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 활달한 편인 김준희(10·가명)양은 새 학년이 시작될 때마다 학교에 가기 싫어한다. 친구들이 또래 아이들보다 유난히 키가 작은 준희를 놀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준희는 해마다 3월이면 울면서 집에 오는 날이 다반사다. 어떤 때는 친구들에게 맞고 들어올 때도 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는 어머니 박선화(38·가명)씨도 그럴 때마다 속이 상한다.

하지만 박씨는 앞으로 준희가 지금 친구들에게 받는 따돌림과 놀림보다 더 심한 냉대와 멸시 속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운명' 때문에 마음이 더 아프다고 털어놓았다.

준희의 키가 작은 이유는 난치병인 '터너증후군' 때문이다. 성 염색체 이상으로 생기는 이 병의 주요 증상은 성장이 더디다는 것. 현재 준희의 키는 123㎝로 또래 아이들 평균치인 135㎝보다 10㎝ 이상 작다.

게다가 준희는 선천적으로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을 분비하는 '난소'가 없다. 그래서 2차 성징이 나타지 않아 여성호르몬 주사를 맞지 않으면 월경과 유방 등 여성 고유의 성징을 평생 가질 수 없다고 한다.

"지금은 어려서 잘 모르지만 나중에 자신의 처지를 알게 되고 비관에 빠질까 봐 참으로 걱정입니다. 앞으로 준희에게 자신이 앓고 있는 병과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어떻게 보여줘야 될지 고민이 많아요"

준희 부모는 지난 2003년 10월 준희가 난치병에 걸린 사실을 알았다. 준희 담임교사가 또래 아이는 물론 유치원생보다 작은 준희를 염려해 진단을 권유했다. 그 당시 준희의 키는 93㎝였다.

준희는 여성을 상징하는 '난소'가 없는 것은 물론 설상가상으로 '신장'도 하나 밖에 없었다. 박씨는 평소 준희가 자주 아프고 오줌을 잘 가리지 못한 것이 병 때문이라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남편의 사업 실패 후 남구의 한 교회에서 교회일을 도우며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그녀에게 준희의 병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신앙과 그에 따른 희망이 없었다면 버티기 힘들었다고 박씨는 말했다.

"남편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사업 부도로 가뜩이나 어려운데 몸까지 아픈 준희를 보면 불쌍하기도 하고, 또 저 어린게 혼자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하면 밤에 잠을 자지 못했어요"

준희는 매일 밤 자기 전에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고 있다. 옷에 가려진 부분은 주사 때문에 멍 투성이지만 일단 키가 자라는 것이 급선무이고, 성장호르몬을 공급받은 뒤 키가 조금씩 자라고 있어 박씨는 위안을 삼는다.

성장호르몬으로도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으면 그 때부터 준희는 여성호르몬 주사를 투여해야 한다. 여성호르몬은 준희가 여성으로 살아 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현재 준희에게는 서서히 터너증후군의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손톱과 발톱은 하늘을 향해 자라고, 아침마다 몸이 퉁퉁 붓는데다 약간의 충격에도 준희는 피오줌을 누곤 한다.

또 병으로 몸이 약해진 탓인지 중이염과 폐렴, 뇌수막염 등 잔병치레가 많고, 쉽게 피곤해져 저녁 8시면 잠에 빠져든다. 또래 아이들보다 집중력과 학습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것도 박씨에게는 걱정거리이다.

다행히 터너증후군이 올해부터 희귀난치성질환으로 선정, 의료보험이 적용되면서 치료 비용이 많이 줄었다. 보험 적용 전에는 한달에 보통 300만원이었지만 이제는 70만원 정도가 준희의 치료비로 나간다.

문제는 키가 자랄 수록 주사비가 비싸진다는 것. 더욱이 키가 150㎝ 이상이 되면 더 자랄 수 있어도 보험 혜택을 못받기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박씨를 힘들게 하고 있다.

이밖에도 평생 맞아야 하는 여성호르몬을 생각하면 준희의 장래를 준비해야 하지만 치료비와 생활비, 사업 실패에 따른 빚을 갚고 나면 엄두도 못내고 있는 실정이다.

박씨의 희망은 터너증후군이 장애로 인정받아 준희가 사회의 보호를 받으면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터너증후군은 평생 약물로만 버티어야 하는 불치의 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씨는 대부분 터너증후군 환자 가족들이 자녀의 장래를 위해 나서기를 꺼려하지만 자신과 준희의 희망을 위해 병을 알리고, 사람들의 이해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박씨는 터너증후군 환자와 그 가족들의 모임인 '소녀들의 모임' 회장으로 일하면서 환자의 권익 신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인터넷으로 병의 정보를 교류하는 데도 열심이다.

"어쨌든 희망을 버리지는 않아요. 저 아이를 어디까지 치료해 줄 수 있을까, 우리가 없으면 누가 돌볼까 하는 불안함은 있지만 믿음으로 헤쳐나갈 겁니다. 작지만 주님이 마련해 준 집이 있고, 또 우리 아이들은 어느 아이 못지 않게 밝고 명량하거든요"

서대현기자 sdh@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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