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손후익의 딸 응교씨독립운동가 심산의 둘째 며느리로불구의 심산 수족 노릇하며 일생 보내작년말 타계…남편과 대전현충원 합장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창 일송 김병희국가 산업·공업화에 자문맡아 큰 공헌글쓰며 100세까지 살다 올해 운명천전리각석 40년 지킴이 박장국씨작년까지 입구에서 방문객 맞았으나100세 된 지금은 양산서 요양원 생활100세
1960년대 옥교동서 대동의원 운영어려운 이웃들에 무료의술 펼쳤고지역 야당인사로 군사정권에 항거죽을때까지 대한민국 민주화 앞장서도회·국악회·시조회·수석회 등울산에 문화단체 만들고 활동 도와남긴 재산 적고 동료 대부분 타계해한세대 넘어서야 추모비 건립 가능야학(野鶴) 김재호(金在湖) 박사의 추모비 건립이 고인의 고향인 울주군 상북면 길천리에서 지난 17일 있
동구로 돌아온 낙화암70년대초 현대重 건설하며 폭파옛모습은 사라지고 일부만 남아올해초 울기등대 입구로 옮겨와낙화암 미스터리 많아새겨진 시, 기녀의 슬픈전설 담아망국의 한 안은 백제의 궁녀설도끝자락 ‘원유영’ 이름도 의견분분고향 미포만 사랑했던 장인수씨개발계획도·사진 청와대에 보내국토개발 연구실에 3개월간 근무건강 나빠져 고향 내려왔다 정착낙화암이 동구주민들
울산문협 초대 부지부장 서전지역 문화공간 확보 차원 명다방 건립70년대말 울산문인 사랑방 역할 톡톡생활고에 찌든 문인들의 시름 달래줘울산 있는 동안 사회활동 펼쳐화조회 결성, 형편 어려운 학생 지원제1회 장학금 수혜자는 정갑윤 의원서울갈때도 명다방은 그대로 두고가서전 문학비 건립 지지부진시비 제작완료…작년말까지 세우기로일부 문인의 반대·행정 문
1898년 최여사 17세·고헌 15세 결혼천석꾼 딸-만석꾼 아들 만남이었지만전 재산 독립운동에 사용해 빈털터리고헌 순국후 친정집 더부살이 선택아들 내외·손자 이끌고 동생집 전전집안 정자 숙연정에 방 만들어 기거도경주 교동 ‘석등이 있는 집’ 정원에숙연정과 신라시대 유물 놓여 있어고헌 박상진은 울산이 낳은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다. 최영백 여사는 고헌의 부인이다
울산 정치사에서 최다 언급 ‘이후락’지역사회에 큰 영향력 끼쳤다는 증거별장 육석정·생가 등 흔적은 사라져우석이 중앙의 권좌에 있을때지역 젊은이 불러올려 요직 맡겼고울산대 설립 앞장, 초대이사장 역임최성만 부산일보 기자, 에세이 통해“울산대는 학교 설립 30년사에‘설립자 정주영’ 기록해 역사 왜곡”인물로 본 울산정치사’는 이번으로 마감하게 된다. 2015년
신병렬 의원, 오위영 의원 비서 출신12대 정치계 첫발…야당 기수로 활약김운환 의원, 13·14대 국회의원으로범서~경주 24호선 확포장 문제 해결이장희 의원, 14대때 비례대표 당선당내 마당발로 민주-평민 합당 도와우리나라 헌정사에 전국구 의원이 처음 나타난 것은 8대 총선 때부터다. 이 때 공화당 정부는 국회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여야 득표
최영근 의원네서 가정교사하며 정치인 꿈 꿔첫출마 43세 첫당선은 58세…15년 원외활동12대, 신민당 최형우 의원에 정치헌금 전달전국구 출마 불발되자 형제 동원 낙선운동15·16대 금배지 달고 지역현안 해결에 앞장17대 총선 앞두고 강도 드는 등 악재 겹쳐결국 선거자금 관련 각종 루머로 17대 낙선2011년 집에서 넘어지면서 목뼈 다쳐 영면11
자금·조직 열세 넘은 젊은패기‘공천탈락·10대 출마’ 정치경력으로11대 총선서 농민당 창당, 전격 당선부친 눈물유세·당숙의 지원유세 주효15대 총선, 여-야 가교역할15대 총선서 통합민주당으로 금배지15대 대구달성 보선 박근혜 출마 설득16대 대선때 노무현-정몽준 경선 주도2014년 자동차 사고후 농원생활당숙 이주환씨 운영하는 농원에 정착애국정신 심고 전통
전두환 정권 주도한 11대 총선때정치에 입문한 고원준 국회의원여당 민정당서 참신한 인물로 꼽혀공천서 탈락한뒤 재계서 활동2004년 구속직전 열린우리당행강길부의원 당선시켜 주위 놀라게해선전 결과에도 곧바로 구속·잠적했다가병보석으로 치료받다 69세로 사망울산 정치인 중 고원준 국회의원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인물도 드물다. 고 의원이 정치에 처음 발을 들여
심완구 전 울산시장퇴임 직전 뇌물죄로 구속암환자로 수감생활 고초겪어생명 잃을까 걱정한 동문·가족송철호 전 위원장에 구명 요청송 위원장도 석방운동 도와당시 문재인 비서실장 도움으로2년3개월여 실형살다 사면 출감심, 문 대통령 대선 지원군 자처11대 총선은 전두환 정권이 이끄는 군부세력이 중심이 되어 선거가 치러졌다. 과거와 달리 두 명의 국회의원을 뽑은 이
북방으로 대통령의 신임 얻었으나측근들의 질시·견제 받는 계기로‘윤필용 사건’ 계획적이란 시각도‘김대중 납치사건’후 오랜시간 칩거10대 총선으로 중앙에 복귀했지만1979년 박 대통령 서거로 중도하차5공화국 뒤엔 부정축재자로 수모권불 10년’이라고 한다. 10년 가는 권력이 없다는 말이다. 우석 이후락의 경우도 비슷하다. 그가 대통령 비서실장이 된 것이 196
울산농고 11회·육사 11기 졸업생영남출신 장교 모임 ‘하나회’ 활동회원 중에서도 대통령 신임 받아1973년 윤필용 장군 쿠데타 혐의로참모장이었던 손 장군도 15년형전두환 정권때 미국서 들어왔지만권좌에 앉지않고 조용히 여생보내중정 의무실서 근무한 김영호씨성안 출신 중정 5국장 오인태씨 등그시절 중정에 울산인물들 많아해방 후 울산은 신말엽, 오경환, 이상무
우석 대통령비서실장때부터고향사람들 중앙 요로에 진출시켜우석의 5촌 외조카 이장우씨중정 비서실장 맡아 방북때도 동행청렴결백했던 판사 이재걸씨1971~1973년 중정 감찰실장 활동우석 물러나자 美서 국제변호사로중앙정보부는 18년 박정희 정권을 지탱해 준 버팀목이었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김종필, 김형욱, 이후락, 김재규 등 그의 심복들을 중정 부장자리에 앉혔다
10대 총선서 공화당 공천 받았지만무소속 이후락씨가 여당 예우받고서 후보는 야당 후보 취급당해주요 당원들부터 시장·경찰서장까지이후락 후보 편에 서서 선거돕자평양행, 7·4공동성명 등 폄하하고김대중 납치사건 폭로하며 맹공격선거후 유언비어 유포로 입건됐으나10·26사태 일어나 재판 흐지부지10대총선 이후 정치판 떠나10대 총선에 출마했던 서영수 후보는 울산선거
울산 공업도시화의 주역으로조직·자금에서 타후보 훨씬 앞질러절대적 지지 얻을것으로 생각했으나당초 목표였던 10만표는 얻지 못해50% 밑도는 지지율로 당선의정활동 통해 재기 꿈꿨지만다음해의 10·26사태로 국회 떠나전두환 정권서 전재산 국가에 헌납말년 경기도서 도자기 구우며 생활지난 2009년 85세로 영면1978년 12월 시행된 제 10대 국회의원 선거는 유
군사정권 아래 철저히 탄압 받았지만의사회·로터리 창립 등 여러 업적 세워동창이자 울산최초 약사였던 오원근씨정치 논쟁했던 이동철 울산육영회장 등주위에 정치·수석인 등 여러 인연 모여야학 서거 41주년…추모 물결 여전오는 7월 상북 묘역에 추모비 건립키로울산은 정해영, 김재호, 최영근, 최형우 등 중진 야당 인사들을 많이 배출했다. 이들 중 지금까
유신헌법으로 실시된 첫 총선유신체제에 반감 가진 울산시민지역 야권서 미는 김재호 박사 대신투사적 기질 가진 최형우 후보 선택중선거구제로 1선거구에 2명 선출이후락의 마지막 대리후보였던김원규 후보는 쉽게 당선 ‘대조’유신쿠데타 4개월 후 유신헌법에 의해 실시된 1973년 제9대 총선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였다.8대 소선거구제와 달리 9대부터는 중선거
안석호·이기택·장창수·심완구씨김기홍·이일성·이영채·조덕구씨정계석, 김형식씨와 부인 이순자씨최형우 국회의원의 부인 원영일씨최 의원의 동생 최형호씨 등욕설·구타·물고문·전기고문출옥 후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도유신은 북침에 대비한 국력의 조직화와 능률의 극대화라는 미명하에 시작되었다.국회해산 및 헌법 효력의 정지를 내용으로 하는 유신을 발표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은
국회의원 당선 이후 우석과 첫 만남우석 “야당 때문에 국회 오래가겠나”야당의 내홍, 대통령 장기집권 빌미이후 기자에 유신 정보 듣고 말했다유신 선포 일주일뒤 헌병대 끌려가야당인사들과 몽둥이질·고문 당해8대총선에서 당선되었던 최형우 의원에게 몇 가지 고민이 있었다. 첫째는 그가 우석 이후락의 도움으로 당선되었다는 풍문이었다. 당시 국회에서 축하 인사를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