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시작이다. 개학이다. 개학을 앞둔 2월, 학교는 본격적으로 한 해를 준비한다. 사람들은 1월, 한 해를 시작하며 새해를 다짐한다. 학교에 있는 우리는 3월, 개학을 맞이하며 다시 본격적으로 한 해를 시작한다.시작하는 학교는 설렘이 가득하다. 서로를 배려하는 움직임도 따스하다.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한동안 지속된다.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다. 아이들은 새 학급에서 새 담임, 새 친구를 만난다. 교사들은 누군가를 떠나보낸 자리에 다시 누군가 반갑게 맞이하며 새롭게 업무를 시작한다. 한 해가 시작된다.담임으로 아이들을 만나며 나는
울산 교육 현장에도 미래 교육에 대한 관심이 ‘핫’하다. 각 교실에는 전자 칠판을 설치하고 각 학교마다 지능형 과학실 구축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러한 바람의 중심에 있는 것이 미래교육관 설립이라고 할 수 있다.울산 미래교육관은 2026년 개장을 목표로 준비되고 있는 교육청 사업이다. 국내 최초의 지속가능발전 교육관으로 ‘미래형 공간 위에 융합·첨단 콘텐츠를 활용해 다양한 인류의 문제를 학교 수업과 연계한 프로젝트 학습 방법으로 체험하고 교육하는 공간’을 지향한다.이러한 미래교육관의 역할 중에서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바로 ‘미래형
학교라는 사회에서 2월은 교직원의 인사이동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새로운 학급 편성이 발표되는 만남과 이별이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시기이다. 이별도 여러 종류가 있어서 아쉬운 이별이 있는가 하면 후련한 이별도 있다. 헤어짐을 가리키는 우리말 중 관계나 교제를 영원히 끊는 ‘절교(絶交)’, 애틋하게 이별하는 것을 뜻하는 ‘석별(惜別)’, 소매를 잡고 헤어진다는 뜻으로 섭섭히 헤어짐을 이르는 ‘몌별(袂別)’, 존경하는 사람과의 작별을 높여 이르는 ‘배별(拜別)’ 등 이별에 관한 어휘가 세분화된 것을 보면 이별의 종류도 그만큼 다양한 것이다.
지난해 9월, 나뭇잎이 색다른 옷을 입기 시작한 가을의 시작에, 나에게도 특별하고 색다른 경험이 찾아왔다. 15년이 넘도록 교과서 영어와 수능 영어 수업만 했던 내가 갑자기 한 번도 영어를 배워본 적이 없는 학생들에게 기초영어를 가르치게 된 것이다. 학생 수는 단 2명. 다름 아닌 우리 학교에 2학년에 재학 중인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영어를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다고 했다. 평소 방과후수업 중에 실시했던 기초영어 수업과는 또 다른 수업이어야함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이 수업을 하겠다고 선택은 했지만, 무엇을
취학통지서를 받은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예비소집일이다. 취학통지서, 기초조사서를 가지고 초등학교로 향했다. 교사로 일하고 있는 나는 학교가 그리 낯선 공간은 아니다. 학교의 모습과 구성원은 제각각이지만 어떻게 운영되는지 옆에서 볼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의 경험과 익숙함이 오늘은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교문을 지나 교무실로 향하면서 ‘실내화로 갈아 신어야 할까? 그냥 올라가야 할까? 덧신은 있을까?’를 고민했다. 다른 학부모의 모습을 곁눈질하며 살피는 모습이란. 영락없는 신입생 학부모다. 교무실에 준비해 간 서류를
다시 한 해가 시작됐다. 지난 연말 우리는 새롭게 한 해를 시작하며 많은 사람에게 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스스로 새로운 계획과 소망을 다짐했다. 매년 우리는 비슷하다. 계획과 소망이 좀 더 절대적으로 중요한 어느 해도 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어느 시기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대부분은 하는 일이 잘 되기를, 가족 모두 건강하기를, 다시 시작되는 한 해가 무탈하기를 바라며 한 해를 시작한다. 막연하다.나에게도 그 막연한 계획이 가장 중요한 목표다. ‘현재 나의 삶이 유지되는 것’만큼 절대적으로 중요한
교사들이 자신의 자료를 만들어 공유하는 한 커뮤니티의 이야기 광장에서 요즘 가장 ‘핫’한 이야기는 바로 ‘이직’이다. 공무원이 그것도 교사가 이직을 꿈꾸다니 사람들은 소위 ‘배가 불렀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10년 차 교사로 이 일을 하며 필자 역시 현재 가장 큰 고민거리가 무엇이라고 물어본다면 이직이라 한다.필자에게 왜 이직을 꿈꾸냐고 물어본다면 첫째, 교사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교사에게는 직업적인 도의적 잣대가 존재한다. 다른 사람이 하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 교사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거나 허락되지 않는다. 스스로 자신의
그날 따라 수업은 고되었다. 오후 내내 정신없이 움직이다 학생들을 보내고 마침내 의자에 앉았을 때, 직장 상사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을 들었다. 관내 경조사 공지도 아닌 뉴스 속보로 날아든 소식이었다. 황망한 마음으로 멍하니 모니터를 보다가 속수무책으로 흘러내린 눈물을 닦고 학년 회의를 하러 갔다.그의 페이스북 마지막 글은 고작 7시간 전에 올라온 것이었다. 바로 전 날의 일정이 정리된 글 아래로 최근 참석한 행사들이 빼곡히 보고되어 있었다. 담벼락을 훑어보는 사이 애도의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
2022년 22회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이 16강에 진출했다. 한국의 16강 진출은 월드컵 역사상 이번이 세 번째다. 대한민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한 2002년 17회 월드컵이 한국이 최초로 16강을 넘어 4강까지 진출한 대회였다. 그리고 2010년 19회 남아프리카공화국 주최 월드컵에서 한국은 두 번째로 16강에 진출했다. 2022년 12월3일 새벽 9%라는 확률을 100%로 만들며 세 번째 16강에 진출했다.이번 대회를 보는 동안 20년 전 대회와 병렬적으로 생각하는 특별함이 있었다. 많은 국민이 비슷했을 것이다. 그 시절 청소년
필자가 초등학생일 때는 12월이면 겨울방학을 시작했다. 신나게 1월을 보낸 후 2월에 다시 학교에 나가 친구들이랑 끝난 교과서를 정리하고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봄방학이 시작되고 난 뒤에 새로운 반으로 새 학년을 맞이했다.그러나 시대적인 요구와 이를 반영한 교육청의 권고로 교육과정이 변화했다. 2월의 수업 결손을 최소화하고 학생들에게 조금이나 나은 교육을 하기 위해 겨울방학을 미루는 결정을 했다. 1월까지 수업을 이어 하며 모든 학년의 교육과정을 마무리짓고 1월 중순부터 겨울방학을 시작하게 된다. 즉 1월에 종업
안녕! 사랑하는 3학년~수능이 끝나고 월드컵을 즐기며 제법 시끌벅적 지낼 것 같았는데 오히려 수능시험 전보다 더 조용한 교실. 이 고요함이 의젓함으로만 생각되지 않고, 어쩐지 조금 서글프다. 너희는 코로나로 입학식도 못하고 두 달 넘게 원격수업을 하고서야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3년 내내 짝지도 없이 친구들과 늘 저만치 떨어져 지내서 그런지 아직도 서름하구나. 너희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모여 떠들고 같이 땀 흘려 운동하고 종이 치면 못내 아쉬워 허겁지겁 급하게 교실로 뛰어 들어가는 평범한 일상을 누리지 못했다. 수
인류 최고의 축제인 월드컵 기간이다. 한국 축구는 이번에도 16강을 목표로 노력해왔다. 한 때 32년간 월드컵에 올라가지 못했던 한국은 36년(10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기록을 세울 정도로 아시아의 축구 강국이 되었다. 한국의 월드컵 도전사를 교육현장과 묶어서 글을 써보고자 한다.한국의 최초 월드컵 출전은 1954년 스위스 대회였다. 가난한 한국은 비행기 표값이 없어서 미군 수송기를 얻어 탔다. 5개국을 거쳐 스위스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선수들은 유니폼에 등번호를 바늘로 겨우 꿰맸고, 시차 적응할 시간도 없이 헝가리전 9대0,
11월은 여러모로 힘들다. 9, 10월 동안 의욕적으로 프로젝트와 교육 행사들을 하고 나면 어느새 11월이 와 있다. 여름방학 동안 충전해 온 에너지가 고갈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남아 있는 시간에 비해 해야 할 수업과 업무가 여전히 많아 아득하기도 하다. 학생들도 학년 말이 다가올수록 점점 어수선해지고, 전체적으로 붕 뜬 분위기가 되곤 한다. 그러다보니 11월은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시기이기도 하다.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올해도 11월이 시작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학생들이 다치는 일들이 잦아졌다. 복도에서 장난
시선은 행동이다. 시선은 관계를 만든다. 시선으로부터 관계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바라봄은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여는 최초의 행동이다. 관심의 표현이고 관계의 시작이다. 그러나 바라봄은 경계의 시작점이 되는 최초의 행동이기도 하다. 그래서 소외와 편견의 시작이기도 하다.시선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만든다. 누군가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동일하지 않다. 우리는 모두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누군가는 관심으로, 누군가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우리가 나누는 시선에는 특정 값이 덧대어 있다. 나는 누군가와 대화할 때 그 사람의
마냥 하는 것 없이 바쁘다. 느긋함을 잃고 자주 경솔해져 나부낀다. 미간에 힘이 들어가고 말투는 드세지고 이유 없이 빠른 걸음걸이는 늘 위태롭다. 낭만실조다! 마침표뿐인 산문적 일상에 쉼표와 느낌표, 물음표와 줄임표가 필요하다. 행과 연의 여백이 그립다. 시(詩)가 고픈 것이다.나에게도 낭만이 흘러넘치던 서정시대가 있었다. 주말엔 시집을 읽으며 학생들과 함께 감상할 시를 고르고 시에 대한 느낌과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썼다. 해설서의 설명이 아닌 가슴으로 느낀 절절한 감동과 시인의 마음을 오롯이 전달하고 싶어 늘 애가
“우유는 완전식품이 아니다. 밥 대신 먹을 수 있나? 야식거리인가? 술안주가 되는가? 옆 사람이 한 입만 달라고 매달리나? 우유가 아니라 라면이 완전식품이다.” “우유를 마시는 사람보다 더 건강한 사람은? 우유배달부.” “세종대왕이 마시는 우유는? 아야어여오요우유.” 우유에 얽힌 이야기가 많을 정도로 우리는 우유를 많이 접해왔다. 학창시절 우유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보자.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을 많이 도와준 나라가 미국이다. 구호물품이 미군을 통해서 들어왔고, 각 학교에서 학생에게 배부됐다. 그 중 하나가 분유였다. 당시
3년 만에 운동회가 돌아왔다. 같은 학년끼리 오전 시간 동안 하는 작은 운동회지만 날짜가 다가올수록 어린이들은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각자 어떤 경기에 참가할지를 결정할 때 그들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여전히 전 학년이 모이는 큰 행사는 하지 못하고 있지만, 동시에 두 학급까지만 사용할 수 있었던 체육관에 여덟 반이 다 모인다는 걸 생각하면 이제 한 시기가 지나간다는 걸 체감할 수 있어 반가웠다.전통적인 방법대로 홀수 반을 청팀, 짝수 반을 백팀으로 나누어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운동회 당일 아침, 복도에 선 학생들이
생각은 학습된다. 행동도 학습된다. 학습된 생각과 행동은 습관이 된다. 그리고 학습된 습관은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인간의 삶을 조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인식 체계를 조정하면 된다. 우리는 문제 상황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서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는 내면화된 인지구조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한다. 인지구조를 조정하면 그다음 단계부터 우리는 스스로 움직인다. 한 사람의 삶을 지배하는 방법은 스스로 자기의 삶을 통제하도록 인지구조를 제어하는 것이다.생각의 기저가 되는 인지구조는 사회적 가치의 영향을 받는다. 살아
긴 연휴의 끝에 아침부터 들어온 교실이 아이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하다. 오늘은 자리를 바꾸는 날. 6학년이 되어도 아이들은 이날이 가장 설렌다. 선생님을 보며 활짝 웃는 얼굴, 반가운 인사. 방금 전까지 꾸물거리며 출근하기 싫었던 마음이 쓱 내려간다. 비가 오는 날이면 학교는 더욱 시끌벅적하다. 그래도 아이들의 마음 날씨는 맑음인가보다.내가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교생실습을 나가서이다. 똘망똘망한 눈초리로 잔뜩 긴장해 있는 교생을 보며 아이들은 신기한 듯, 반가운 듯 빙글빙글 웃는다. 선생님~ 선생님. 병아리가 엄마 닭 따라다
사라, 올가, 매미, 장미, 루사, 곤파스, 차바…. 모두 태풍 이름이다. 그 동안 한국을 통과한 태풍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사람마다 태풍 기억이 선명할 정도로 피해가 심했고, 교육현장 또한 태풍에 얽힌 이야기가 많다.어르신 기억에 가장 큰 태풍은 1959년 ‘사라’일 것이다. 당시에는 호(號)를 붙였기 때문에 ‘사라호 태풍(Sarah 號 태풍)’이라고 불렀다. 6·25 전쟁 복구가 덜 끝나서 여전히 살기 힘든 시절에 추석을 앞두고 초가집이 날라갔고, 온 살림이 물에 잠겼다. 부숴진 집을 뒤로한 채 등교한 학생 눈에 들어온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