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불산의 물이 코리끼의 코모양으로 흘러내리는 마을, 상천리(象川里). 그러나 불천(佛川)이라는 의미가 더 와닿는다. 코끼리 상(象)자는 훈은 "법 받을 상"이라고도 한다. 불교(佛敎)를 상교(象敎)라고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상천리는 고려 때 통도사의 땅이었다는 국장생석표(울산시 유형문화재 호)가 그 증거로 버티고 있다. 통도사로부터 동북쪽 4 ㎞ 지점이다. 높이 120㎝, 너비 62㎝의 자연석의 국장생석표는 잘 보이지는 않으나 이두문으로 사원의 경계표시, 제작연대 등이 적혀 있다.

 통도사의 땅이었던 상천리는 1911년 상천동으로 법정동이 되었고 1914년 상천리가 됐다. 35번 국도를 경계로 삼성전관이 있는 가천리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상천마을, 신안마을, 신복마을 3개의 행정마을로 구성돼 있다. 국도와 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 아래로 내려가면 상천마을이다. 상천 뒤로 신안들을 지나면 신안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다시 벌장들과 공동묘지, 들네벌들, 참새미들을 지나면 함밤들 옆에 신복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상천이 101가구로 가장 많고 신안이 72가구, 신복이 77가구로 모두 합쳐 250가구 밖에 안되는, 삼남면에서 가장 작은 법정리다. 이들 가운데 반이상인 143가구가 농가다. 젊은 사람들은 대규모 축산업을 하거나 인근 공장에 다닌다.

 상천천 바로 뒤에 자리한 상천마을은 1991년 태화강백리를 취재할 때의 기억을 단번에 되돌려 놓을 만큼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을 들어서는 문처럼 좁은 입구로 들어서면 900여평에 이르는 큰 공동작업장이 있고 그 바깥으로 여느 농촌마을과 달리 비슷한 크기의 주택 65채가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다. 마을 뒤로는 축사가 줄지어 서 있다. 1973년 새마을 사업의 하나로 경남에서 유일하게 취락구조개선시범마을로 선택되어 새로 조성한 이 마을은 주택을 많이 짓기 위해 마당을 줄이는 대신 공동작업장과 축사를 별도로 마련한 것이다.

 변용규 이장은 "예나 지금이나 다른 마을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환경"이라며 "광장에서는 대형버스도 돌릴 수 있다"고 자랑한다. 70~80년대까지만 해도 버스 돌리는 일보다는 초가집이 없고 농작물 말릴 넓은 공간이 있다는 것이 자랑이었으나 세월따라 자랑의 방향도 바뀌었다. 물론 요즘도 가을이면 깨를 털고, 콩깍지를 까고, 고추도 말린다. 상천마을의 농작물은 모두 이 곳을 한번씩 거쳐 가기 마련이다.

 공동작업장은 마을문제를 허심탄회하게 의논하는 회의장이 되기도 한다. 한켠에 있는 마을 회관 앞에 놓여진 평상에 앉아 마을에서 일어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기도 하고 농사와 관련된 정보도 얻어간다. "27개 성씨가 사는 각성받이 마을이지만 오히려 몇몇 성씨가 사는 마을과 달리 패갈림 없이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며 "마을이 조성될 때부터 살아온 토박이들만 있는데다 자주 공동작업장에서 얼굴을 대함으로써 서로를 쉽게 이해한다"고 자랑한다. 자연스럽게 한 마당에 모인 식구들이 되는 것이다.

 공동작업장 한켠에 있는 마을 회관의 옥상에 올라가면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농촌에서는 보기 드물게 골목길에 곧게 뻗어 있고 반듯하게 사방으로 연결된다. 계획도시인 것인다. 주택의 규모는 예전 크기 그대로이지만 모두가 새로 단장했다. 내부구조는 물론이고 겉보기에도 퍽 세련돼 보인다. 어느 농촌에서나 쉽게 볼 있는 파란색 빨간색 슬레이트 지붕이 아니라 검정색과 밤색 등 중간색으로 칠해지고 모양도 다양하다. 완전히 새로 지은 집도 10여채 된다.

 마을 사람들이 한두마리씩 소를 들여놓고 키우던 공동축사도 85년께 개인에게 넘겼다. 농사를 위해 집집마다 한두마리씩 소를 키웠으나 농삿일이 기계화되면서 축산업으로 독립했기 때문이다. 현재 축사는 소가 230여마리, 돼지가 12만여마리에 이르는 큰 기업이 됐다.

 70~80년대 상천마을은 도토리묵으로 유명했다. 가을이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인근 산을 뒤덮고 있던 도토리나무 밑에 달려가 도토리를 주웠고 아낙네들은 쉴새없이 묵을 만들었다. 인근 마을 처녀들이 상천으로 시집오기를 꺼릴 정도로 묵을 많이 했으나 80년대 중반 들면서 도토리나무 대신 소나무가 산을 덮었고 "묵"은 이제 아득한 옛일처럼 추억 속에 있을 뿐이다. 이제 배과수원이 이들에게 큰 소득원으로 자리했다.

 상천마을은 요즘 별다른 불편이나 불만이 없는 마을이 됐다. 얼마전만 해도 고속도로 굴다리가 이들의 속을 썩였지만 그마저도 곧 해결될 전망이다. 승용차 한대가 겨우 지날 정도로 좁은 굴다리 때문에 공장건립은 말할 것도 없고 기계화영농에도 애로가 있었지만 곧 4.5m 높이에 12m 너비로 웬만한 차량은 불편없이 지나다닐 수 있게 확장될 계획이기 때문이다. 정명숙기자 jms@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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