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축구와 함께 스페인 현대미술이 울산에 왔다. 스페인 축구가 라울, 이에로 등을 앞세워 세계 최강의 하나라고는 하지만 스페인 미술은 그보다 훨씬 강하고 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피카소, 미로, 달리, 따피에스, 고야, 벨라스케스, 그리고 저 멀리 알타미라 동굴벽화까지 세계미술의 시작부터 그들은 항상 큰 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스페인 미술의 기질은 반항적이고, 강하고, 진하다. 피카소는 그의 대표작 게르니카에서 스페인 내란의 비극성에 대한 민중의 분노와 슬픔을 말과 소의 눈물로 격정적으로 표현하면서 치밀한 구도와 함께 무채색 계열의 배색으로 처절한 비극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독특한 마티에르와 색채, 그리고 기호로서 또 하나의 미의 영역을 제시한 따피에스 또한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듯 비천하고 억눌린 자의 편에 서 있는 것이 예술가와 지식인이 지녀야할 자연스러운 자세라고 생각했다.

 이런 기대를 갖고 스페인 현대미술전이 열리는 전시장에 들어섰다. 미리 약속된 큐레이터이자 참여 작가인 하엘리우스를 먼저 만났다. 그에게 이번 작품들의 특징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길게 설명했다. "프랑코 독재 속에서 예술이 억압받던 시대를 지나 80년대에 들어와 갇혀 있던 자유를 충족하기 위해 마드리드 예술운동이 일어난다. 이번에 온 작가들은 이러한 자유로운 시대의 성장기를 거쳐왔다. 당시에는 낮선 운동이었지만 지금은 모두가 인정하는 추상미술 운동이 되었다. 강한 기질이 엿보이고 심상표현을 중요시하는 경향의 작품들이다."

 다음 질문은 달팽이와 깃털이 오브제로 사용된 그의 작품으로 이어졌다. -눈동자와 머리카락의 시각적 이미지라고 하더라도 당혹스럽다. 우리 나라 작가들의 감성으로는 도저히 달팽이를 캔버스에 붙일 수 없다. "스페인 작가들도 생각 못한다. 달팽이의 기하학적인 모습은 자연의 질서를 표현하려 한 것이다."

 미술에 있어 실험정신에 대한 격조와 무모함 사이에서 한참 고민했다. 다른 작품으로 시선을 옮겼다.

 안토니오 로하스의 작품은 이질적이긴 하지만 낮선 경계심은 없었다. 그래서 좋다. 유화물감을 여러 번 덧칠하여 얻은 무르익은 칼라로 튼튼한 화면을 구축하면서 고향인 타리파의 해안건축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듯 하지만, 빛과 착시에 의한 알 수 없는 몽롱한 이미지로 빠져들게 한다.

 셰익스피어의 연극포스터나 신화 그리고 페미니즘 등을 소재로 사진 위에 칼라링을 한 오우까 렐레의 작품은 카메라 기법이 아닌 실제 상황을 연출한 후 촬영한 것이어서 훨씬 생동감이 있다. 작품의 내용인 그리스 신화에서와 같이 황금사과 3개를 마드리드 시에 선물한 후에 시청 앞 광장 분수대에서 상황연출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자연을 사랑하면서 경이로운 창공의 무한함을 빛나도록 표현한 엘 오르뗄라노의 작품은, 그렇지만 감정의 동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물 이미지가 강하고 너무 직접적이다. 인간을 자연과 동화시키는 우리의 조형언어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에두아르도 베가 데 세오아네가 중요시하는 것은 자유라고 한다. 색 면이 있긴 하지만 완벽하지 않고 그 위에 애매한 형태가 가볍고 자유스럽게 흐른다. 서정적이고 선적인 특성이 우리의 감성에 와 닿는다. 하지만 그 이상 특별한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듯 하다.

 새로운 미술을 만난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고 그 모험을 즐기는 것은 우리들의 권리이다. 삶의 모습과 역사가 다른 나라의 문화를 대하면서 낯설음에 대한 당혹스러움을 느낄 수도 있고 또는 신선한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이번 전시회는 새로움에 대한 설렘으로 한번 찾아가 볼 만하다. 임영재 울산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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