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가 어려워지면서 생명을 던지거나 생명을 무시하여 죽음에 이르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실직으로 인한 가족동반자살이 우리를 힘들게 하더니 최근에는 아이를 장롱에서 아사에 이르게 한 소식이 가슴 아프게 한다.
 성인이 해야 할 최대의 의무이자 권리는 자녀를 출산하면 어린 생명을 위해 헌신적인 사랑과 양육을 하는 것이다. 이혼을 비롯하여 자녀를 유기하는 가정파탄과 인권 유린행위는 모두 진정한 사랑의 부재 탓이다.
 에릭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의 조건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심, 이해, 지식이라고 했다. 이러한 조건은 어느 날 생기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노력에 의해 꾸준히 성장한다. 이른바 사랑이 무엇인가를 물으면 대부분은 열정이라고 답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열정만이 아니다. 열정과 함께 진정한 친밀감, 헌신하려는 의지가 삼박자를 이루어야 사랑은 균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권을 유린하는 각종 뉴스를 접하면 참으로 성숙한 사랑학습이 제대로 안된 사회가 걱정된다.
 스위트 홈이란 어느 조직, 어느 관계보다, 가정에서 달콤할 정도로 편안하고 어릴 적 부모의 품 안 같은 사랑이 넘치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세상살이가 힘들어도 부모는 자녀를 깊이 안아주고 사랑을 베풀어 세상에 태어난 기쁨을 몸으로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
 스위트 홈은 거기서 시작한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경험한 자녀들이 많을수록 사랑의 열매가 세상의 어디에서 향기를 내고 있다. 가정의 부재란 사랑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어도 자녀가 있으면 자녀들을 위해 사랑을 베풀면서 희망의 나무를 키워나가야 한다. 실직 상태라고 장롱에 아이를 넣어 아사시키는 것은 사랑의 실종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이웃에 알리던가, 동사무소에라도 신고를 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에는 긴급생계급여시스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사랑 방식이 학습되어 있지 않아 이용할 줄도 정보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자녀를 먹여 살리기 위해 무엇인가를 찾고자 하는 노력도 일종의 사랑행동이다.
 인간은 사랑의 가능성은 갖고 태어나나, 사랑의 표현은 학습을 통해 길러지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모유를 먹으면서 성장한 한 시대가 가고 있다. 어머니의 심장 고동소리를 들으면서 애착을 형성해온 사랑은 어쩌면 이제 찾아보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사랑을 학습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공교육이나 사회교육시스템에서 이타적인 사랑을 가르쳐할 때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머리에 해당하는 지식교육 뿐이고 사랑학습은 공적인 교육체계에 없다 보니, 점점 머리만 큰 성인들이 사회를 채워가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을 조건없이 사랑하고 약자를 위해 베푸는 헌신적인 사랑은 고된 체험과 줌으로써 얼마나 기쁜가를 동시에 경험해야하는 사랑의 학습과정이 필요하다.
 이제 학교도 공교육체계에 사랑의 체험 학습을 넣어야 하고, 사회는 더욱 자원봉사를 활성화시켜 나누는 행복을 공유해야 사회가 살 맛 날 것이다.
 헌신적인 사랑을 실천하고 배우는 자원봉사 조직이나 개인들을 명예롭게 대우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부모교육도 학교교육도 사랑을 중요한 테마로 하는 의도된 교육과 체험프로그램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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