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한국적 정서를 담아낸 서양화가 고 장욱진(1917~1990년)의 작품세계가 울산시 남구 삼산동 현대백화점 9층 아트갤러리에서 지난해 27일부터 펼쳐지고 있다.

 현대백화점이 2002년을 앞두고 공들여 마련한 장욱진 특별전 "해 달 그리고 가족"은 우리나라 미술사의 우뚝한 한 자리를 차지하는 화가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37점이나 감상할 수 있는 쉽지 않은 기회다.

 오는 2월2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회에는 유화 27점, 종이 위에 먹이나 크레용으로 그린 드로잉 10점 등 총 37점이 선보이고 있다.

 장욱진이 본격적인 작업을 했던 50년대 작품 〈마을〉에서부터 70년대의 〈시골마을〉 〈봉황〉 〈관조〉 〈네 가족과 동물들〉 〈길〉 〈사찰〉, 80년대 〈장닭〉 〈싸립문〉 〈강풍경〉을 거쳐 작고하기 직전인 90년 작품 〈밤과 노인〉까지 고루 선보인다.

 동화, 전설, 해와 달, 까치, 나무, 아이, 가족 등 친근한 소재를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순박한 선과 색, 여백으로 "심플"한 감동을 전해주는 그의 그림은 어느 하나 놓칠 것이 없지만 그 가운데 관심을 갖고 보아야할 작품을 골라 연대별로 하나씩 5점을 소개한다.

 ◇마을

 독특한 그의 그림 세계가 본격적으로 전개된 것은 50년부터다. 이번 전시회에 소개된 그림 가운데 가장 초창기 작품이 〈마을〉이다. 사실적 형태나 실제적 공간과는 무관한 관념적 구도가 등장한다. 두 채의 집, 나무 세그루, 사람, 길이 아주 어두운 북청색으로 통일되고 단순화되었다. 밝은 파란색으로 표현된 해가 화면의 변화를 가져다 준다.

 ◇배와 고기

 조각배가 아닌 범선과 고기는 장욱진의 그림에서 흔치 않은 소재다. 세계적 수준의 조선공업이 발달한 울산에서 접하는 범선 그림은 색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짙은 군청색도 그가 자주 사용하던 색상은 아니다. 물감을 두껍게 바르고 윤곽선을 선명하게 그려넣어 질감이 한층 도드라진다. 50년대 후반부터 전개되기 시작하는 기하학적 선과 단순화의 과정에 드는 작품이다.

 ◇자화상

 먹그림 같은 이 유화는 어린이 그림처럼 천진난만하다. 더 이상의 설명이나 부연이 없어도 구부정한 자세가 영낙없는 작가라고 한다. 자유를 상징하는 새는 그의 소망을 상징하는 듯하다.

 ◇나무와 까치

 작가가 즐겨 그리던 나무와 까치, 달만으로 화면을 꽉 채운 이 그림은 형태와 색상에 있어 극도의 생략과 단순화를 보여준다. 움직이는 것이 하나도 없는 아주 고요한 밤을 표현한 듯 정적인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밤과 노인

 장욱진은 74세인 1990년 12월27일 작고했다. 작가의 마지막 작품으로 소개되기도 하는 이 그림은 자화상으로 해석되는 남자가 평소 그가 소중하게 화폭에 담아 왔던 집과 아이, 나무, 까치를 남겨둔채 하늘을 떠가고 있어 마치 스스로 자신의 생명이 다했음을 예감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유족의 스크랩에 따르면 〈까치와 마을〉이 마지막으로 그린 유화작품이다. 이번 전시회에 선보이지 않은 이 작품에서도 그의 죽음을 암시하는 듯 해와 달이 나무 아래 땅에 떨어져 있다. 정명숙기자 jms@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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