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햇볕과 함께 6월의 낮기온은 30℃에 쉽게 육박한다. 어느덧 봄을 지나 시원한 그늘과 계곡이 점점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대운산 초입에서 장안사로 이어지는 "만보등산로"는 모든 가족단위 등산객들에게 권장할 만한 코스다. 하늘을 뒤덮은 울창한 녹음은 강한 햇볕을 막아주고 곳곳에 나타나는 계곡은 뜨거워진 발바닥을 식혀준다. 등산로라기 보다는 차라리 산림욕장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길이다.

 산행은 대운산 입구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잘 닦여진 임도를 따라 15분 가량 호젓하게 걷다보면 왼쪽 계곡에 애기소가 나온다. 길을 잠시 벗어나 애기소를 들여다 보면 그 짙푸른 물에 발을 담그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그렇지만 갈길은 아직 멀다.

 만보등산로로 접어들려면 오른쪽으로 갈라진 길은 피하고 곧바로 직진해야 한다. 오른쪽 길은 대운산 2, 3봉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갈림길에서 나무줄기를 잘 살펴보면 만보등산로라는 팻말을 찾을 수 있다.

 장안사로 곧장 넘어가는 등산로가 단조롭게 여겨진다면 대운산 정상 방면으로 나 있는 또다른 만보 등산로로 올라갔다가 능선을 타고 장안사로 내려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길은 멀고 가파르기 때문에 시간이나 체력을 잘 안배해야 한다.

 대운산 초입 주차장에서 30여분 직진을 하다 보면 처음의 애기소로 흘러내려가는 상류 계곡을 다시 만날 수 있다. 너비 10m 정도로 넓게 흐르는 계곡은 반석 위로 청아한 물소리를 내며 갑갑했던 가슴을 시원하게 틔어준다. 상류에는 전혀 오염원이 없기 때문에 그냥 계곡물에 입을 대고 마셔도 괜찮다. 여기서부터 산길은 터널처럼 밀림속으로 들어간다.

 산벗나무와 서어나무, 단풍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쭉쭉 뻗어 올라가 싱그러운 푸른 잎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고 발밑은 습기로 아직 촉촉하다. 폐부로 들어오는 공기도 서늘하다. 너무 가파르지 않은 터널같은 호젓한 산길, 7~8살 먹은 아이들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올라갈 수 있다. 그래서 이름도 천천히 걸어간다는 뜻의 "만보" 등산로다.

 그렇지만 어느 산이든 마지막 시험대는 있는 법. 장안사로 넘어가기 직전의 고갯마루는 제법 온 몸의 기운을 뺏어갈 정도로 길게 이어진다. 고갯마루를 절반 정도 오르다 보면 실개천 같은 계곡이 또하나 나온다. 물의 차디찬 기운은 깊은 계곡에서 나왔음을 금방 실감케 한다.

 대운산과 장안사를 가르는 고갯마루에서 땀을 식히고 장안사 방면으로 내려가면 지금까지와는 또다른 계곡이 울창한 숲 사이로 끝없이 이어진다. 계곡 중간쯤의 주차장에서 오른쪽 척판암을 먼 발치서 구경하고 내려오면 마침내 장안사. 산행의 종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곡과 키큰 활엽수로 이뤄진 이 산행코스는 물과 나무의 고마움을 한번에 느끼게 해주는 몇 안되는 산행지 중의 하나다.

 시인 도종환씨는 최근 "좋은 생각"이라는 잡지에서 나무에 대해 "제가 가졌던 것을 다 주고도 담담하게 서 있는 모습이 나무를 오백년, 천년씩 살게한다. 봄에 피었던 꽃도, 여름에 무성했던 나뭇잎도, 가을에 알차게 맺은 열매도 다 돌려주고 마침내 빈몸으로 돌아간다. 사람이 원하면 사람에게, 산이 원하면 산에게 돌려준다"고 표현했다.

 물에 대해서는 "반야심경, 금강경 독경소리를 들으며 골짜기를 나서서 그런지 물은 제가 만나는 모든 것을 이롭게 하면서 간다. 산발치 대나무 뿌리는 적시고 숲을 푸르게 한다. 꽃을 자라게 하고 풀들은 눈뜨게 한다"고 노래했다.

 이 시인은 그래서 나무와 물을 "나무보살", "물보살"이라고 불렀다.

 장안사는 신라 문무왕 13년 원효대사가 척판암과 함께 창건, 한 때 "쌍계사"라 부르다가 신라 애장왕 때 "장안사"로 개칭했다. 본존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은 팔작지붕에다 다포집 형태로 지어져 있어 현재 부산시의 기념물 37호로 지정돼 있다.

 척판암은 원효대사가 수도를 하던 중 중국 종남산 운제사 대웅전이 무너지는 것을 알고 판자를 던져 1천명의 승려를 구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산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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