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옥씨(36·울산광역시농아인협회 수화통역센터 대리)는 24시간을 근무한다.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하고 오후 6시 퇴근이라고 정해져 있지만 그런 규정이 의미가 없다. 그에게 "딸린 식구"인 울산지역 농아인 2천200여명이 그를 시도때도 없이 찾기 때문에 밤낮이 없다. 교통사고, 산업현장, 병원 응급실에서 의사소통을 하지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그들에게 밤낮이 따로 있을리 만무하다. 때론 가정문제까지 상담해야 한다.

 이대리가 농아인들의 "대변인"이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지난 96년 울산농아인협회가 경남지부였을 당시 후원을 위해 들렀다가 3개월 기초과정의 수화를 배웠다. 그 뒤 어느날 응급실에서였다. 한 농아인이 의사들과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아 아픈 아기를 병원에 둔채 이대리를 찾아왔다.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가 수화통역을 해 아기가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눈물이 났다. 비장애인들이 권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작은 것들조차도 누리지 못하는 그들이 안타까웠다. 그들에게 "권리" 찾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했다.

 그리 긴 시간이 아닌데도 이대리가 울산지역 농아인들 사이에서 "대모"로 불리는 것은 그가 장애인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고 그들을 "일반인과 다르지 않게" 대하기 때문이다. "특별한 사람이 아닌, 평범한 사람처럼 대하기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치열하게 대립하기도 한다. 농아인들에게 스스로가 변해야 상대방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농아인들을 정보지체인입니다. 그들은 세상과 소통할 방법이 단절될 있기 때문에 세상물정에 어둡고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서로 편견의 벽도 생기는 겁니다. 그들이 세상 속에서 제대로 교육받을 기회를 갖는다면 일반인과 똑같은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이대리는 그래서 본보기로라도 울산에서 농아인 대학생을 탄생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일반인들에게도 살아있는 수화를 가르치는데도 적극적이다. 실제 대화를 하지 못하는 책속의 수화는 우리가 십년 가까이 배운 영어로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장애인들과 직접 부딪치면서 배우는 수화가 퍼져 나가기를 바란다.

 이렇게 서로가 한단계씩 준비해 나가야만 장애인과 일반인간에 놓여있는 편견의 벽을 낮출수 있다고 믿는다.

 이대리는 음식점이나 커피숍 같은 공개된 장소에서 그들과 함께 수화로 수다를 떨기도 한다. 가끔 수화로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손가락질을 하거나 "저 벙어리 좀 봐라"는 식의 말을 뱉는 경우를 만나면 일침을 가한다.

 "우리가 외국에서 알지 못하는 언어로 욕을 하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면 느낌으로 알듯이 농아인들도 눈치로 충분히 느낍니다. 장애인들을 보고 손가락질을 하거나 얕보는 사람들은 사실상 더 큰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죠."

 이대리는 농아인들이 갖고 있는 "바보스러울만큼" 순진한 눈빛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다. 그래서 "농아인들은 고집이 세고 외곬수"라는 말에 대해 강한 부정을 나타낸다. 그도 처음 농아인들을 대할 때는 그런 편견을 갖고 있었지만 수화를 배우고 나서는 그들이 얼마나 세상의 때가 묻지 않고 간절히 대화를 원하는 지 알게 됐다.

 그래서 이대리는 요즘 농아인들에게 이메일로 대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한 아주머니가 시집간 딸과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며 기뻐하는 눈빛이 잊을 수가 없다.

 이대리가 이처럼 농아인들을 위한 봉사를 체계적으로 펴 나가고 있는 데는 2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라는 "재산"도 한몫하고 있다. 대부분 학생들이나 동아리 사람들이지만 자발적이면서 의욕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농아인들에게는 큰 힘이 되고 있다.

 이대리는 요즘 팩스겸용 전화기를 하나 장만했으면 한다. 사무실이 아닌 자리에서도 장애인들과 원활하게 의사를 주고 받을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최석복기자 csb7365@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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