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은 서울의 진산이고 금정산은 부산의 진산이고 남산은 경주의 진산이다. 그리고 무룡산은 울산의 진산이다.

 진산은 그 고을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는 산. 무룡산은 백두대간에서 뻗어내린 낙동정맥이 남으로 내닫다 마지막으로 기를 뭉치면서 일으킨 산이다. 가뭄이 들면 울산사람들은 무룡산 꼭대기에서 기우제를 지냈고, 그 무룡산의 신성청에서 물을 길어다가 효문정에 붇는 행사는 지금도 "물당기기 놀이"로 이어져 오고 있다.

 울산의 강세화 시인은 "바람 불어도 흩날리지 않는 생각이 이마를 반짝이며 중천에 떠 있다"고 무룡산을 노래했다.

 무룡산 산행은 화봉공고 뒤쪽 이면도로에서 산으로 갈라진 시멘트 포장로에서 시작한다.

 멋없고 딱딱한 포장길을 숨찬 걸음으로 올라서면 솔숲 사이로 흙이 반질반질하게 다져진 호젓한 등산로를 반갑게 만날수 있다. 10분이 이내 "효문신협 산악회" 팻말을 오른쪽으로 비켜 지나면 마침내 산에 들어왔다는 확연한 느낌을 받는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겨울 낙엽들이 바삭바삭 구령소리를 낸다.

 때로는 산보하듯, 때로는 등산하듯 터널같은 길을 따라 30여분.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고 두터운 외투가 번거롭게 여겨진다. 마침내 외투를 벗어 배낭안에 구겨넣고 가벼운 몸으로 털고 일어서면 소나무 사이로 바람이 헐겁에 오가는 송림에 어느새 들어서 있다. 울기공원을 연상케 하는 송림, 시원한 바람이 막힘없이 지나가며 이마와 목덜미의 땀과 열기를 닦아간다. 능선으로 난 송림을 말등 타듯 한참 지나고 다시 하늘이 안보이는 터널속 등산로로 접어든다.

 송림에서 힘겨운 산행 10여분, 해발 334m의 이름없는 봉우리로 뚫고나오면 갑자기 하늘이 열리고 발아래에는 거대한 도시가 펼쳐진다. 고개를 숙이면 현대자동차 공장지붕들이 작게 보이고 그 너머로 태화강이 꿈틀거리며 쪽빛 동해바다로 나아가고 있다. 또다시 그 너머에는 광활한 석유화학공단이 굴뚝마다 증기를 토해내며 "뜨거운 생산"에 부산하다. 이 곳은 그 어느 전망대보다 훌륭하다.

 어둠으로부터 눈뜬 듯한 개안(開眼)의 환희도 잠시, 등산은 다시 시작된다.

 무룡산 정상 방송국 송신탑들을 올려다 보면서 오히려 내리막길로 내려가는 기분은 그야말로 손해보는 느낌. 그렇지만 역광으로 비치는 억새솜털의 실루엣과 저아래 산허리를 구비구비 감아도는 정자 방면 국도의 정겨운 풍경은 그에 대한 과분한 보상이다.

 봉우리에서 15분 가량 내려와 사거리에 도달하면 인내를 시험하는 본격적인 오르막이 우뚝 눈앞을 막아선다. 숨이 턱에 차도록 오르막을 치받아 오르노라면 온몸의 세포가 기관차처럼 저마다 살아 움직인다. 산행의 남은 뒷심은 오로지 정상을 향해 치닫는다.

 가파른 오르막과 투쟁을 벌이기를 20여분, 울산mbc 송신탑이 나오고 마침내 해발 453m의 정상에 도달하게 된다. 정면에는 조개를 엎어놓은 듯한 야산들의 행렬이, 왼쪽에는 억센 삶들이 이뤄놓은 시가지가, 오른쪽에는 초록색 평면의 청정 동해바다가 전방위로 장관을 만들어놓고 있다.

 그러나 무룡산에서 경치에 취해 잊어서는 안될 것이 한국통신의 "스캣터통신시설 유적지". 첨단의 모양새를 하고 있는데다 웅장하기까지 해 "유적지"라는 용어가 어색하기 짝이 없지만 이제는 고철이 돼버린 유적임에 틀림없다. 정문 경비실에 방문신청을 하고 들어서면 초대형 파라볼라 안테나 앞에 홀로 선 비석이 내력을 알려준다.

 "무룡산은 우리나라 국제 스캣터통신시설의 발상지다. 스캣터통신은 대류권 산란파통신 방식으로, 68년 일본 하마다를 향해 첫 전파를 발사, 통신사에 새 장을 연 후 80년 11월28일 한·일간 해저동축케이블이 개통되고 이어 해저 광케이블이 등장하면서 91년 3월1일 운용을 정지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70년대 온 국민이 열광했던 김일과 이노끼의 프로레슬링 장면이 이 통신시설을 통해 전달됐다고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다.

 하산하는 길은 도솔암 방면 등으로 다양하게 나 있지만 화봉공고에 주차해둔 차를 고려해 적당하게 택하면 된다. 내려가는 길이 힘겹게 느껴지면 정자방면 무룡산 고개를 통해 차량을 정상까지 불러올릴 수도 있다.

 이렇게 화봉공고에서 무룡산 정상까지 오르는데 걸리는 시간은 넉넉잡아 1시간 30분. 토요일 오후를 이용해 간단하게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는 적당한 코스다.

 울산문화원이 편찬한 "울산지명사"에 따르면 무룡산(舞龍山)은 일명 무릉산(武陵山)으로, 북쪽의 동화산(東華山)은 일명 도화산(桃花山)으로 불리며 이 지명은 도연명의 도화원(桃花源)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이들 산 사이에 난 골짜기를 서당골이라 부르며 이 곳에는 조선시대때 도원서당(桃源書堂)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내력을 보면 광역시 울산의 진산으로 부끄러움이 없다.

글·사진=산유회(http://www.iphotop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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