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면에서는 가장 북쪽이면서 언양읍의 남쪽인 교동리는 "제2의 강남"을 꿈꾸고 있다. 울산시가 들판이었던 신정동과 삼산동을 택지로 개발하여 태화강 남쪽으로 번성했듯이 남천의 남쪽에 자리한 삼남면 교동리도 조만간 그런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변신은 기대만큼 쉽게 찾아오지는 않고 있다. 택지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교동리와 언양사람들을 먹여 살렸던 드넓은 들판 "마윗들"과 대대로 살아온 집채를 갈아엎고 기다린 세월이 어언 10년이다.

 1992년 교동리 가운데 행정마을로 상평, 중평, 향교, 수남리까지 00"가 교동토지구획정리지구로 지정되어 개발을 시작했다. 요란한 지게차 소리와 함께 땅값도 치솟았고 지주들의 가슴도 설"다. 그러나 연이어 불어닥친 "IMF"로 인해 땅은 꽁꽁 얼어붙고 말았다. 경기회복과 함께 다시 택지 한켠에 아파트를 짓기 시작했고 지게차 한두대가 정지작업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택지를 뒤덮고 있는 무성한 풀을 보면 아직도 기대 반, 낙담 반이다.

 "처음 택지 개발할 때는 1평에 100만원에도 안팔았지요. 그런데 IMF가 닥치고는 1평에 50만원까지 내려갔지만 매매가 이루어져야 말이죠. 요즘 다시 약간 오름세를 보이고는 있으나 아직 뚜렷한 회복세는 없죠"

 택지개발지구 내에 자리잡은 삼남농협 평리지소 강대윤소장(52)은 2년여 뒤 택지 위쪽으로 예정돼 있는 도로가 뚫리고 아파트가 완성되면 활기를 되찾을 것이라고 기대를 걸고 있다.

 그나마 토박이들은 거개가 일찌감치 투기꾼들에게 땅을 팔았기 때문에 토박이 가운데 크게 손해본 사람은 없는 편이다. 그래도 주택이 들어서고 상가가 형성되어 언양읍에 버금가는 도시구조가 형성되는 날을 기다리는 마음은 교동리 주민이면 누구나 한결같다.

 상평과 중평은 평리에서 분동된지 얼마안됐다. 언양읍내에서 남천을 건너면 강을 따라 상류로부터 옛 국도 위가 상평, 옛 국도와 고속도로 사이가 중평, 새고속도로 아래로 평리가 길게 이어져 있다. 20여년 전만해도 모두 평리로 불리던 마을이다. 마윗들과 평리들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던 사람들이다. 평리가 본동이고 상평과 중평은 마을이라기 보다는 하천을 따라 띄엄띄엄 주택이 늘어서 있었다. 집세가 비싼 언양읍내를 피해온 사람들에게 세놓을 요량으로 방을 다닥다닥 붙여 지은 집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하천부지를 매립해 새로 둑을 쌓아 하천을 좁히면서 택지가 늘어났다. 올림푸스와 대진파크 등 아파트와 새 주택도 들어섰다. 인근 공장에 다니는 직장인들이 서서히 몰려들면서 마을 규모가 커졌다. 국도 위쪽은 상평, 국도와 고속도로 사이는 중평으로 분동되고 고속도로 아래마을만 평리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상평과 중평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불고기집, 주유소 등 작은 규모의 상가가 적당히 늘어서 있고 상평 쪽으로는 주택과 아파트단지가 이어지고 중평 쪽으로는 골재 공장을 비롯한 조그만 공장과 옛날 주택을 그대로 둔 채 입구만 새단장한 상가들이 어지럽게 자리하고 있다. 그나마 일부는 고속도로에, 일부는 택지에 들어가 마을의 모양새도 정돈이 안됐다. 현재 상평은 224가구, 중평은 257가구가 살고 있다. 토박이로 볼 수 있는 농가는 각 30, 31가구에 불과하다.

 중평리 변차암 이장은 "주민들도 모두 외지인인데다 마을의 외형적 구조도 시골마을이 가지는 촌락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마을이라는 의미가 별로 없다"며 "이장도 할 사람이 없으니까 맡고 있는 것이지, 마땅히 역할도 없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상평과 중평을 분동시킨 평리는 삼남면에서 가장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고속도로라는 커다란 구조물에 의해 마을이 갇혀 도로 아래로만 오손도손 모여 있는 96가구가 전부다. 이 가운데 약 60%인 58가구가 논농사와 과수원, 축산업을 하고 있다. 하천을 건너면 바로 언양읍이고 울산으로 나가기도 가까운 마을이지만 고속도로가 마을 위로 나면서 자동차 한대가 지나갈 수 있는 2.9m 높이의 굴다리가 이 마을의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에 상가나 공장은 들어설 수도 없다. 그저 농사짓던 토박이들과 전원생활을 즐기려는 직장인들이 어울려 "조용하게" 살고 있을 뿐이다. "오지 아닌 오지"가 되어 버렸다.

 평리 최종석 이장은 "옛날에는 그래도 삼남에서는 부촌이었으나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상평이나 중평보다 땅값도 훨씬 낮아졌고 농사 외는 달리 할 게 없으니 앞으로도 발전 가능성이 없는 마을로 전락했다"며 "평리와 언양을 바로 잇는 다리라도 놓아주어야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고속도로가 처음 놓이던 20여년전만해도 경운기나 수레만 끌고 다니면 되었기 때문에 이 굴다리가 마을발전의 장애물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레미콘차가 못들어가기 때문에 집을 하나 지으려고 해도 20여분이나 더 걸리는 작천정 앞을 돌아서 들어와야 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평리주민들은 울주군은 말할 것도 없고 도로공사와 건교부까지 민원을 올렸으나 아직도 긍정적인 답변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도로에 의해 하나의 마을이 세 마을로 나누어진 상평·중평·평리는 택지개발과 고속도로에 의해 10년, 20년 세월이 "정지"되어 있는 것이다. 글 정명숙기자 jms

사진 김동수기자 dskim@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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