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의 6촌장들이 알천에 모였대. 자신들이 모실 군왕을 찾으려고 높은 곳에 올라가 남쪽을 바라보았지. 양산 기슭에 있는 나정에서 번개가 치는 이상한 기운이 드리워져서 가보니, 거기서 흰말이 엎드려 절을 하는 거야. 말이 울던 자리에는 자줏빛 알이 있었지. 말은 사람들을 보자 길게 울고서는 하늘로 올라갔어. 알을 깨자 사내아이가 나왔지. 동천 샘에 목욕시키니
“당나라의 오른쪽 건너편에 있는, 산지와 황금이 많아 무슬림이 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나라, 신라. 귀족들이 사철 놀이택을 찾아다니면서 노는 나라.” 지금의 인도에 있던 옛 이란 아바스왕조 때 활동한 지리학자 이븐 쿠르다지바가 쓴 에 나오는 기록이야. 그가 신라의 사철 놀이택을 둘러봤단 얘기지. “알 살람 알레이쿰?(안녕하세요)”, 반갑
후한서에 나와. “진한(辰韓)의 어르신이 말씀하시길, 진나라(秦)에서 망명한 사람들이 들어오니 마한이 동쪽 땅을 떼어주었다. 서로 ‘무리’라고 부르는 그들의 언어는 마치 진나라의 말과 같았다. 그래서 진한(秦韓)이라고도 한다. 이곳엔 12개의 조그마한 나라들이 있어 각각 1만 호가 되었는데 저마다 ‘나라’라고 일컬었다.” 최치원은 이렇게 말했지. “진한은
신라의 시조 혁거세가 거서간일 때 변한 사람이 나라를 바치겠다고 항복해 왔대. 말이 그렇지, 제 땅을 갖다 주는 우두머리가 어디 있겠어? 힘이 센 신라가 변한 땅을 아우른 게지. 알다시피 변한은 나중에 백제가 들어선 땅이잖아. 그 변한이 신라 땅이 되었다면 옛날에 변한이던 그 신라 땅에다가 온조왕이 백제를 세웠다는 이야기지. 백제의 전성기에는 가구 수가 1
헌신과 희생이 있어야 나라를 세운다는 중요한 이야기가 고구려 편에 나와. 금와왕의 도움으로 유화가 주몽을 낳는 이야기. 주몽이 유화의 도움으로 동부여를 빠져나오는 이야기. 친구와 현인들의 도움으로 졸본성(흘승골성)에 나라를 세우는 이야기가 그거야. 하백에게 쫓겨난 유화가 우발수 강가에서 울고 있었지. 금와왕이 그곳으로 봄나들이를 나왔어. 자초지종을 말하자
해부루가 북부여의 왕일 때, 신하 아란불의 꿈속에 천제가 나타났지. “앞으로 내 자손이 여기에 나라를 세울 거니 너흰 가섭원으로 옮겨 가거라.” 아란불은 꿈 이야기를 했고, 해부루 왕은 흘승골성을 떠나 동쪽으로 도읍지를 옮겼단다. 그게 동부여라는 나라야. 해부루는 늙도록 왕 자리를 물려줄 아들이 없었어. 그가 곤연이라는 연못으로 나들이 갔을 때야. 말이 걸
서기전 58년 음력 4월8일에 천제는 오룡거를 타고 흘승골성으로 왔지. 흘승골성, 됫박 모양의 뼈같이 생긴 성이라는 뜻이야. 중국 요령성 환인현에 있는 오녀산성을 검색해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거야.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산성은 고구려 유적지라고 되어 있어. 숲길로 난 돌계단을 땀 뻘뻘 흘리면서 올라가면 위풍당당한 꼭대기에 닿아. 거기엔 백두
자칫했으면 우리 역사에서 가야가 사라질 뻔했지. 삼국사기엔 가야가 나오지 않거든.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에 가락국기를 남겼기에 이 땅에서 500년을 이어온 가야를 알게 된 거야. 당시를 삼국시대라고 부르는 건 잘못이야. 가야의 시조는 5가야의 왕들을 거느린 엄연한 제국의 대왕이었거든.어느 날 하늘에서 알이 다섯개 달린 자줏빛 끈 하나가 구지봉으로 내려왔단다.
반시와 미나리의 고장, 이서국을 아는가. 소싸움으로도 이름난 경북 청도가 ‘저 서쪽 나라 이서국(伊西國)’이었지. 신라에 나라를 앗긴 당시엔 말싸움으로 유명했대. 이서 말과 사로(신라) 말이 싸우면 구경꾼도 패가 갈려 응원을 했지. 철기문화를 일찍 꽃피운 덕에 쇳물이 끓던 대장간이 많았고 갑옷과 투구, 무기가 남달라서 땅은 작았지만 기상이 드높은 나라였지.
대조영과 걸사비우는 발해를 세운 두 주인공이야. 고구려가 망하자 많은 유민이 신라에서 노비로 살기 싫어 당나라로 넘어갔지. 그 유민 가운데 끼어 있던 한 사람이 대조영이고. 당나라로 끌려가던 그가 말갈의 우두머리인 걸사비우를 만난 건 하늘이 맺어준 기회였어. 그는 고구려 유민의 일부를 이끌고 나와 걸사비우와 함께 측천무후에 맞서게 된 게야. 악명 높은 여제
삼국지에는 우리 땅에 남대방이 있었다는 기록이 나와.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에다 그걸 옮겨 적었지. “위나라의 조조 때 남대방군을 두었기에 남대방이라 한 것이다. 대방의 남쪽은 바닷물이 천리나 되니 한해(대마도 남쪽바다)라고 했다.” 삼국지의 한전과 왜전에 나오는 글을 하나씩 풀어서 이야기해 볼까. 한(우리나라)은 대방의 남쪽에 있고, 동쪽과 서쪽은 바다에
“북대방은 본디 죽담성이다. 유례 이사금 4년 대방과 낙랑사람들이 신라에 항복해왔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북대방에 관한 기록의 전부야. 삼국사기에는 “유례 이사금 4년 4월, 왜군이 일예부를 불태우고 천여 명을 납치해 갔다”고 나와. 후한이 낙랑군의 버려진 땅에다 설치했다는 북대방. 그곳이 어디인지는 몰라도 죽담성이 우리 땅이었던 건 틀림없어. 우리의 옛
진정한 사랑은 죽음마저 넘어선대. 사랑을 위해 죽어간 낙랑 공주를 보면 알 수 있어. 사랑하는 남자의 부탁에 나라의 앞날마저 끊어낸 여자. 죽을 줄 알면서도 적의 침략을 알려주는 자명고와 뿔나팔을 없앤, 너무나 순수해서 모진 그 마음. 살아서는 이루지 못할 것을 죽어서야 이룬 사랑 이야기. 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의 국경을 넘은 연애에는 무슨 사연이 있었던
삼한 시대에 그 많은 나라가 있었다고? 두우가 쓴 통전을 보면 나와. “조선의 유민들은 70여 국에 사는데, 이들의 땅은 모두 사방 백 리였다.” 범엽의 후한서에는 이렇게 나오지. “한나라가 조선의 옛 땅에 처음 4군을 두었다가 뒤에 2부를 두었다. 차츰 법령이 번거로워지자 이를 78국으로 나누니 이들의 집은 각각 만 호였다.” 그리고는 알기 쉽게 주석을
후한의 반고는 전한서를 쓰다가 두헌 장군을 따라 전장으로 떠났어. 여동생 반소가 오라버니의 글을 넘겨받아 다듬어서 기록했지. 우리 역사서에 빠진 그 글을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에다 옮겨 적었어. “전한서에 나온다. 소제 시원 5년 기해에 2부를 두었다. 조선의 옛 땅인 평나와 현도군 등을 평주도독부로 삼고, 임둔 낙랑 등 두 군의 땅에 동부도위부를 두었다.”
두 이름으로 불리는 한 나라, 마한. 마한은 역사서에 대게 이렇게 나와. “위만에게 쫓겨난 고조선 준왕이 바다를 건너 남쪽 한의 땅에 이르러 나라를 세웠다. 마한이 먼저 일어나고, 뒤를 이어 혁거세가 일어났으며, 백제는 금마산에서 나라를 일으켰다.” 삼국사기에는 이렇게 나오지. “신라는 서기전 57년에, 고구려는 서기전 37년에 일어났다. 마한은 고조선의
연나라 사람 위만이 전쟁을 피해 1000여 명을 이끌고 요하를 건너왔어. 고조선의 준왕은 당신께 충성하러 왔다는 거짓말에 넘어가 그를 국경수비대장에 임명했지. 어느 날 그가 왕검성으로 들어와 반란을 한 거야. 준왕은 어의를 벗긴 채 쫓겨나고 위만이 고조선의 왕이 되었어. 손자 우거왕은 위만의 돌연변이. 한나라가 고조선을 거치지 않고 진국과 교역하자 우거왕이
옛날 하늘나라에 환인천제(환국)가 살았대. 톈산산맥 어디쯤 높은 곳에 나라가 있었겠지. 아들 환웅은 인간세상(태백산)으로 가고 싶어 했어. 아들 이기는 아버지는 없다고 하잖아. 환인은 환웅에게 제왕의 징표인 천부인 세 개를 주고 풍백, 운사, 우사와 사람 삼천을 딸려 보내기로 한 거야. ‘하늘의 뜻으로 사는 세상을 만들자.’ 환웅은 우렛소리가 나는 꽹과리를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한국 사람은 대체 누구냐고. 그걸 알고 싶다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겠지. 나는 누구게. ‘내가 장창호다.’ 지난해 신춘문예 최종심에 오른 동시의 제목. 누가 내 이야길 쓴 걸까.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어. 희곡 쓰는 줄 알았는데 동시도 쓸 줄 아냐. 꿀꿀하더군. 내가 쓴 것처럼 폼을 재려다가 큰 소리로 웃고 말았지. 못 쓸 게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