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기하학 문양·명문·세선각 등다른 시기 세개 이상의 집단이 묘사실제보다 뿔이 강조된 사슴 인상적반구대에 비해 모자람 없는 조형우리나라에서 암각화라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발견은 울산 천전리에서 시작되었다. 천전리암각화는 1970년 12월 25일 발견되었는데, 당시 반고사 옛터를 찾아서 이곳에 온 동국대박물관의 젊은 연구자 문명대에 의해 처음 보고된 유적이
적당한 강도 바위 후보군 정해햇볕 거의 안드는 북쪽 암벽 중눈비에도 영향 미미한 곳 골라7천년간 원형 거의 그대로 보존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은 흰 빛깔의 화강암으로 축조되어 통일신라시대 석탑을 대표한다. 불국사는 신라가 한반도 대부분을 통일한 지 약 100년이 지난 최고 전성기에 국가적 사업으로 시작하여 무려 25년 이상에 걸쳐 만들어졌다. 이것은 활성
현재보다 상류에 형성된 해안선시기 따라 달라지는 동물 비율 등암각화 속 여러 힌트 조합해 보면잔잔한 울산 내만에 가득한 고래상류로 몰아 좌초시켜 사냥 추정 암각화는 바위에 도구를 가지고 그린 그림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문자가 없던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이 그들이 살았던 시기의 이야기를 후손들에게 남기고자 기록한 글일 것이다. 그림은 어쩌면 최초의
유기적 관련 갖도록 배치된 그림들전체가 하나의 상징적 생명 서판인듯특히 전체에 깔려있는 생명나무들나무형태와 얼굴의 결합이 특징생식도끼의 상징기호로 보이기도 반구대암각화에 대해서는 이미 학계에 많은 연구들이 축적되어 있다. 그 연구들은 대부분 ‘고래사냥’이라는 기본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다. 지나치게 암각화를 현실적인 사냥에 대한 원시적인 재현적(미메
언어와 회화가 하나되는 지점에서그림문자는 탄생되었다무문자(無文子) 3만년을 커버하는인류 보편의 조형언어로…1만년동안 켜켜이 쌓인 반구대엔한국인들의 무의식속에 내장된조형언어 원형이 녹아있다 지금 우리는 키보드 ‘치기’ 한가운데 살고 있다. 불과 이삼십년 만에 이삼천년 역사의 붓글씨 ‘쓰기’ 문명이 뒤집힌 것이다. 사람마다 직접 글자를 만들어 쓰다
‘물에 잠겼던 상처는 생딱지처럼 드러나 있다. 다시 길을 만들려는 발길을 거부하는 거대한 진흙땅이다. 진흙의 속성이 여간 드라마틱하지 않다. 물이 빠지고 몸을 드러내면서 무수히 많은 거북등 문양을 만들어 놓았다. 흙과 물과 시간이 만드는 ‘걸작’이 설치미술로 전시돼 있는 셈이다.더욱 재미있는 것은 그 위에 새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다. 진흙이 부드러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234-1. 내가 지번이 나와 있는 반구대암각화를 처음 찾아간 것은 1999년 11월,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늦가을 인적도 끊긴 산 굽이길을 걸어들어가 반구대암각화 앞에 섰을 때, 가슴이 심하게 뛰고 있었다. 암각화는 100m 쯤 되는 물 건너 쪽 산벼랑 돌 벽에 새겨져 있었고, 물 건너 벽면은 가을비에 가려져 구체적 형
인류 최초의 포경 기록이자 연대까지 측정 가능한 세계적 문화유산울산 물 문제도 중요하지만 반구대 암각화 보존은 화급을 다투는 일소설 ‘반구대’ 대중의 무관심을 관심·존중으로 이끄는데 일조 기대반구대암각화는 글로벌시대에 자신있게 내놓을 수 있는 우리 울산의 세계적 문화유산이다. 거기엔 6000년 전 문명의 여명기에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
반구대암각화에는 춤추는 인물,활쏘는 인물, 피리부는 인물 등15점의 인물상이 있다.이중에 13점은 전신상이고 2점은 가면이다.고래와 사슴 다음으로 개체수가 많기에암각화의 중요 구성요소라고 할 수 있다.이 중에 사지를 벌린 채춤을 추는듯한 인물상은독특한 특징을 보여주는 등여러모로 흥미로운 암각화이다. 그런 이 인물상을 향해 한밤중에 누군가 불빛을 비추었다.
천전리 암각화(국보147호)와 대곡리 암각화(국보285호)는 먼 옛날 울주 대곡천변에 살던 사람들의 흔적을 품고 있다. 대곡리 암각화를 제작한 선사인들은 신석기시대 초기인 7000년 전 무렵부터 고래를 새기기 시작해 중기인 5000년 전 무렵에는 사슴 등 육지동물을 새기는 등 긴 시간동안 공동어로와 수렵생활방식을 반영한 사냥예술을 남겨 놓았다. 천전리 암각
고래가 묘사된 암각화는 고래의 분포지를 따라 세계 곳곳에서 종종 발견된다. 하지만 반구대 암각화에 묘사된 고래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우선 이렇게 다양한 고래가 한 화면에 집중적으로 묘사된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반구대에 등장하는 고래는 북방긴수염고래, 귀신고래, 참고래, 범고래, 참돌고래 등 모두 11종 67점으로 그야말로 고래 백과사전이라고 할만하다. 도
15개 표현물군에서 중복된 부분 발견겹쳐진 수순 분석하고 표현양식 분류최소 다섯단계에 이르는 제작층 확인1제작층은 어로활동·2제작층은 동물3제작층 사슴·산양 등 초식동물 구성일부 표현물은 제작 연대 시사하기도반구대는 이미 천혜 절경이지만, 암각화를 품으면서 더욱 신비로워진 곳이다. 그래서 우리는 1971년 겨울의 그곳을 잊지 못한다. 한국미술사의 사건을 넘
해가 잘 든날 오후 반구대 암각화 앞에 서면 어두침침한 바위벽에 서서히 햇살이 비치면서 고래 호랑이 등의 그림들이 살아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며 수천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살아난 그림들과의 교감이 일어나는 신비로운 체험이다.울주 대곡천 계곡의 천전리와 반구대 암각화가 알려진 이래 우리는 선사암각화라는 새로운 세계에 접할 수 있게
대곡천 암각화군은 크게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약 3㎞에 걸친 대곡천 계곡의 바위절벽에 새겨져 있다. 반구대암각화는 1995년 6원23일 국보285호로, 천전리각석은 1973년 5월4일 국보147호로 지정 보존되어 오고 있으며, 신석기시대 후기에서 청동기 시대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 선사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대곡천
대곡천의 빼어난 자연유산이 있었기에 오늘날 대곡천에 문화유산들이 풍부해 질 수 있었다. 자연과 문화는 두 개가 아니라 하나이다. 자연 속에 문화가 있고 문화의 다양성은 자연과 함께 할 때 더욱 진한 향기를 내뿜는다. 우리 모두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에 대한 더 큰 이해가 필요하다.◇대곡천에 흐르는 문화유산인류의 번성과 문명의 발달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선조들이 신선골이라고 했던 절경의 명승지,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 아래, 위로 대곡천 결을 따라 국보 285호 반구대암각화와 147호 천전리 암각화가 자리하고 있다.300여점의 해양·육지동물, 사람 등이 새겨져 있는 반구대암각화는 선사인들의 생활상과 정신문화를 그대로 바위에 옮겨 놓은 대서사시다. 인류최초의 고래잡이 흔적이 새겨져 있는 반구대암각화는 울산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