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없이 방에 누워 있는 아들을 보면 제가 더 힘이 빠집니다. 우리 가정에 이런 일이 발생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울산시 남구 야음동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박준현(14·중1)군의 어머니 채선미(38)씨는 아들이 희귀난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말만 연신 되풀이했다.
 방학기간 또래 아이들과 즐겁게 보내야할 박군은 병원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일 외에는 외출하는 일이 거의 없다.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컴퓨터 오락을 하는 것이 일상이 돼버렸다.
 박군이 앓고 있는 병은 골수가 파괴되거나 기능이 저하돼 나타나는 악성빈혈의 일종인 "무형성 빈혈". 쉽게 피로를 느끼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심장병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이 때문에 무리한 운동을 할 수도 없고 늘 상처가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피가 부족한데다 재생이 안돼 많은 피를 흘릴 경우 치명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평소 축구 등 운동경기를 좋아했던 박군은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 수 없는 것이 무엇보다도 힘겹다. 오르막길에서는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할 정도여서 뛰는 것은 이예 엄두도 못낸다.
 "먹으면 눕고 금새 피곤하다는 준현이의 말에 살이 쪄서 그렇다고 구박했었습니다. 가끔 체육시간이 힘들다고 했을때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이미 오래전부터 빈혈이 진행되고 있었나 봅니다"
 어머니는 타인의 도움 없이는 결코 치유할 수 없는 난치병으로 고통받는 아들을 애처롭게 쳐다보면서 결국 말을 잇지 못했다.
 준현이가 많은 코피를 쏟은 것은 지난해 1월 가족들과 함께 설 명절을 보내던 북구 정자동 친척집에서다. 당시 피곤해서 그런가보다하고 넘겨버린 것이 화근이 됐던 것일까. 얼마뒤 청소년캠프를 다녀온 준현이는 얼굴이 백짓장처럼 창백해져 돌아왔다.
 급히 인근 병원에 옮겨 검사를 받으니 골수에 문제가 있다며 큰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아보라고 권유했다. 그 자리에서 서울 아산병원으로 데려가 검사를 받은 결과 무형성 빈혈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무형성 빈혈은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모두 생성이 안되는 악성 빈혈로 골수이식이 최선의 치료이자 유일한 치유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준현이는 지난해 3월부터 9월까지 6개월에 걸쳐 입원 또는 통원치료를 하면서 면역치료를 받았다. 면역치료는 암에 있어 암세포의 전이를 막는 항암치료와 같은 것으로 혈액 속 적혈구 등의 수치를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치료법이다.
 현재 잦은 수혈로 인해 철분 수치가 자꾸 올라가 울산대병원에서 통원치료를 하고 있다. 골수이식 수술을 할 때 철분의 수치가 올라가면 수술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 번 가던 통원치료도 최근엔 3일에 한 번으로 잦아지는 등 빈혈이 악화되는 추세를 보여 어머니의 시름은 더해지고 있다.
 준현이는 병원치료를 받던 지난해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지난해 9월부터는 오전 수업만 마친 뒤 귀가해야했다. 친구들과의 연락도 뜸해져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준현이는 올해 중학생이 됐다. 그러나 어머니는 준현이가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수업은 제대로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 크다.
 어머니는 "아들 둘을 잘 키워볼려고 지난 6년간 새벽에 우유배달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닥친 불행으로 일도 그만두게 됐습니다. 혼자 있을 준현이가 걱정돼 다른 일은 엄두도 못냅니다"고 말했다.
 다행히 둘째(10)는 아직까지 건강하게 잘 크고 있어 근심을 덜어주고 있다. 그러나 골수이식 외에는 치유방법이 없어 골수 기증자가 나타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병원비와 고통을 감당해야할지 걱정이다.
 남편(43)을 포함한 3명의 가족 중에 준현이에게 이식이 가능한 골수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병원에서는 일본, 대만 등 외국인의 골수라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현재까지 준현이에게 적합한 골수를 가진 사람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어머니는 준현이가 태어날때 제대혈을 신청해 놓았지만 현재 준현이 몸무게가 많이 나가 이 마저도 이용할 수 없다.
 "최근 골수가 맞지 않더라도 엄마의 골수를 이식하는데 성공한 사례도 있다고 들었으나 수술 비용이 만만찮아 망설이고 있습니다"며 "골수기증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집을 팔아서라도 수술을 하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요즘 근심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사춘기를 맞은 준현이가 답답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짜증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병원에서 수혈을 받을 경우 5~6시간이 걸리는데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준현이가 화를 내는 횟수가 잡아지고 있다. 집에서도 짜증을 내는 일이 많아졌다. 평소 아무 것이나 잘 먹던 준현이가 최근 들어서는 반찬투정도 늘었다.
 "새벽에 우유배달하는 날이면 엄마를 돕겠다며 일찍 일어나 이것저것 챙겨주던 정이 많은 아이였지만 요즘은 본인도 답답한지 짜증을 많이 냅니다. 한창 뛰어놀 나이에 방안에만 있어야 하니 오죽이나 답답하겠습니까. 하루 빨리 골수 기증자가 나타났으면 하는 바램뿐입니다"
 준현이네는 아버지가 대기업에 다니는 덕분에 생활고에 찌들리지는 않지만 엄청난 수술비가 예상되는데다 골수기증자가 없어 하루 하루를 힘겨워하고 있다. 김병우기자 kbw@ksilbo.co.kr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