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란 필경 사람이 이루어낸 삶의 흔적이다. 사람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흔적이, 개인에겐 한 인간의 일대기가 되는 동시에 사회적으로 시민, 혹은 민족이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역사와 문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하루하루 가볍게 지나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는 이뤄지고 있고, 문화도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훌륭한 문화를 창조해 왔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문화를 잘 보존해 가고 있다. 청자, 백자, 석탑과 같은 유형 문화재에서부터 판소리, 춤과 같은 무형문화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반만년의 문화적인 역사를 바탕으로 문화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문화재만이 문화의 전부는 아니다. 정신문화, 사회문화가 더 중요하다. 시민 사회를 살고 있는 만큼, 더욱이 오늘날 문화의 주체가 공동사회의 시민인 만큼 시민정신 문화야 말로 한나라, 한민족 문화의 꽃이다. 문화는 우리의 얼굴인 동시에 겨레가 함께 공유하는 민족적 시민의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월드컵은 국가적, 문화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역동적인 열정을 가진 시민의 문화를 탄생시킨 것이다. 우리는 요즘 행복한 붉은 물결을 타고 있다. 우리는 역동적인 물결을 세계를 향해 펼치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주인공이 되어 "붉은 악마"의 신명나는 춤의 물결을 펼치고 있다.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경기장에선 선수들이, 관람석과 거리에서는 우리 시민들이 함께 연출하고 함께 출연하는 거대한 무대를 만들어 냈다. 세계 무대에 이처럼 근사한 볼거리를 올려놓은 우리는 지금 행복한 주인공들이다. 지난 두 세 차례의 우리나라의 경기가 있던 날 그 붉은 물결이 전국을 뒤덮었다. 광화문에 모인 수십만의 인파에 우리는, 우리의 또 다른 면이 있음을 알고 스스로에게 놀랐다. 그것은 거대한 볼거리인 동시에 예술이었다.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모든 월드컵 관계자와 관광객을 초청해 놓은 무대에서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뛰고 우리는 경기장 밖에서 이렇게 뛰고 있다.

 우리는 해 낼 수 있다는, 우리도 하면 된다는 주문을 외면서 지금 우리는 거대한 붉은 물결의 주인공이다. 지금 우리는 분명히 거대한 민족적 상승의 물결을 타고 달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저력을 우리는 확인했었고 우리는 하면 된다는 가능성을 우리 스스로 발견하는 순간이다. 더구나 개막식에서 보여준 한국 정통음악과 의상, 전통무용, 우리들만의 문화의 깊이, 문화의 창조성을 세계만방에 과시했다고 표현하고 싶다. 참으로 큰 잔치에 걸 맞는 개막식 행사였다.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 우리 문화에 대한 재인식이었다. 세계 사람들은 아마도 TV를 통하여 한국의 전통문화를 축제 속에 끌어내는 문화, 예술적 기획, 연출능력에도 감탄했을 것이다. 또 한번 우리는 반만년 역사를 지닌 문화 민족임을 세계만방에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사실 세계적인 큰 잔치에 찾아 올 손님들에 대한 친절이나 예절면에서 혹시 결례를 저지르지 않을까, 혹은 성숙되지 못한 시민의식이 잘못 보여 지지나 않을까, 염려한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 하였다.

 월드컵에서 보여준 성숙한 응원 문화를 세계 사람들은 지켜보았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쏟아지는 비 줄기 속에서도 청소까지 깨끗이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해냈다.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해냈기에 더욱이나 우리 한국의 미래는 밝다. 질서 정연한 붉은 물결은 한 송이 커다란 꽃이었고 대-한민국의 환호성을 전 세계 TV시청자들 앞에서 우리는 (희망의 나라)로 보여 졌을 것이다. 어떤 어려운 일도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생겼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처럼 행복한 자부심을 느껴 본 적이 이전에는 없었던 것 같다. 이번 월드컵에서 보여준 수준 높은 시민의식이야 말로 한국문화의 꽃이요 국가의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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