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진(晉)나라 군주 위무자에게 애첩이 있었다. 어느 날 병석에 눕게 된 위무자는 아들 위과를 불러 자신이 죽으면 애첩을 재가시키라고 했다. 그러나 위독해진 위무자는 “자신이 죽으면 애첩도 함께 묻으라”는 정반대의 유언을 남겼다. 고민하던 위과는 “난 아버지께서 맑은 정신에 남기신 말씀을 따르겠다”라며 애첩을 순장(殉葬)하는 대신 다른 곳으로 시집보냈다. 세월이 흐른 후 진(秦)나라가 진(晉)나라를 침략했다. 위과가 전쟁터에서 위험에 처하자 친정아버지 혼령이 나타나 적군 앞의 풀을 묶어 올가미를 만들었다. 적군이 탄 말은 여기
지난 8일은 흰 이슬이 내린다는 백로(白露)였다. 이슬은 해가 뜨면 흔적도 없이 말라버리는데, 사람들은 이를 인생에 빗대 부운조로(浮雲朝露), 즉 뜬구름과 아침이슬과 같다고 했다. 백로는 제비가 강남으로 돌아가고 후손들이 조상 묘를 찾아 벌초를 하는 시기다. 폭풍같던 여름이 지나가고 선선한 가을이 갑자기 찾아옴으로써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를 실감하는 계절이기도 하다.귀뚜라미가 가을을 알리는 대표 곤충이라면 벚나무는 가을초입을 알리는 대표 식물이다. 태화강가 벚꽃산책로에는 벌써 벚나무 낙엽이 수북해졌다. 4월 벚꽃엔딩이 엊그제 같은데
방사능 오염수 문제가 시끌벅적해도 먹을 건 먹어야 한다. 제철 음식을 먹는 것만큼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도 없다. 가을 전어(錢魚) 이야기다. 전국이 전어 축제로 떠들썩하다. 사람들은 가을이 와서 전어를 찾는 게 아니라 전어 소식을 듣고 가을이 온 걸 느낀다고 한다.시인이여,/ 저무는 가을 바다로 가서 전어나 듬뿍 썰어달라 하자// 잔뼈를 넣어 듬성듬성한 크기로 썰어달라 하자/ 바다는 떼지어 헤엄치는 전어들로 하여 푸른 은빛으로 빛나고/ 그 바다를 그냥 떠와서 풀어놓으면 푸드득거리는 은빛 전어들// 뼛속까지 스며드는 가을을 어찌하
“낱낱의 얼굴은 달처럼 희고, 사람들 발밑에는 맑은 바람이 분다. 거울을 깨트려 그림자마저 없나니, 긴 소리로 우는 새가 소나무 가지에 오르도다”“꽃은 뜰 앞의 빗소리에 웃고, 솔은 난간 밖의 바람에 운다. 어찌 묘한 이치를 궁구하는가? 이것이 바로 뚜렷이 통함이로다”조계종 종정 중봉 성파 대종사가 계묘년 하안거(夏安居) 해제(7월15일 백중)를 앞두고 28일 해제법어를 내렸다. 성파 대종사는 “안거를 성만한 대중의 마음에 편협함과 성냄, 두려움과 어리석음이 없는지 수행자 된 역량을 점검하고, 산문을 벗어나 세간에 나아가서는 마음
폭염이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견우 직녀가 만난다는 칠석(七夕)날이고 내일은 모기 입도 삐뚤어진다는 처서(處暑)이건만 낮기온은 연일 30℃를 훌쩍 넘는다. 이상기후가 심해지니 24절기도 안 맞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계절은 가을로 조금씩 기울어지고 있다.오늘밤이 당신들 만나신단 그날이라면/ 어두운 저 하늘을 온몸으로 가겠어요./ 당신들의 발 아래 철철철 피 흘리며/ 까마귀 까치처럼 머리를 벗기운들/ 아려오는 기쁨으로 목줄기가 탈거예요.// 오늘밤이 당신들 만나신단 그날이라면/ 차디찬 은하물 건져 튼튼히 몸을 씻은/
십수일째 폭염(暴炎)이 이글거리고 있다. 35℃는 이제 예사다. 미국 알래스카에서는 빙하가 붕괴돼 홍수가 나고 주민들에게는 긴급 대피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땅이 녹고 하늘에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폭염(暴炎)의 炎(염) 자는 불 화(火)를 두번 겹쳐놓은 글자다. 그러니 하늘의 불꽃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 와중에 목백일홍이 붉게 피었다.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지난 21일은 중복(中伏)이었고, 지난 23일은 ‘큰 더위’를 뜻하는 대서(大暑)였다. 사람들은 여름휴가 또는 피서(避暑) 준비에 여념이 없다. 바캉스, 호캉스, 촌캉스, 몰캉스…여름휴가도 가지가지다. 바캉스(Vacance)는 여름휴가를 뜻하는 프랑스 말이고, 호캉스는 호텔에서 즐기는 여름휴가다. 몰캉스는 쇼핑몰에서 즐기는 바캉스를, 촌(村)캉스는 시골집에서 ‘몸뻬’ 바지를 입고 힐링을 즐기는 바캉스를 말한다. 최근에는 휴양지에 머물며 원격으로 일하는 ‘워케이션(workcation)’이 늘고 있다고 한다.중복, 대서 즈음에는 ‘염소
집중호우로 전국이 쑥대밭이 됐다. 요즘 장마는 공포 그 자체다. 오송의 지하차도에 갑자기 물이 차 차량 운전자와 승객이 사망하는가 하면 예천 감천면 벌방리에서는 산사태가 발생해 십수명이 사망·실종됐다.홍수는 예로부터 인류를 가장 괴롭혀 온 자연재해다. 홍수로 인한 사망자 수는 중국이 단연 1위다. 1931년 발생한 장강 홍수 때는 200만~400만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그 이전 1887년 황하 홍수 때는 200만명이 사망했다. 수리시설이 허술해 그만큼 사망자도 많았다.우리나라의 경우 1925년 을축년 대홍수(乙丑年 大洪水)가 유명하다
능소화가 여기저기서 피어나고 있다. 장마 속에서 줄기는 더욱 힘차게 뻗어올라 담을 넘어 이웃 골목을 내려다 보고 있다. 능소화(凌花)는 ‘업신여길 능’ ‘하늘 소’자를 쓴다. 풀어보면 ‘하늘을 업신여기는 꽃’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꽃 중의 꽃, 아니면 땡볕을 견디는 꽃이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실제 대부분의 꽃은 열흘을 못넘기는데, 능소화는 땡볕 속에서도 한여름을 거뜬히 견딘다. 한 때는 능소화 꽃가루에 독이 있어 눈에 들어가면 큰 일 난다고 법석을 떨기도 했다. 모양이 트럼펫을 닮았다고 해서 Chinese trumpet creep
7월 들어 나리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나리꽃은 화려함과 청초함을 동시에 지닌 꽃이다. 아침에는 청초함이, 낮에는 화려함이 돋보인다. 나리는 한자로 표기하면 백합(百合)이다. 영어 명칭은 lily다. 나리와 백합이 같은 꽃이라고요? 의외로 두 꽃을 별개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지난 1998년 농촌진흥청은 다수의 문헌 등을 토대로 나리와 백합을 순수 우리말인 ‘나리’로 통일하도록 권장했으나 백합은 여전히 쓰이고 있다.가시밭의 한송이 흰 백합화/ 고요히 머리 숙여 홀로 피었네/ 인적이 끊어진 깊은 산속에/ 고요히 머리 숙여 홀로 피었네
본격적인 장마철로 접어들면서 식물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다. 그 중에서도 담쟁이는 삽시간에 벽과 담을 푸른 색으로 도배한다. 담쟁이는 담을 기어오르면서 산다는 뜻의 순 우리말이다. 한자로는 파산호(爬山虎)라고 하는데 ‘산(山)에서 기어 다니는(爬) 범(虎)처럼 강인한 풀’이라는 뜻이다. 생명력이 그만큼 강인하다는 의미다.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내일은 일년 중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다. 또 그 다음날은 부채를 선물한다는 단오(端午)다. 울산은 벌써부터 한 낮 기온이 34℃를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가 오면 기나긴 장마가 시작된다. 그리고 짙푸른 녹음 어디에선가 매미 우는 소리가 귓전을 때릴 것이다. 계절의 법칙은 어긋남이 없다.장맛비 잠시 멈춘/ 하늘 사이로/ 자귀나무 붉은/ 꽃등을 켰다/ 주먹만 한 하지감자/ 뽀얀 분 나게 찌고/ 아껴 두었던 묵은지/ 꺼내는 순간/ 어디선가 들리는/ 매미의 첫 울음소리/ 놋요강도 깨질듯 쟁쟁하다 ‘하지(夏至)’ 전문(최원정)하지의
수국(水菊)은 본격적인 여름의 초입을 알리는 꽃이다. 울산에서는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남구 장생포동 고래문화마을에서 수국 페스티벌이 열렸다. 수국 축제는 울산 말고도 제주도 등 남쪽 지방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화려했던 철쭉과 장미가 지고 난 뒤 마땅한 볼거리가 없는 요즘, 수국은 두 주먹만한 큰 꽃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기도가 잘 안 되는/ 여름 오후/ 수국이 가득한 꽃밭에서/ 더위를 식히네// 꽃잎마다/ 하늘이 보이고/ 구름이 흐르고/ 잎새마다/ 물 흐르는 소리// 각박한 세상에도/ 서로 가까이 손 내밀며/ 원을 이
모내기가 한창인 들판에 뻐꾸기 소리가 음악처럼 들린다. 밤에는 개구리들이 와글와글 합창을 해대며 뻐꾸기 소리에 화음을 더한다. 뻐꾸기는 봄이 갈 때쯤 왔다가 여름이 끝날 무렵에 베트남이나 필리핀 등 남쪽나라로 떠나는 여름 철새다. ‘뻐꾹뻐꾹’ 하며 우는 것은 수컷인데 혹 가다가는 ‘뻐뻐꾹~’하고 울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수컷의 ‘뻐뻐꾹~’은 비정상적 소리가 아니라 암컷이 주변에 있을 때 내는 소리라는 주장도 있다.탁란(托卵)은 어떤 새가 다른 종류의 새의 집에 알을 낳아 대신 품어 기르도록 하는 일을 말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뻐꾸
강가에 수양버들이 늘어지기 시작하는 5월이다. 고교시절 죽어라 외웠던 정지상의 ‘송인(送人)’을 다시금 되뇌이게 되는 계절이다.우헐장제초색다(雨歇長堤草色多, 비 그친 긴 둑에는 초록빛이 짙은데)/ 송군남포동비가(送君南浦動悲歌, 임을 보내는 남쪽 포구에 슬픈 노래가 퍼지네)/ 대동강수하시진(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 물은 어느 때나 다 없어질까)/ 별루년년첨녹파(別淚年年添綠波, 이별의 눈물이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해지거늘) 대동강이 흐르는 평양은 예로부터 중국으로 사신들이 왕래하는 주요 통로였다. 그렇다보니 대동강 강가에서 이별하는 남녀
요즘 태화강 대숲에는 죽순이 그야말로 우후죽순처럼 솟아나고 있다. ‘만물이 왕성하게 자라나 가득 찬다’는 뜻의 소만(小滿·21일) 무렵이면 죽순은 사람 키를 훨씬 넘는다. 태화강 국가정원 일대에는 현재 왕대, 맹종죽, 오죽, 구갑죽 등 다양한 대나무가 자라고 있다.죽순(竹筍)은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생장 속도를 말해준다.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한 달을 초순·중순·하순으로 열흘씩 묶어 ‘순(旬)’으로 표시했는데, 대나무 순은 열흘이 지나면 딱딱해져 먹을 수가 없었다. ‘筍(순)’이라는 한자는 이러한 연유에서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
필자의 집 처마 밑에 어느날 딱새가 둥지를 틀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하더니 딱새도 둥지에 올망졸망 5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조심스레 까치발로 둥지를 들여다보고 새끼들이 얼마나 컸는지 확인하는 일은 필자의 큰 낙이다.새들은 상당수가 4~6월에 알을 낳는다. 부모 새가 둥지에서 알을 품는 행위를 ‘포란(抱卵)’이라고 하고, 포란 중인 새의 가슴과 배 깃털이 빠진 부분을 ‘포란반(抱卵斑)’이라고 부른다. 포란반은 새가 자신의 배 아래쪽 털을 뽑아 피부가 알에 닿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맨살에는 모세혈관이 많아 보온이 더 잘되기 때
필자가 사는 동네 들판에는 못자리가 한창이다. 또 밭에는 고추를 심느라 온 동네 사람들이 바쁘다. 그런데 고추는 그냥 심으면 되지만 못자리는 여간 공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다. 요즘에는 제품화된 모판과 흙을 이용하지만 예전에는 복잡한 절차를 거쳤다. 우선 소금으로 농도를 맞춘 물에 씻나락(볍씨)을 담가 쭉정이를 골라냈다. 소금물을 넣는 이유는 씻나락 쭉정이를 물에 뜨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난 뒤 3~4일 물에 담가둔 뒤 모판에다 고루 뿌린다. 씻나락을 모판에 뿌리는 작업을 ‘씻나락 내린다’고 한다. 볍씨 하나가 싹 틔우고/ 이
송화(松花)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박목월의 시 ‘윤사월’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요즘 송홧가루와 황사가 뒤섞이면서 울산 전체의 시야가 종일 희뿌옇다. 시(詩) 속의 산지기 외딴 집에도 송홧가루가 노랗게 내려 앉았으렸다. 서정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이 시의 주인공은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 어쩐지 영화 ‘서편제’(1993년 개봉)의 주인공 송화(松花 오정해 분)와 오버랩된다.“사람의 가슴을 칼로 저미는 것처럼 한이 사무쳐야 되는
영남알프스가 연두색 물감으로 물들고 있다. 아직 정상부근은 겨울빛을 띠고 있지만 며칠 안 있으면 영남알프스는 온통 연두세상으로 변할 것이다. 마을에 심어져 있는 감나무에는 연한 감잎들이 새록새록 돋아나고 있다. 초봄 울긋불긋 화려했던 봄 꽃에 이어 사월 연두세상이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나뭇잎은 사월에도 청명과 곡우 사이에/ 돋는 잎이 가장 맑다/ 연둣빛 잎 하나하나가 푸른 기쁨으로/ 흔들리고 경이로움으로 반짝인다/ 그런 나뭇잎들이 몽글몽글 돋아나며 새로워진 숲/ 그런 나무들이 모여 이루는 산은/ 어디를 옮겨놓아도 한 폭의 그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