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약 없는 병도 있더군요. 왜 병이 생겼는지 서울의 큰 병원에서 정확한 진단이라도 받아봤으면 여한이 없겠습니다"
 아이들은 자란다. 무럭무럭 자란다. 자라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부모의 기쁨이다. 그러나 김세진(9)군은 자라는 것 때문에 몸이 아프다. "차라리 성장이 멈추면 세진이 아픈 것은 없겠다"며 어머니 조현숙(35)씨는 눈시울을 적신다.
 동구 화정동에 살고있는 세진이는 "진행성 화골성근염"이라는 난치병을 앓고 있다. 근육과 힘줄 등이 점점 뼈로 변해 사지가 비틀어지고 결국에는 움직일 수 없게 되는 병이다. 발병 원인도 없고, 치료약도 없다. 돌처럼 딱딱한 근육과 힘줄을 깎아내는 수술만이 유일한 치료법이다.
 세진이의 병은 지난 1999년 3월 처음 발병했다. 어느날 갑자기 오른쪽 무릎에 주먹 크기의 단단한 혹이 생기더니 점차 사라지는 과정에 무릎이 비틀어지면서 굳어졌다. 다리가 펴지지 않아 걸을 수도 없었다.
 당시 3살이었던 세진이는 이 병으로 4차례나 수술을 받았다. 잇단 재발 때문이었다. 울산의 한 병원에서 첫번째 수술을 받은 뒤 6개월쯤 지나 다시 뼈가 굳어졌다. 부산에서 받은 3번의 수술은 힘줄까지 잘라내는 대수술이었다.
 그러나 세진이의 다리는 수술을 한지 6년이 지난 지금도 불편하다. 완전히 펴지지도 굽어지지도 않은 어정쩡한 형태로 딱딱하게 굳어져 제대로 걷지를 못한다. 이 때문에 친구들의 놀림도 자주 받는다. 얼마 전에는 친구들에게 떠밀려 팔이 부러져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설상가상으로 무릎에 발병했던 화골성근염이 허리와 가슴, 겨드랑이, 목까지 진행돼 세진이의 목숨까지 위협하고 있다. 세진이의 성장과 함께 몸 전체의 근육은 점점 단단한 혹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이 혹이 심장과 뇌로 전이될 경우 세진이의 생명도 보장할 수 없다. 요즘은 병의 전이에 따른 고통이 심해져 세진이는 신음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잔다.
 게다가 4~5시간 동안 계속되는 수술은 세살바기 어린 세진이에게 지각능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남겼다. 과학자가 장래 희망인 세진이는 전신마취와 수술 후유증 때문인지 초등학교 2학년임에도 불구하고 간단한 셈조차 어렵다.
 "원래 영리한 아이였는데 4번째 수술을 한 뒤부터는 말을 잘 못합니다. 며칠전에는 세진이가 소리를 지르길래 혼을 냈는데 알고 보니 물엿이 쏟아졌다고 그런 거였어요. 그런 세진이에게 야단만 쳤으니""
 8년째 세진이 모자를 돌보고 있는 고모 김준이(60)씨는 세진이 모자를 볼 때마다 안타깝고 속이 상한다. 그래서 모진 말을 한 적도 많다. 세진이 엄마에게 친정으로 가라며 악다구니를 부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남동생보다 더 친한 피붙이가 돼버렸다.
 고모는 IMF 이후 생활이 파탄난 막내동생의 처와 아들을 건사하기 시작한 것이 벌써 8년이 훌쩍 지났다고 한다. 세진이 아버지는 당시 가족을 떠났고, 어머니는 고모가 동구 대송동사무소 인근에서 운영하는 식당(맛자랑식당) 일을 도우며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그동안 세진이의 수술비와 생활비를 모두 책임졌던 고모의 희망은 병이 더 악화되기 전에 세진이가 수술을 받는 것이다. 현재 세진이는 다리만 수술받은 상태로 다리 위로는 손도 못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고모는 2년째 식당 손님이 줄어들어 먹고 살기에도 급급한 실정이어서 세진이 수술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
 더욱이 세진이의 병은 완치률이 매우 낮다. 병의 원인이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진이는 벌써 4번의 수술을 했고, 앞으로 몇번의 수술을 더 해야하는지. 성장이 멈추는 최소한의 나이인 20세까지는 수술의 가능성이 계속 남아있다. 고모는 병이 더 악화돼 생명에 지장을 주기 전에 세진이가 서울의 큰 병원에서 제대로 된 진단이라도 받으면 억울하지는 않겠다고 토로했다.
 "세진이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서 최근에는 혈압약까지 먹고 있어요. 올케와 조카 때문에 가끔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보면 안타깝고, 불쌍하고, 눈물도 나고" 세진이가 건강을 찾고 동생이 찾아와 세진이 모자를 데려갈 때까지는 곁에 두고 있어야죠." 서대현기자 sdh@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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