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4일 한국영화제작가협회가 매니지먼트사의 공동제작 요구에 응하지 않기로 결의를 했다.

결의 전날 <실미도> 등을 만든 강우석 감독은 스타의 몸값을 강하게 비판했고, 뒤이어 스타들을 관리하고 있는 매니지먼트사와 스타들이 강하게 반박하는 등 일련의 다툼이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분명히 '돈' 문제이지만 실상은 엉킨 실타래처럼 꼬여있다.

현재 한국영화가 전성기일까? 대답은 '아니올시다'이다. 관객 1천만 시대에 이미 영화계 내부에서는 위기론부터 나오고 있었다. '거대 자본을 앞세운 헐리우드 영화와 스크린쿼터 축소 및 폐지에 대한 미국의 압력 등에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영화가 관객 몰이에 성공하면 스크린 쿼터의 압력이 드세지고, 한국영화가 파리를 날리고 있으면 당연히 관객은 헐리우드 영화를 보게 되니, 스크린 쿼터 압력은 조용해진다는 것이다. 영화인으로서 어느 쪽을 잡아도 상처를 입는 양날의 검이다.

어떤 상품을 만들려면 좋은 재료가 필요하다. 영화 제작에 있어서 좋은 재료란 곧 스타 배우이다. 관객의 선호도와 연기에 대한 검증이 되어 있으니 모두들 스타를 찾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좋은 재료를 가지고 상품을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일반 관객이 잘 모를 수 있는 재미있는 수치를 예를 들겠다. 우스갯소리로 투자를 받아 영화를 만들기 위해 돌아다니는 시나리오가 한 해에 약 900편은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영화제작사로 등록된 회사만 대략 1천200여 개임을 감안할 때, 충분히 수긍이 가는 이야기인데, 실상 한 해에 한국영화 개봉 편수는 적게는 50여편, 많으면 70여편 정도이다.

그 중 흔히 말하는 돈방석에 앉게 만드는 대박 영화가 5쥨6편 정도임을 감안한다면, 확률적으로 승률은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하나의 영화가 개봉돼 돈방석에 앉게 된다. 확률적으로는 로또 복권보다 좋다는 이야기이다. 수치상으로만 말이다.

여하간 한국에서 한 해 50편을 만들더라도 주연 배우가 최소한 25명이 필요하다. 그런데 스타급 배우들은 기껏해야 10명이다. 그러면 나머지 15편은 어떤 배우와 영화를 만들란 말인가? 그래서 좋은 원자재 값이 뛴다. 상품이 제값을 받고 잘 팔리면 원자재 값이 아무리 비싸도 상관없지만, 상품이 팔리지 않을 때 문제가 생긴다.

첫머리에 말한 스타들의 출연료가 너무 비싸다는 이야기는 결국 우리 상점에 물건이 안 팔린다는 말이거나 팔아도 이문이 없다는 이야기다. 상품이 잘 안 팔리고 있는데다가 제품을 만들고 있는 스태프들의 보수도 만족스럽게 못주는 형편인데, 재료값만 자꾸 올려 받으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인 것이다.

또다시 반문 할 것이다. 제품을 잘 만들면 당연히 사가지, 왜 제품도 이상하게 만들어 놓고 사가라고 하느냐? 여기에 또 아픈 이야기가 있다. 영화 제작에 돈을 투자하는 투사회사들이 투자금을 안정적으로 회수하기 위해 모험을 잘 하지 않는다.

곽경택 감독의 <친구>,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등도 투자를 받지 못해 고생을 했다. <올드 보이>는 단 하나의 단순하고 황당한 이유로 투자 결정을 받았는데, 최민식이라는 스타 배우가 출연한다고 도장을 찍었기 때문. 물론 박찬욱 감독이라는 타이틀도 있었지만….

영화에 투자하는 쪽은 경제원칙에 따라 투자금은 적게 들이고, 대박을 노릴 수 있는 코미디 영화나 공포영화에 우선 투자하게 되고, 이 두 장르를 조금 비켜나면 스타 배우를 미리 캐스팅하지 않고서는 투자금을 받아내기가 무척 어렵다.

이런 이유로 한국영화는 고만고만한 코미디와 공포 영화가 많아지고, 영화사는 스타배우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래서 관객 역시도 차츰 고만고만한 한국영화에 시들시들해지고 있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작금의 악순환의 현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며, 한국관객들에 감동과 환희를 가져다 줄, 관객이 평하는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칼을 갈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르네상스를 꿈꾸며….

판 커뮤니케이션 영화감독

◇필자 약력

△부산 출생 △판 커뮤니케이션 영화감독 △<백 한 번째 프로포즈>(오석근 감독)(1993·신씨네) 조연출 △<나에게 오라>(1996·선익필름·김영빈 감독) 조연출 △<불새>(1997·선익필름·김영빈 감독) 조연출 △2004 부산시연극축제 중 <박철홍 컴퓨터&전자음악전> <아니한덛>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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