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지역마다 다과회가 유행이다. 동네 사람들 불러서 간단하게 티 파티를 여는데, 반드시 중간에 "손님"이 오신다. 6·13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예정자들이다. 오늘(5월 28일) 입후보자 등록과 함께 시작되는 선거운동 기간은 불과 보름. 선거법에 정한 기간만으로는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기 때문에 다과회를 통해 주민들과 직접 대화할 기회를 마련하는 것같다. 준비된 각본이지만 모른 척하고 다과회에 가서 후보예정자가 어떤 말을 하는지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나친 향응만 아니라면.

 10여년 전 선거철에 내가 살던 아파트에서 다과회가 있었다. 이사온 지 얼마 안되어 멋모르고 가 앉았는데 내 앞으로 흰 봉투가 왔다. 의아해서 열어보니 3만원이 들었다. 나는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모멸감이 느껴졌다. 아니, 나를 뭘로 보는 거야? 돈으로 표를 사는 사람을 밀어달라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주고 당선되면, 본전 건지려고 얼마나 부정을 저지를까?

 지역발전이니 사회봉사니 하는 그 후보자의 말이 정말 가증스럽게 느껴져서 나는 봉투를 두고 나왔다. 생각 같아선 그 후보의 낙선운동을 하고 싶었다. 다과회를 끝내고 돌아온 이웃들도 입을 삐죽거렸다. "아이고, 저렇게 돈 뿌려서 당선되면 나중에 얼마나 긁어내려고 할까?" 그 후보자는 당연히 떨어졌다. 유권자 의식이 우려할 만한 상태는 아니구나 싶었다.

 "선거는 돈과 조직이다"는 는 말이 공식화되어 있는데, 그 "돈"의 의미가 향응이라면 정말 사양하고 싶다. 공짜 싫어하는 사람 없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다면 참 부끄러운 노릇이다. 우리나라 국민 수준이 그렇게 낮은가? 돈 앞에 사족을 못쓸 만큼 자존심도 없나?

 나는 한 나라 지도자의 수준이 바로 그 나라 국민들의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한 지방의 지도자 역시 그 지역 주민들의 수준과 같다. 지도자를 뽑는 사람이 바로 국민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9시 뉴스가 보기 싫다는 사람, 일간지 정치면은 아예 외면한다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연일 터지는 비리와 부정, 비방과 음해에 넌덜머리가 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는 국민들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나 다름없다. 9시 뉴스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사람들을 뽑은 게 바로 우리 국민들이니까.

 누가 당선돼도 결국 마찬가지라는 냉소는 버려야 한다. 너희들끼리 잘 먹고 잘 살아라 하고 체념하지도 말아야 한다. 자신의 명예나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 출마한 함량부족의 정치인이 당선되는 건 막아야 한다. 그것이 국민으로서의 의무다. 지역민으로서의 권리다. 우리가 포기하면 우리나라 정치가 뒷걸음치고, 겨우 뿌리내리고 있는 지방자치도 그 의미를 잃는다.

 며칠전 뉴스를 보니 6·13 지방선거 투표율이 50% 정도로 예상된다고 한다. 월드컵 기간과 맞물린 점도 배제할 수 없지만 절반의 선택에 이해 당선된 후보자가 과연 민의를 대변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반토막 짜리 지도자를 뽑는 건 우리 스스로의 불행이다.

 택시 운전으로 두 아들을 키워낸 아버지가 아들을 불러놓고 했다는 말 "사회 나가서 뭐든지 해도 좋지만 정치만은 해먹지 마라." 이런 말이 더 이상 인구에 회자되지 않아야 한다. 더 이상 9시 뉴스가 보기 싫지 않도록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모 국회의원은 "정치는 퍼브릭 서비스다. 국민을 위해, 지역을 위해 공적인 봉사를 하는 사람이 정치인이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 정신자세, 그런 긍지를 지닌 사람이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역할이 유권자에게 주어져 있다.

 전례없이 많은 후보자들이 지방선거에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후보자 진영마다 선거운동 방법이 다르겠지만 "선거는 돈과 조직"이라고 우기는 후보자는 제발 당선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 정책대결로 승부하는 선거가 되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유권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고 올곧은 사람을 뽑아서 지도자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으면 싶다. 지도자의 수준은 국민이 결정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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