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피었다고너만이 꽃이라고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너무 늦게 피었다고너는 꽃이 아니라고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우리는 서로꽃피는 날이 다를 뿐,너는 꽃이다 나도 꽃이다단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고나 너를 기다리고 너 나를 기다리는우리는 꽃이다 중졸학력에 막노동꾼이 두 아들을 직접 가르쳐 서울대에 보낸 감동의
바다는 언제나 정면인 것이어서이름 모를 해안하고도 작은 갯벌비껴서 가는 것들의 슬픔을 나는 알고 있지언제나 바다는 정면으로 오는 것이어서작은 갯벌하고도힘없는 모래 그늘 게걸음을 통해서 지혜를 배우게 하는 시다. 지혜는 지식과는 무관하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에서 우러나온다. 사회는 자신의 의지대로만 살면 힘들어진다.
머나먼 천리 길을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다네이제 남은 엽전은 겨우 일곱이거늘 오히려 많다고 여기네주머니 속의 엽전에게 “너 깊숙히 숨어 있거라” 조심을 시켰건만땅거미 지는 들판의 주막에서 술동이를 봐버렸으니 이를 어이할꼬 막걸리가 생각나는 시다.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며 전국을 떠도는 시인이니 주머니 사정이야 뻔하다. 남은 엽전이 일곱뿐인데 혹여 그것마저 바닥
이 브로치는 잠시도 경계를 늦추는 법이 없다 공중을 선회하다 머뭇거리지도 않고 내려앉는 비행채, 여섯 개의 다리를 내려뜨려 바퀴를 어깨에 묻는다 예민한 수뇌부의 번뜩이는, 헬리콥터의 둥근 조종석을 들여다본다 검은 줄무늬 기체 내부엔 어떤 거물을 태웠을까 도대체 안이 들여다뵈지 않는다 일곱 마디 꼬리 끝에서 비밀지령인 듯 떨리는 프로펠러, 이것이야말로 영혼의
저 아름다운 깃털은오솔오솔 돋던 소름이었다지창공을 열어 준 것은가족이 아니라 무서운 야수였다지천적이 없는 새는 다시날개가 사라진다지닭이 되고, 키위가 된다지 마음으로 우리의 이솝이라고 기억하는 시인의 시다. 짧은 시에 송곳 같은 메시지가 담겨 있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가혹한 환경이 문명을 낳고 인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
하나라고 여겼던 심장이 두 갈래로 벌어지던 저녁이 있었고 2인분의 생을 사는 1인분이 되었고 예고 없이 폭설이 왔고 심장 하나를 떼어내 움켜쥐고 눈 위에 팡팡 두드렸고 1인분의 기억이 사라졌고 나머지 심장 하나가 뜨거운 혈액을 온몸으로 푹푹 내보냈고 둘이라고 여겼던 심장 하나로 뭉개지던 그날만이 남았고… 사회가 진화할수록 사랑도 복잡해졌다. 옛
낡은 사진을 전등 불빛 가까이 대보면앞쪽에서 셔터를 누르신 아버지가 보이는 듯하다반짝 터진 플래시에나는 빛을 받으며 세상에 인화되었다저녁나절에 찍은 아이 사진방금 내려받은 디지털 사진 속에 나는 없다이미 앞쪽에서 사진만 찍을 뿐이다테두리 바깥에서야 보인 아버지앵글 중앙에 서 있던 어린 나는 지워졌다포커스를 조절하던 아버지가 사라진 뒤사진 속에서 천천히 걸어
지리산 앉고섬진강은 참 긴 소리다.저녁노을 시뻘건 것 물에 씻고 나서저 달, 소리북 하나 또 중천 높이 걸린다산이 무겁게, 발원의 사내가 다시 어둑어둑고쳐 눌러 앉는다.이 미친 북채의 향기는 어디 숨어 춤추나매화 폭발 자욱한 그 아래를 봐라뚝,뚝,뚝, 듣는 동백의 대가리들,선형의 천둥난타가 지나간다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놀라운 미(美)의 ballroom이다. 세노테의 햇살처럼 물길이 만들어낸 희귀한 석순처럼, 세월이 지나도 빛을 낸다. 쉼 없이 서로를 에메랄드빛으로 학습한 노래, 황홀한 물의 결집이다. 어떤 일이든 함께 공감할 때 서로의 존재는 믿음을 먹고 더 높이 성장한다. 간혹 마음의 창문에 구멍이 뚫려 검은 바람이 들기도 하지, 그러나 이는 내 생각이 네 생각이기 전
도심 골목 담벼락 밑 작은 꽃밭어느 할머니 애지중지 상추와 쑥갓을 키웠으리자식들 따라나서며 논밭을 버린속 창시 빠진 마음솔솔 재미 붙이는데누가 자꾸 뽑아가나 그 심사궁리 끝에 헌 종이박스에 써서 꽂아 놓았구나도동년 나뿐연상추 뽀바간연처먹고 디저라한두번도 아니고 매년아따 그러니까 이게 저주라면 참말로 독한 저준데상추 먹고 급살 맞을 사람 어디 있을까할머니는
내가 오른쪽이라 했을 때 꽃은 더 쪽을 바라보고 있다내가 위쪽을 가리키자 잎사귀는 가만가만 덜 쪽을 응시하고 있다귀를 감은 왼쪽이 천천히 찻잔에서 흘러내리고내가 고여 있는 아래쪽은 뿌리가 있는 늘 쪽이다줄기가 휘어지는 빨리 쪽은 내가 바라보는 앞쪽이다내가 뒤쪽으로 돌아설 때 비는 가끔 쪽으로 내리고내가 염려하는 안쪽은 붉은 열매의 너무 쪽이다
바람 속에 아직도 차가운 발톱이 남아 있는 3월.양지쪽에 누워 있던 고양이가 네발을 모두 땅에 대고햇볕에 살짝 녹은 몸을 쭉 늘려 기지개를 한다.한껏 앞으로 뻗은 앞다리.앞다리를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뒷다리.그 사이에서 활처럼 땅을 향해 가늘게 늘어지는 허리.고양이 부드러운 등을 핥으며 순해지는 바람.새순 돋는 가지를 활짝 벌리고바람에 가파르게 휘어지며 우두
서울 어느 뒷골목번지 없는 주소(住所)엔들어떠랴.조그만 방이나 하나 얻고순아 우리 단둘이 사자.숨바꼭질하던어릴 적 그때와 같이아무도 모르게꼬옹 꽁 숨어 산들 어떠랴.순아 우리 단둘이 사자.-중략-깊은 산 바위 틈등지 속의 산비둘기처럼나는 너를 믿고너는 나를 의지하며순아 우리 단둘이 사자. 시 노래다. 김억의 추천으로 문
지하도 계단에서 누운 깡통을 본다.빈 채로 말하는 시대의 생존 구조깡통은 목숨이었다. 저녁 8시 시청역.가장 낮은데서 구하는 목숨의 풍경슬픔의 깊이만큼 어둠은 더해가지만절망을 넘어선 노래 다시 불러야해.아직 길이 멀다. 신규 채용, 실업률 감소돌아갈 그리운 번지 잊은 건 아닌지눈물이 웃음을 부르듯 그런 시간 어딘가 국력이 ‘깡통에 관하여’ 생각해 볼 때가
봄동배추 씹을 때바스락거리는 건 어린 추위들의 연둣빛 마음세상 어느 것과 비교도 안 되는 그단 맛 우물거릴 때 입안에서 파들거리는 건발전소처럼 윙윙거리는 바람떼거나 한 밤,가슴에 끌어당겼을 먼 마을 불빛, 잔기침처럼 쏘아올린 별들-중략-마침내 순해진 고 짐승 어여 와 어여 와! 손주이듯다독이는 할머니의 다정 같은 게 들어 있다구체적으로 부서지면서 배추는그
그대 늙어 백발이 성성하고 잠이 가득해난롯가에서 꾸벅꾸벅 졸거든, 이 책을 꺼내 들고천천히 읽으시기를, 그리고 한때 그대의 눈이 품었던부드러운 눈빛과 그 깊은 그늘을 꿈꾸시기를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대의 발랄하며 우아한 순간들을 사랑했으며거짓된 혹은 진실된 애정으로 그대의 아름다움을 사랑했는지,그러나 어떤 남자가 그대 속의 방황하는 영혼을 사랑했고그대의 변화
마음 스치고 간 칼날들이 그믐달로 뜬다일생 땅에 집을 짓지 못하는 칼새의 짧은 다리, 긴 날개허공에 알을 놓고 허공을 박차고 허공에서 낫을 갈고허공만이 그의 허파였던 달은 수만 가지 생각 덩어리다. 북반구 기준에서 보면 왼쪽이 불룩한 상념의 가지들, 때로는 우리님의 고운 눈썹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상처의 칼날이 되기도
뜰 앞에 버들을 심어님의 말을 매렸더니님은 가실 때에버들을 꺾어 말채찍을 하였습니다.버들마다 채찍이 되어님을 따르는 나의 말도 채칠까 하였더니남은 가지 천만사(千萬絲)는해마다 해마다 보낸 한(恨)을 잡아맵니다. 사랑도 이만하면 짝사랑에 가깝다. 님 보낸 뒤 실버들 천만사(千萬絲)는 그 님을 향한 천만사(千萬思)가 되었으
온 봄 내 홀딱 벗고도 더 벗을 게 남았는지산길 경사만큼 목청을 높여가는검은등뻐꾸기를 나무라는이름 모를 새의 한 마디지지배야지지배야가산산성 진남문에서 동문 올라가는 길말귀를 못 알아듣는 척뒷모습이 더 고운 쪽동백꽃의 하얀 능청 쪽동백을 붉은 동백꽃으로 연상하면 오독이다. 때죽나무꽃과 비슷하게 생긴 흰빛깔이다. 접두어 ‘
다랭이마을에 밥무덤이 있다손바닥만한 논뙈기, 식구들 배불리먹게 해달라고 해마다밥무덤에 하얀 쌀밥을 묻는다넙죽 밥을 받아 먹는다나도 나에게 매일 밥을 올린다솥무덤에서 지은 밥숟가락무덤으로 퍼서나에게 먹인다내가 무덤이다무덤이 밥을 먹고 자란다-중략-오늘도 집무덤으로 퇴근한다 남해 가천 다랭이 마을에 가면 100여개의 계단식 논과 밥무덤이 있다. 경사면에 자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