업한 최초의 약사다. 우리나라에 신약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된 것은 1910년 경술국치를 전후해서다. 이 무렵 조선에 거류하는
이관술 교사시절 학생으로 인연, 항일운동 동참1931년 보성학교 근무…해방후 울산초 교사로울산 청년운동가 박두복과 결혼, 함께 민족운동6·25때 월북한 남편, 간첩사건 연루 갖은 고생2006년에야 보훈대상자로 인정 건국포장 받아울산초등학교가 입학생이 줄어들어 올해로 중구 북정동 시대를 마감하고 내년부터는 울산혁신도시로 옮겨 수업을 할 것이라고
우리나라 언론사에서 울산은 선두주자다. 우리사회에서 언론이 사회 목탁이 되어 각종 문제점을 파헤치고 이를 국민들에게 알린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동아와 조선일보가 창간되면서다.울산은 이 보다 훨씬 앞서 언론과 인연을 맺었다. 울산 출신의 개화기 선각자 김홍조는 동아와 조선이 발간되기 10여년 전인 1909년 경남일보를 창간해 지방신문의 시대를 열었다
운문사 입구 울창한 송림숲 걷다보면마른 솔잎무늬 수놓아진 양탄자 위 걷는듯한국 대표적 승가대학이자 비구니 사찰로광대무변 무애의 경지로 가는 길목나반존자 기도도량 사리암 가는 길아름다운 계곡·황톳길·데크로드 이어져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내려놓음’ 배워기지국 없어 휴대폰마저 쉬다 가는 곳연분홍 꽃비가 멀지 않았다. 꽃잎이 소리 없이 하나씩 둘씩 펴지고 있는 사
1921년 중구 성남동에 첫 울산역 건립동해남부선 개설하며 학성동으로 이전많은 조선인 철도공사에 동원돼 희생식민침탈에 고향 등지고 일본·만주행울산역, 아픔·눈물로 얼룩진 이별장소요즘 울산사람들은 ‘울산역’하면 KTX가 개설된 언양에 있는 역을 생각한다. 그러나 울산의 KTX역이 ‘울산역’이라고 불리기까지 울산에는 ‘울산역’의 이름을 가진 다른 역들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