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양읍 직동리 신화마을 북쪽, 즉 평리 고중마을에서 상북면 지내리 쟁골(齋宮谷)로 넘어가는 중간에 깊숙이 들어앉은 골짜기를 예로부터 까꾸당(加古堂) 또는 까꾸댕이라 불렀다.

 옛날 경상도 대구 부근 어느 고을에 최씨가 살고 있었다. 그는 본래 양반 가문의 뼈대 있는 집안 출신이었으나 윗대부터 워낙 가난하여 대구지역으로 이사해 양반들이 집단으로 사는 동네에서 상놈 행세를 하면서 겨우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주로 양반집의 농삿일, 심부름, 묘지기, 가마꾼, 대소사 치다거리 등 온갖 힘들고 천한 일을 도맡아 하였는데 천성이 부지런한 그는 열심히 일한 보람이 있어 제법 재산을 모았다. 어느 해 고향으로 찾아가니 고향 사람들이 반가워하지 않고, 특히 친척들은 더 멸시를 하였다. 상놈 행세를 한다고 족보에서 아예 이름도 빼버렸다. 하는 수 없어 다시 대구로 돌아온 그는 자기 집 근처에 큰 기와집을 짓고 살았는데, 이번에는 상놈이 양반 행세한다고 주민들이 더욱 싫어하고 괄시하며 인간이하의 모욕을 주었고, 심지어 마을 사람들로부터 몰매를 맞기도 하였다.

 최씨는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홧병이 날 지경이었다. 곰곰 생각 끝에 가족들을 데리고 아무도 모르는 낯선 객지에서 자유롭게 살아보리라고 마음먹고 장소를 물색한 곳이 지금의 언양읍 직동리와 상북면 지내리 사이에 있는 두리봉이었다. 이곳에 외딴 집을 지어 하인들도 부리고 제법 양반행세를 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귀던 이웃 친구들을 초대하여 많은 음식을 차려놓고 흥겹게 놀다가 술을 좀 과하게 마셔버리고 말았다. 술 취한 최씨의 입에서는 근본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만 말끝마다 온갖 상소리가 튀어나와 이곳에 모인 이웃 양반들을 놀라게 했다. 그 후로 자주 만나 상종(相從)해보니 그가 틀림없이 상놈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어 결국 또 끌려 나가 죽도록 매를 맞았다. 억울하게 태생과 현실이 거꾸로 되었다하여 마을이름도 까꾸당, 까꾸댕이가 됐다는 이야기다.

 본시 양반이었던 사람이 어릴 적부터 상놈행세를 하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그만 상것이 되고 말았다. 피는 양반이라 하나 행동과 말씨가 상놈의 것으로 젖어 있으니 이미 양반대접을 받기가 그른 것이다. 이 이야기는 오늘에 이르러서는 "양반의 피"가 따로 없다는 평등주의사상을 웅변해준다. 강길부 전 건설교통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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