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면 이상스럽게 보덕암(경주시 양남면 나산리)이 생각난다. 몇 번 가보지는 않았으나 갈 때마다 6월이었다. 막 더위가 시작될 무렵, 미처 적응되지 못한 더위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 때마다 절로 생각나는 곳이었던 것 같다. 가는 길조차 가물할 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똑같이 짙푸른 숲의 색깔, 서늘한 공기의 감촉만은 명확하게 되살아났했다. 왜일까. 왜 더위를 벗어나고 싶을 때면 보덕암에 가고 싶은 걸까. 이번 방문에서 그 이유가 어렴풋이 와 닿았다.

 "잃어버린 길"을 찾아 몇차례의 망설임 끝에, 그래도 길을 놓치지 않고 한번만에 찾아간 보덕암은 너무나 깊은 산 속에 숨어 있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트인 곳이라고는 한 곳도 없었다. 사람이 살까 싶지 않게 깊은 골짜기, 서늘함이 깊게 내려 앉아 더위라곤 찾아올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는 어두운 골짜기였다. 게다가 길게 해안도로만을 따라가는 것도 설렘이다.

 마침 스님마저 출타하고 인적도 없는 보덕암에는 새들만이 "제이름을 부르며" 울고 있었다. 누군가 놀래키기라도 하면 금세 온몸이 오싹해질만큼 첩첩산중, 적막강산이었다. 산길로 멀리 걸어 올라가지 않고도, 차를 대놓고 잠시 만에 "또다른 세상" "또다른 시간"으로 깊숙이 들어가 버리고 만다.

 사실상 보덕암은 볼거리도 장식도 없는 절집이다. 신라 56대 경순왕 6년(932년)에 월봉스님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당 앞에서 집채만한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신라 때 경순왕이 후백제의 침공을 피해 숨어 있었다는 이야기를 갖고 있을 뿐이다.

 법당, 요사 2채, 산신각이 규모랄 것도 없이 좁다란 형태로 제각기 자리를 잡고 있다. 산속으로 깊이 들어와 길이 끝나는 곳에 차를 세우고 가파른 돌계단을 100여개 밟고 올라가면 마당이랄 것도 없이 바로 요사의 마루에 닿는다. 마루 끝에서 한발만 벌리면 바로 낭떠러지다. 최근에 개조한 요사에선 아직 나무냄새가 그윽했다. 누가 저 나무들을 져다날라 집을 지었을까 싶다. 요사에서 왼편으로, 벼랑 위 산중턱에 걸린 듯 좁다랗게 둥지를 튼 법당이 있다. 6월의 더위에 제법 달궈졌을 만한데 오후 5시의 법당 안은 서늘하기만하다. 법당 앞에서 고개를 들어보면 보다 높은 곳에 허름한 요사가 하나 더 있고 멀리 산신각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보인다.

 산허리를 돌아 마주보이는 야트막한 산으로 연결된다. 그 중간에 샘물이 고여 있다. 정갈한 물을 받아 부처님께 바쳐놓았다. 바가지로 물을 퍼서 한모금 들이키지만 이미 식어버린 식도는 물맛조차 밋밋하게 만든다.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개구리의 뜀박질에도 깜짝깜짝 놀라게 될 만큼 고요하다. 6시 밖에 안되었는데 금방이라도 해가 저물어버릴 듯, 아니 이미 해가 지고 있는 듯 공기가 가라앉았다.

 절에서 벗어나 얼마 안나오자 6월이 햇살은 하나도 수그러들지 않고 버젓이 길 위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울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신흥사(울산시 북구 대안동)로 향했다. 보덕암 못지 않게 첩첩 산중이다. 짙은 녹음이 산을 덮고 있다. 우람한 바위들로 뒤덮인, 꽤나 운치있는 계곡도 끼고 있다. 길도 험했다.

 신흥사는 깨끗이 단장되어 있다. 가파른 돌계단을 숨가쁘게 올라 절집에 들어서면 고급스럽게 단청이 칠해진 대웅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당당하다. 1998년에 지은 새 절집인데 화려하면서도 품위가 있다.

 대웅전을 비껴 한켠에 예전의 대웅전이 옮겨져 있다. 조선 때(인조 24년·1646년)의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법당으로 대웅전으로 쓰이다가 그대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한때 이 건축물의 이건이 관심을 끌었다. 응진전이라는 현판을 단 이 법당도 외양은 새롭게 단청을 했으나 법당안은 옛 모습 그대로다. 화려한 조선 시대의 건축장식을 보려고 천장을 올려다 보았으나 초파일 때 내건 연등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퇴색한 단청 색상, 용모양을 한 서까래 등이 푸근함을 안겨준다.

 종무소라고 적혀 있는 요사는 단청 없이 굵은 통나무와 흙으로 지어진 집으로 넉넉함을 전한다. 종무소 뒤로 지붕개량은 언제 했는지 알수 없는 초가도 한채 있다. 관광객의 출입을 제한한다는 안내문을 보고도 못본 척하며 살금살금 걸어들어가 살펴보니 마치 살림집 같을 뿐이다. 스님이 다른 요사에서 나오다가 인기척을 낸다. 멀리서 온 스님이다. 주지스님은 출타하고 없다. 잘 다듬어진 절집에 어울리지 않게 고요하다. 방문객도 아무도 없다.

 산을 넘어 호계 쪽으로 돌아올 양으로 절집 앞을 빙돌아 길을 잡았으나 만만치 않았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차가 올라서지 못하고 자꾸 미끄러져 내렸다. 이미 많은 차들이 미끄러져 내린 자국이 강하게 찍혀 있었다. 몇번 시도 끝에 공포심이 가중돼 결국 후진하여 오던 길로 되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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