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연말은 정말 "연말 기분"이 안 난다. 어떻게 된 일인지 울산시내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리지 않는다. 매년 연말이면 거리마다 크리스마스트리도 불을 밝힐만한데, 이것도 올해엔 눈에 잘 띠지 않는다.
 한 해를 마감하는 송년회도 썰렁한 분위기다.
 택시를 타면 "시중 경기가 너무 안 좋다"는 기사들의 한숨소리만 들린다. "예년 같으면 계절적 "특수"로 한 몫을 기대하지만 정말 큰일이다” "언론에서 문제점을 찾아 해결에 나서라”는 식의 볼멘소리가 "경제부장"이라는 기자에게 하루에도 몇건씩 메일을 통해 들리고 있다.
 울산 "실물경제의 1번지"로 일컫는 남구 삼산동엔 밤 10시가 넘어가면 마치 유령도시처럼 거리가 캄캄하고 썰렁하다.
 일부 대형백화점을 제외하고는 보이는 것은 유흥주점의 "맥빠진" 간판 네온사인뿐, 크리스마스트리를 화려하게 장식한 가게들이 거리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때쯤이면 거리에 흥청거리던 그 많은 사람들도 온데간데없다.
 지난달중 울산지역의 실업자는 모두 1만7천명으로, 전월 대비 1천명이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11월의 실업률은 1만6천명에 3.2%였다.
 정부가 발표하는 공식 실업률은 3.5%(1월~9월)지만 민간경제연구소의 분석은 15.1%로 4.3배나 높다.
 대학을 졸업한지 몇 년 된 구직 단념자나 1주일에 2~3일 일하는 사람은 정부실업자통계에는 빠지고 있으나 실제론 실업자나 다름없다.
 여기에다가 겉으론 그럴 듯하지만 벌이가 거의 없는 자영업자나, 대학원에 다니는 취업 준비생까지 포함한다면 실업수치는 더 올라갈 것이다.
 연말 거리가 컴컴하고 썰렁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길거리의 이같은 문화는 비단 경기가 좋지 않다는 원인도 있지만 정작 삭막해져가는 우리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같아 더욱 씁쓸하다.
 한 경제 신문사가 최근 실시한 경영인(CEO) 대상 설문조사에서 기업인들은 경제침체의 큰 원인으로 자신감 상실을 꼽았다. 지금 시급한 것은 축 처진 경제 주체들의 자신감을 되찾게 하는 것이다.
 더욱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는 울산의 내년 경제를 활기차게 만드는데는 울산시 등 유관기관들의 각종 정책도 도움이 되지만 이 보다는 경제 주체들이 그야말로 자신감을 찾는 일이 급선무다.
 한해를 마감하는 연말 그래도 과거처럼 푼돈이지만 지갑을 열고 따뜻한 소줏잔을 같이 나누는 인정만은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물론 술을 덜 마시는 풍토는 분명 바람직한 일이다. 반면에 "가능한 일마저 포기하는" 식의 삭막하게 변모하는 풍토는 더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울산시청의 모국장은 공직사회의 전자결제 도입은 결제 단계의 간소화 등의 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반면에, 부하직원의 얼굴을 대할 기회가 상실돼 그만큼 예전처럼의 인간미 있는 분위기를 찾을 수 없다며 폐해를 지적했다.
 그는 과거처럼 부하직원을 결제를 하는 과정에서 애로사항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장점도 있었지만 전자결제는 이 같은 인정을 송두리채 앗아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제 한해가 다 간다.
 올해 먹고살기에 벅찬 한해였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이웃들에 대해 너무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경기가 좋지 않다고 해도 서로의 닫힌 마음을 열고 소줏잔이라도 기울이는 인정만은 잃고 싶지 않다.
 과거 IMF 구제금융때처럼 나도나도 "십시일반"으로 어려운 위기를 이겨냈던 경험을 안주삼아 이번주에는 삼산동의 소줏집에서나마 따뜻한 한해를 보내고 싶을 따름이다. newsguy@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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