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물동은 본래 강동면 지역으로서 어물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구남동 일부 지역과 구암동을 병합하여 어물리라 했다. 이곳 어물동 방방우골 부채봉산 남쪽 중턱에 미륵삼존불상(彌勒三尊佛像)이 있다. 높이 약 7m, 폭이 약 10m의 자연 암벽에 릴리프(浮刻)로 조각돼 있다. 가운데의 불상은 상반신이 조각된 약사여래불로 높이 약 6m, 폭이
땅이름울산사랑
경상일보
2003.08.19 17:53
-
연암동은 하부면에 속하며 백련암(百蓮岩)이 있어 연암이라 했는데, 1914년에 상방동을 병합해 연암리로써 하상면에 편입됐다가, 1962년 울산시에 편입돼 동이 됐다. 오봉산 기슭에 신라 때 세워 용왕에게 나라의 수호를 빌었다는 오봉사(五峯寺)가 있다. 지금은 옥수청청 좋은 물이 흐르는 샘이 있어 옥천암(玉泉庵)으로 불리는 곳이다. 어느 해의 일이었다. 이웃
땅이름울산사랑
경상일보
2003.08.12 17:53
-
서부동은 울산 동면(방어진읍) 지역으로 서부라 하였는데, 1914년 대편동을 병합해 서부리라 하다가, 1962년 울산시에 편입되면서 동(洞)이 되었다. 옛날에는 밭이었던 이곳에 어느 농사꾼 부부가 농사와 함께 바다에 나가 해초도 뜯어먹으며 어렵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얄궂게도 이 내외가 모두 병들어 자리에 눕고 말았다. 슬하에는 아직 어린 오누이 밖에 없는
땅이름울산사랑
경상일보
2003.07.29 17:53
-
등억리는 상남면에 속한 마을로 이조 정조(正祖) 때와 고종(高宗) 때에도 등억(登億)이라 했다. 일제시대에 등억과 신리로 갈라졌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다시 합해져 등억리라 했고 1928년에 상북면으로 편입됐다. 등억은 "등어리"라는 말에서 유래됐다고도 한다. 등(登)은 "높다" 내지 "오르다"라는 뜻을 가졌고, "어리"는 ""
땅이름울산사랑
경상일보
2003.07.22 17:53
-
조일리는 삼동면 7개 법정동리 중 하나다. 조일은 우리말 "새"나리"의 한문 음차로 보고 있다. 정조 때와 고종 때에도 조일동(早日洞)이라 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는 일부가 보은리에 이속되었고, 1933년 삼동·중남 양면이 통합해 삼남면에 속했다. 1977년에 옛 삼동면 구역에 다시 삼동출장소를 두게 되자 이 출장소 관할이 됐으며, 암리(
땅이름울산사랑
경상일보
2003.07.15 17:53
-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27대 선덕여왕 5년(636), 자장율사가 당나라로 들어가 7년간수학하는 가운데 산동반도에 있는 태화지(太和池)라는 못 가를 지날 때 홀연 신인(神人)이 나타나 "지금 그대의 나라는 여자를 임금으로 세웠으니 덕은 있으나 위엄은 없는 고로 이웃나라가 도모하려는 것이니 빨리 돌아가 황룡사에 9층탑을 이룩하면 이웃나라가 항복하고 구한(九
땅이름울산사랑
경상일보
2001.08.03 17:53
-
서울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니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둘은 나의 것이고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래 나의 것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요(삼국유사 처용랑 망해사 조) 처용이 돌아와 보니 그 지경이었다. 그러나 처용은 탓하지 않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가 처용가이다. 처용은 이름처럼 불륜의 처를 용서하였으니 처용(處容) 아닌 처용(
땅이름울산사랑
경상일보
2001.08.13 17:53
-
무룡산(舞龍山)은 동해안의 울산시 북구 송정동과 울주구 강동면 사이에 있는 울산의진산(鎭山)이다. 용과 선녀의 전설에 이 전해진다. 무룡산 꼭대기 연못에 일곱 마리 용들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무지개를 타고 옥황선녀 일곱이 연못으로 내려와 용들과 한데 어울려 놀았다. 목욕을 마친 선녀들이하늘로 올라갈 시간이 되었으나 용들과 서로 정이 들어서 떨어질 수가
땅이름울산사랑
경상일보
2001.08.17 17:53
-
언양읍 대곡리의 사연호 끝머리에 반구대라는 명소가 있다. 층을 이루고 있는 바위의생긴 모양이 거북이가 걸어나오는 것 같아 반구대라 불린다. 선사시대 선인들이 넓적한 바위에 새긴 그림들이 남겨져 있는 놓은 곳이다. 고려말 정몽주가 언양현의 요도에서 귀양살이하면서 이곳을 찾은바 있어 선생의 호를 따서 "포은대"라고도 부른다. 조선조 이언적도 이곳을 두루 돌
땅이름울산사랑
경상일보
2001.08.31 17:53
-
구영리(九英里)는 일정 아래인 1914년, 구영(舊營)이라는 한자로 된 이름이 본래의 뜻과는 전혀 관계없는 구영(九英)으로 바뀐 마을이다. 신라 때 굴화현(울산고을)의 병영(兵營)이 있어 그 유래를 따른 뜻 깊은 지명인데 일제가 우리의 정신문화를 파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개명한 사례이다. 구영(舊營)과 구영(九英)은 같은 소리이긴 하나 뜻은 매우 다르다.
땅이름울산사랑
경상일보
2001.10.26 17:53
-
미호리(嵋湖里)는 본래 경북 경주시 외남면 지역이었는데, 고종 광무 10년(1906)에 울산의 두서면에 편입되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사음동·중동·하동을 병합하여 미호천의 이름을 따서 미호리라 이름하였다. 두서면의 "두(斗)"는 마루꼭대기라는 뜻에서 연유됐다. 곡식의 양을 재는 말로 생각하여 "두산(斗山)"이 되기도 하였고,
땅이름울산사랑
경상일보
2001.11.10 17:53
-
울산의 염포는 조선시대 부산포·제포(창원)와 함께 왜(倭)와의 교역을 위한 삼포의 하나였다. 현재 엄청난 물동량을 자랑하는 국제항인 울산항으로 성장하기 이전의 근세까지도 조선수군의 군사기지로, 또 일본에 대한 개항지로서 정벌과 회유와 교린의 역사무대에서 중요한 국제항 역할을 해왔다. 세종 초(1419년) 왜구토벌 이후 교통두절로 고통을 받던 대마도 사람들은
땅이름울산사랑
경상일보
2001.11.16 17:53
-
삼산동(三山洞)은 1914년의 행정구역개편 때 신리(新里), 신복(新福), 삼산(三山), 중리(中里)를 합하여 삼산리가 되었고, 1962년 울산시에 편입되어 삼산동이 되었다. 조선조 중기 이전 삼산들이 모두 바다였을 때 학성공원도 바다 가운데로 쑥 내민 작은 반도였고, 내황동은 본래 그 이름이 내항으로서 바다에 면해 있었다. 예로부터 이수삼산(二水三山)이라
땅이름울산사랑
경상일보
2001.11.23 17:53
-
강길부명찰 통도사를 안고 있는 영취산이 동쪽으로 그 줄기를 뻗으면서 크고 작은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옥동에 이르러 삼호산이 솟았고 신정동에 이르러서는 두리봉과 은월봉의 이름으로 빛나고 있다. 사람들은 옥동에서 신정동에 걸쳐 연접하여 있는 크고 작은 열 두개의 산봉들을 "남산 12봉"이라 일컫는다. 예로부터 울산사람들 사이에는 이 남산 12봉 아래에 큰
땅이름울산사랑
경상일보
2001.11.30 17:53
-
강길부주전동에는 조선 세조(1455~1468)때의 봉수대가 있는데, 높이 약 6m, 직경 약 5m인 교신탑과 주위를 보호하기 위한 직경 약 12m의 보조축대가 원통형의 석축으로 남아 있다. 봉수 또는 봉화제(烽火制)는 고려 의종 3년(1149), 서북병마사 조진약(曺晋若)의 건의로 채택되었고, 이후 주로 왜구의 침입 등 급보를 신속하게 왕에게 전달하기 위한
땅이름울산사랑
경상일보
2001.12.07 17:53
-
거리(巨里)는 상북면 13개 법정 동리의 하나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거리(巨里)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28년 상남·하북 양 면을 합해 상북면 관할이 됐다. 이 곳을 토박이말로 "엥기"라고 부르는데, "거리"는 냇가를 뜻하는 "걸"의 음전(音轉)에 의한 차자(借字)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거리에서 내려오는 물을 막아 보(洑)를
땅이름울산사랑
경상일보
2003.07.08 17:53
-
구량리는 두서면 9개 법정동리 중 하나다. 본래 삼한시대 구라벌이란 성읍국가가 있었던 곳인데, 구량벌(九良伐) 또는 구량화촌(仇良火村)이라 불렀다. 이 곳은 경주군 외남면 지역으로 1906년(광무 10년) 울산군 두서면에 편입되었다. 이후 중리동과 구영동(九永洞)으로 나누어졌다가 1914년에 이들을 합해 구량리라 했고, 송정(松亭)과 중리(中里) 두 행정마
땅이름울산사랑
경상일보
2003.07.01 17:53
-
방기리(芳基里) 사자평방기리는 삼남면의 5개 법정동리의 하나다. 본래 방씨(方氏)들이 많이 살아서 방터·방대(方垈)·방기라 부르던 곳이다. 고종 때는 중남면에 속했고, 1911년에 상방기(上芳基)와 하방기(下芳基)로 나뉘었다가 1914년에 다시 합하여 방기리라 했다. 1933년에 중남면(中南面)과 삼동면(三同面)이 합해져 삼남면이 됐다. 방기리에는 방기(芳
땅이름울산사랑
경상일보
2003.06.24 17:53
-
울주군 두동면 봉계리는 두동면의 8개 법정동리의 하나이다. 1911년 두북면에 속했던 하묵정(下墨正)의 일부와 월산(月山)의 일부를 합해 봉계동(鳳溪洞)이라 했고, 1914년에 내남면 하명곡의 일부를 포함해 봉계리(鳳溪里)라 했다. 봉계리에는 계명(鷄鳴)·계당(桂?)·이중(梨中)·남명(南鳴) 네 행정마을이 있으며, 치술령 북서쪽 능선의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땅이름울산사랑
경상일보
2003.06.18 17:53
-
대복리는 울주군 웅촌면 9개 법정동리의 하나이다. 정조 때는 오복(五福)과 대양(大陽)으로, 고종(1894년)때는 오복동(五卜洞)과 대양동으로 갈라져 있었으나, 대양동의 대(大)와 오복동(五福洞)의 복(福)을 따서 대복리(大福里)가 되었다. 마을이름이 "오복"과 "대복"이니 참으로 복이 많은 마을이다. 주변지역 개발로 마을이 크게 확장되었고, 장백·
땅이름울산사랑
경상일보
2003.06.11 1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