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차례나 뇌종양 수술을 받은 박수정(가명·18)양의 투병생활은 현재진행형이다. 수정이의 머리 속에는 아직도 종양이 자라고 있다. 이 종양은 뇌의 왼쪽 신경에 싸여 있어 수술로도 완전 제거가 힘들다. 현재 수정이는 재발의 공포 속에서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
 재발의 공포는 수정이 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감당못할 정신적·경제적 부담이 되고 있다. 어머니 유성은(가명·45)씨는 잠들기 전 "이러다가 갑자기 수정이가 잘못되면 어떡하나"하는 불안감 때문에 밤을 새기 일쑤다. 수정이가 수술받은 병원에서는 5년간 상태를 주시해야 한다고 했다. 유씨는 어서 빨리 5년이 훌쩍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어머니는 오른쪽 다리가 불편한 지체장애 2급의 장애인이다. 아버지 박성구(가명·52)씨는 가난때문에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막노동으로 평생을 살아왔지만 그런 삶을 비관하지는 않는다. 박씨는 장애가 있는 동생을 지금까지 돌보고 있다. 박씨 부부는 가난이라는 지긋지긋한 꼬리표를 떼지는 못했지만 어느 가정 부럽지 않은 행복한 가정을 꾸려왔다.
 그러나 가혹한 운명은 행복한 가정을 그냥 놔두지 않았다. 수정이가 갑자기 쓰러진 것이다. 박씨 부부는 당시 처음으로 "가난이 죄"라는 말을 실감했다. 병원에 누워있는 딸을 보면서 여유가 없어 피아노를 가르쳐 주지 못한 것 등 그동안 못해준 일들이 가슴에 맺혔다. 수정이가 병원에서 치렀던 투병생활은 부모의 자책과 늘 공존했다.
 수정이는 지난 2003년 5월 처음 쓰러졌다. 평소처럼 학교 가기 위해 서두르던 수정이는 아침을 먹던 중 쓰러지면서 경기를 나타냈다. 검사 결과는 뇌종양. 수술을 서둘러야 할 상태였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수정이는 5월20일과 7월3일 두 차례에 걸쳐 10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받았다.
 수술실로 들어가는 수정이는 당당했고, 여느 때처럼 활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박씨 부부는 수정이의 웃음 뒤에 숨은 어두운 그림자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결코 수정이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 유씨는 "몰래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왼쪽 뇌 신경에 싸인 종양은 제거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수정이의 뇌종양은 재발의 위험성이 항상 존재한다.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 수정이와 부모의 마음을 더욱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박씨 부부는 지금 상태가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수정이는 같은 또래에 비해 잠을 많이 자는 편이다. 보통 하루에 8~12시간 잠을 잔다. 그렇지 않으면 피곤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 대학진학을 꿈꾸지만 공부를 오랫동안 할 수도 없다. 스트레스가 뇌종양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체육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뛰어 노는 것도 힘들다. 간단한 준비운동이 고작이다.
 "독한 약을 계속해서 먹으니까 더 피곤한 것 같아요. 수술 뒤에는 크게 아프다고 한 적이 없는데 가끔 머리가 아프다고 할 때나 감기에 걸릴 때면 몇일 동안 잠을 못 잘 정도로 걱정이 됩니다.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무시할 수는 없더라구요"
 어머니 유씨는 수정이가 초등학교 때 갑자기 살이 찌기 시작하면서 눈이 나빠지고 코피를 자주 흘리는 등의 뇌종양 전조증상을 빨리 치료해주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 했다. 요즘에는 수정이가 죽음을 어렴풋이 알아가는 것 같아 마음이 더 불편하다. 특히 유씨는 간혹 TV에 뇌종양 환자가 등장하는 것을 수정이가 넋 놓고 바라볼 때 겁이 더럭 난다.
 수정이는 매일 항암치료제를 먹으면서 3개월마다 병원이 있는 대전을 오가면서 MRI 검사를 받고 있다. 한번 검사받는데 드는 비용은 병원 진료비와 검사비 등을 합쳐 100만원 정도이다. 반드시 받아야 할 검사지만 이마저도 최근 불경기로 아버지 박씨가 일을 하지 못해 제때 검사를 받지 못하고 있다.
 물론 박씨 부부는 재발의 가능성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혹시 재발할 경우 이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박씨 부부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두번의 수술비(약 3천500만원)는 수정이 학교와 친지들의 도움으로 해결했지만 재발할 경우, 네 식구 한달 생활비에도 빠듯한 불규칙적인 월 수입(100만원 내외)으로는 수술비 마련이 막막한 실정이다.
 "여러가지로 힘들게 살고 있지만 생활하는 것은 문제 없습니다. 구차하게 남의 도움을 받을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 남편이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서 빨리 5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어머니 유씨가 눈시울을 붉히자 수정이가 환하게 웃으면서 위로했다. 약 기운 때문에 몸이 많이 부운 수정이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고, 더욱이 부모 앞에서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병원에 있을 때도 왜 내게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 일부러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약해지고 엄마에게 너무 미안할 거 같았어요. 두번째 수술 받을 때는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무서워 울었는데 엄마한테는 아직까지 그 이유를 말하지 않았어요" 서대현기자 sdh@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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