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언제나 혼자눈물을 보인 적이 없는 그대의 눈동자에는 쓰디쓴 빛 같은 것이 있어서나는 좋다그대의 맹목적인 이미지는이 세상은 황량한 사냥터며 그대는 하나의 마음을 늘 쫓고 있다겨울의 헌터이다그대는 말을 믿지 않는다모든 마음을 살륙하고 온 그대의 발자욱에는공포에의 깊은 동경이 있어서우리들은 견들 수 없게 된다그대가 걷는 가느다란 선에는눈 위에도 피 내음이
옛 신라 사람들은웃는 기와로 집을 짓고웃는 집에서 살았나 봅니다기와 하나가처마 밑으로 떨어져얼굴 한쪽이금가고 깨졌지만웃음은 깨지지 않고나뭇잎 뒤에 숨은초승달처럼 웃고 있습니다나도 누군가에게한 번 웃어주면천 년을 가는그런 웃음을 남기고 싶어웃는 기와 흉내를 내 봅니다‘신...
비 오는 날우리 교실은 커다란 배였으면…. 왼쪽 창가의 영이와 식이는 왼손으로 오른쪽 창가의 웅이와 현이는 오른손으로 철벙철벙 노를 저어 집까지 갔으면….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집까지 갔으면…. 비는 감성적이다. 하지만 비 오는 날은 아이도 어른도 걱정은 마찬 가지. 온갖 새들도 들고양이 떠돌이개들도 움직이는 개체는
우리 학교에서 인사 제일 잘하는 아이는?나. 박한별믿을 수 없다면 교장 선생님께 여쭤 봐열 번 보면 열 번 다 인사하는 걸우리 학교에서 젤 잘 웃는 아이는?나. 박한별우리 반에서 공부 젤 잘하는 아이는?너희가 더 잘 알지?그럼 우리 반에서 달리기 제일 잘 하는 아이는?현용이?아니. 엄마 없다고 놀리는 현용이 끝까지 따라가서 등짝 한 대 멋지게 날려준나. 박
학교가 여름 방학을 하면산,들,바다는개학을 한다.자연책을 빠져 나온매미가 울고,음악책을 뛰쳐나온고기를 잡으러 강으로 갈까나… ….교실보다더 큰 교실을 연다.개구쟁이에서부터 열심히 일하는 아저씨들까지 방학이고 휴가철이다. 방학이 즐거운 것은 안에서 갇힌 공부보다 바깥세상의 공부가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바깥 공부는 하는 것이
엄만 내가 왜 좋아? - 그냥… ….넌 왜 엄마가 좋아?-그냥… ….떡잎은 수분과 햇빛과 바람으로 인해 자라지만, 아이는 무한한 사랑을 먹고 커간다. 떡잎과 아이의 공통점은 여리고 지각이 없기에 물리적 힘을 가하면 생명마저도 위협을 받을 수 있다.어미가 새끼를 돌보는 것은 모든 만물의 본능이긴 하지만 때로는
말이 있다어떤 이는 말의 눈을 사랑하고어떤 이는 비단 같은 갈기또 어떤 이는 말의 안장을누군가는 말의 이빨을 찬양하고또 누군가는 말의 재갈을 쓰다듬고제각기 강철 말굽에 말굽 표식을 남기며나는 말을 가졌네 나는 말하는 몸을 가졌네노래하지만세상의 마굿간은 텅 텅 빈 채낡은 고삐엔 바람만주렁주렁 매달려 있다내가 방목한 말들내가 사육한 말들의 무덤은어디일까어디에나
이 상처에 서사적 고통이 있는 것 같고,어느 날의 기억력은 술집에 얼결에 동석하게 된 낯선 사람과 기울이는 술잔 같고,인생에 홀연히 나타난 한 시간 동안의 친구 같고,우리가 새빨간 거짓말과 사실을 도무지 분별할 수 없는 사이라면 간신히 진실을 말 할 수 있을 것 같고,빨간약을 구해줘, 이 말은 암호 같고 우스갯소리 같고,어디선가 어두운 목소리와 밝은 목소리
틈이 고맙다숨길을 터준다숨길 없는 틈은 죽음이다문과 문 그 틈새로달빛과 별빛이 오고꽃잎과 꽃잎 틈새로 벌과 나비가 오고악수하는 손과 손 틈 사이입술과 입술 틈 사이로달콤한 사랑의 향이 온다새벽 다섯시와 새벽 네시 오십구분 오십구초 그 틈새로푸른 새벽이 도착한다틈을 사랑하는 나는일하는 틈, 운전하는 틈, 틈시를 읽고 시를 쓴다오늘도 손녀가 ‘뽀로로’티비 보는
면도를 한다.수염이 아니라 뭉툭한 입술입술 뒤에 숨은교활한 혓바닥을 슬쩍 눌러 버린다.슬쩍그러나 깊이 전류(電流)처럼 뻗히는잔인(殘忍)한 청결감(淸潔感)미처 아픔을 느끼기 전미처 피가 배 나오기 전말이 미처 말 되기 이전의말의 그 속살의 단면( 斷面)흐려질라 햇빛을 막아라빛없는 곳이라야 제빛이 살아나는위험한 유혹이다 그것은유혹에 끌려 빗나가는 손아니 나의
마른 멸치 내부에는 헐리고 있는 초가집 내부에서 보는 것 비슷한 뼈대가 있지만 그보다도 훨씬 더 정교한 흔적이 있다.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인체해부도보다 섬세한 구도로 멸치는 신체내부의 힘의 배분과 균형 그리고 정확한 치수를 선박 설계도처럼 관리한 증거를 화석처럼 가지고 있다.멸치의 빈 내강은 물을 치는 자세 부드러운 몸짓 그리고 은백색 선으로 반짝이는 바다
아침 풀잎에 매달린 이슬 방울. 햇살이 쏴- 비집고 들어 터질듯 부신 빛덩이. 산 메아리 방울져 포름 포름 구울리는 눈동자. 고 작은 눈에 그 많은 눈에 숨결처럼 번진 산새 소리―. 잎새 소리―. 고 작은 눈에 그 많은 눈에 가득히 해님을 녹여 아― 뿜어내는 산 소리 토해내는 무지개. 이슬, 참 맑다. 나뭇잎과 풀잎들의 보석. 값을 따지지 않는다. 빈 듯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내 가슴은 뛰누나나 어렸을 때도 그랬고어른이 된 지금에도 그렇고늙어서도 그러기를 바라노니그렇지 않다면 죽음이나 다름없으리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바라노니, 내 생애의 하루하루가경건한 마음으로 이어지기를… 여름날 소나기가 다녀 간 하늘에 아치형의 오색 무지개를 발견하면 누구나 가던 걸음을 멈추고 경건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