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해준이의 밝은 모습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다. 어머니 황정순(34·울산시 북구 호계동)씨는 이 그림자를 없애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지난 4년간은 오로지 해준이를 위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준이의 아픈 심장과 들리지 않는 귀는 황씨가 반드시 갚아야 할 업보와 같았다.
해준이는 태어날 때부터 심장에 이상이 있었다. 해준이가 앓고 있는 '심실중격결손'은 심장의 좌심실과 우심실을 나누는 심실중격에 구멍이 생긴 질환이다. 많은 경우 시간이 지나면 구멍이 저절로 메워지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수술을 해야 한다.
황씨는 처음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구멍이 막힌다"는 의사의 말에 안심했다. 심장보다는 첫돌을 지나면서 해준이의 귀에 나타난 이상 증상이 마음에 더 걸렸다. 첫돌까지 옹알이를 하고 이름을 부르면 뒤돌아보던 해준이가 불러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선천적인 질환이 또 다른 선천적인 질환을 동반한다고 들었어요. 병원에 가서 다시 진단을 받았는데 그 때 심장이 더 악화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혈액이 흘러내려 심장은 커졌고, 폐혈관은 확장돼 있었어요. 귀는 청력을 잃은 상태였구요. 놀란 것보다 죽을 것만 같았어요. 남편하고 밤새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황씨는 다섯살이 된 해준이로부터 한번도 '엄마'라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황씨와 해준이는 의미없는 소리로 서로의 생각을 나눈다. 해준이가 하는 어떤 소리가 마치 '엄마'를 부르는 것처럼 들릴 때면 황씨는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슬픈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해준이는 지난해 10월과 12월 두 차례 큰 수술을 받았다. 먼저 10월에는 심장수술을 받았다. 심실중격의 구멍이 너무 커서 완전히 꿰메지는 못하고 몸의 다른 조직을 떼내 덧대 놓은 상태이다. 수술은 성공적었다고 병원 측은 말했지만 황씨는 아직 안심을 못한다.
수술 뒤 6개월이 지나면 일단 안심할 수 있고, 수술한 지 1년이 되는 오는 10월께 검진을 받아 봐야 완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그 때까지 황씨는 살얼음을 걷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지낼 수밖에 없다. 완치만 된다면 지금의 고통은 참을 수 있다고 황씨는 말했다.
해준이는 그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이 호기심 많고, 부산스러우며 밖에서 뛰놀고 싶어한다. 수술 뒤 몸의 움직임은 한결 나아졌다. 그러나 완전치 못한 심장 때문에 땀을 많이 흘리고, 빨리 지친다. 장난감을 부산스럽게 갖고 노는 해준이의 이마는 금새 땀이 흘러내렸다.
12월에는 인공와우(달팽이관) 장착 수술을 받았다. 평생 달고 살아야 할 '귀'를 얻는 큰 수술이었다. 그나마 청신경이 너무 가늘고 약해 수술 당시 어려움을 겪었다고 황씨는 말했다. 아직 수술의 성공은 장담하기 힘들다. 해준이의 귀는 갓 태어난 아기와 비유하면 된다. 현재는 소리를 느끼는 정도다.
두 번의 큰 수술이었지만 해준이는 외부로부터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했다. 아버지 남봉수(가명)씨가 안정된 직장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해준이가 지금까지 받은 수술의 순수 비용은 심장수술이 700여만원, 인공와우 수술이 2천400만원 정도이다.
인공와우 수술의 경우 장치비용만 2천200만원이다. 이것도 평생 사용할 수 없다. 향후 10년 안에 해준이의 상태에 따라 교체해야 한다. 지난해 인공와우 수술은 다행히 메아리복지원에서 1천만원 가량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남씨는 4년전 해준이가 한창 아플 때 울산에 내려와 안정적인 직장을 구했지만 돈을 모을 새도 없이 번 돈의 거의 대부분은 해준이 치료비에 들어갔다. 매달 100만이 넘는 치료비에 생활이 점차 어려워지자 황씨는 복지재단 등에 호소했다. 그러나 반응은 냉담했다. 차상위계층 같은 지원의 사각지대에서 남씨 부부는 악전고투했다.
해준이가 수술을 받은 뒤 황씨의 경제적 부담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수술에 따른 빚과 언어치료비, 병원진료비, 학원비 등 한달동안 해준이에게 들어가는 100여만원의 돈은 여전히 부담이 되고 있다. 게다가 황씨는 일년이 채 안된 해준이 동생도 돌봐야 되는 실정이다.
"아직 젊고 남편도 건강하니까 돈이야 모으면 되지요. 힘들지만 꿋꿋이 이겨낼 거예요. 해준이만 건강하면 돼요. 해준이가 '엄마' '아빠'하고 우리를 부를 때까지 열심히 생활할 겁니다" 서대현기자 sdh@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