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구제업무로 서울에서 출장 온 지 2개월, 부모님들이 계시는 곳에서 아침마다 출근을 하고 있다. 동해의 귀신고래를 청동기인이 바위에 조각해 놓은 반구대 입구에서 신화천과 사연천을 끼고 태화강을 건너 성남동 국민은행 임시사무실로 달려온다.
 지금은 폐교가 된 초등학교에서 언양 중학교를 다닐 때였다. 마늘쫑이나 깍두기와는 달리 오뎅이나 계란부침을 도시락 반찬으로 싸오는 읍내의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읍소재지외의 다른 동네는 "촌"이라 불렀고, 불과 시오리 떨어진 우리 동네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대도시는 소위 "뺑뺑이" 고입시험을 치뤄 타지 학생의 진학이 불가하였다.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지방도시 마산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어울리던 또래중에는 진해에서 온 친구가 있었는데 마산 친구들은 진해를 "진촌"이라 불렀다. 마산이나 진해가 행정분류상 등급이 같은 시였는데 말이다. 그후 대학을 다닐때 서울에서는 방학이나 명절 때 부산서 온 학생들을 두고도 시골가지 않느냐고 물어댔다.
 7년을 근무하던 수자원공사를 그만두고 가족을 데리고 중국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배를 타고 30여차례 황해를 오갔다. 큰 숫닭을 닮았다는 중국지도를 보면서 그 닭의 목젖같이 붙어 있는 한반도를 곱씹어 보게 되었다. 지리적 역사적 외세의 시달림에 살아남은 금수강산이기도 하지만, 서울과 부산을 서로 촌이라 불러대던 장면들이 잊혀지지 않았다.
 이러한 촌의 시각을 또 다른 모습으로 볼 기회가 있었다. 8년간을 아빠와 엄마를 따라 중국에서 보낸 아이가 여러 지역에서 온 학생들과 뉴질랜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특히 홍콩, 대만 등으로부터 온 아이들을 알면서 사회주의 잔재가 남아있는 중국에서 받은 세뇌주의교육의 무서움을 지적하며 중국을 떠나온게 정말 다행이라 했다. 한반도를 또 다른 작은 촌으로 여기게 했던 중국대륙이 이제는 비평을 받을 수도 있는 입장이 되었다. 기러기 아빠로서 한가위의 달빛을 받으며 오클랜드를 다녀왔다. 비행기 창으로 내려보이는 망망대해에 비해 출퇴근길의 태화강은 하잘 것 없는 물길로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역주민들의 애환의 눈물이 더해져 흐르는 태화강이 또 다른 상념을 낳게 한다. 특히 날마다 창구에 몰려오는 각양각색의 신용불량자들이 나름대로의 인생소설을 풀어놓고 간다. 중학교때 서울까지 유학갔으나 사업실패로 선산까지 담보잡힌 친구, 부모님의 빚을 갚겠다고 천안에서 휴가를 내어 달려온 S전자의 총각, 주변에 친구가 많을수록 좋지 않으냐며 보증을 서주겠다고 어려운 동료의 손목을 잡고 온 보험사 아줌마, 늦게나마 자신의 무지함을 절감한다며 편지를 보내온 구치소의 수감자, 춘천에서 군 근무하는 동생 빚을 갚겠다는 젊은이, 아들 대학보내고 딸 시집 보내고 남은 것은 신불자 딱지라는 개인택시기사,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술장사를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지않다던 씨름선수, 쑥스러워하던 외가댁의 아저씨는 점심을 함께 하고 갔다.
 태화강의 상류 바위에 걸려있는 귀신고래, 이미 동해를 거쳐 대양을 돌고 와서 반구대에 자리잡고 있는 청동기시대의 그 녀석들 앞에 지금껏 마산 앞바다를 거쳐 황해, 태평양을 다녀온 나는 거저 숙연해진다. 아울러 바다보다는 미미하게 보일 수 있는 태화강이 신용불량이라는 상처와 사회·경제적 눈총을 벗어나기 위한 숱한 꿈을 안고 흐르는 이 가을, 더 없이 속 깊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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