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들의 입에서 "세상 참 좋아졌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됐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무총리에 여성이 입각했다는 소식은 사실상 여성들도 놀랄만한 뉴스다. 여성이 대통령이 됐다는 소식 보다 더 생경스럽다. 최근들어 여성대통령에 대해서는 더러 말들이 나왔으니 은근히 그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했지만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인 국무총리는 예상 밖이다.

 신임 총리서리에 장상 이화여대 총장을 임명한 김대중 대통령은 박지원 비서실장을 통해 "21세기는 여성이 국운을 좌우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김대통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성총리를 발탁했다"면서 "학자, 교육자, 대학총장을 역임, 경영마인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내각을 효율적으로 이끌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발탁배경을 설명했다.

 여성으로서는 어떠한 미사여구를 동원해도 좋을 만큼 만족한 인사다. 여성정치지도자 배출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차치하고라도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여성의 고위직 진출은 단순히 남녀평등의 의미를 넘어선다. 기득권 세력인 남성들이 오랜 시간 동안 관행처럼 형성해논, 그래서 청렴을 주창하는 어느 한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수 없는 커넥션의 고리를 단박에 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들끼리는 고위직 여성은 아무 일도 안하고 자리만 지켜도 월급값은 한다는 농담도 한다. 또한 대부분의 여성은 아직은 우리 사회에서 기성정치에 물들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의 정치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각계의 여론을 수렴하는 다양성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쉬움이 있다면 대통령 임기 6개월이 채 남지 않은 시점이라는 점이다. 소신을 갖고 일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더구나 장상 국무총리서리는 평생을 학자로만 살아왔기에 업무파악과 내각장악에 시일이 걸릴 터인데 "여성정책만큼은 최고로 잘했다"는 평가를 받는 현 정부가 겨우 6개월을 남겨두고 여성총리를 선임한 것은 아무래도 아쉽다. 여성의 청렴성과 도덕성이 임기말 심각한 부패문제의 단순한 방패막이에 그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뒷맛이 약간 씁쓸하다.

 울산의 현실도 돌아볼 시점이다. 울산시의 정책입안의 자리에 있는 국장직에 여성은 달랑 한명이다. 광역시 출범과 남녀고용평등, 여성사회진출 확대 등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면서 여성계의 여론에 밀려 보건복지국장을 여성으로 임용한 뒤 5년 남짓 흘렀다. 5년전 여성국장의 탄생이 울산지역 여성문제의 해결점이 아니라 출발점이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지금쯤 여성공무원의 고위직 진출은 보다 확대되어 있어야 한다. 제자리 걸음은 상대적으로 볼 때 퇴보가 될 수도 있다.

 여성국장의 임용 방법도 다시한번 생각해야 한다. 보건복지국장에 선임된 정영자씨를 두고 자격을 논하고 싶지는 않다. 정영자씨의 임용에 대해 이렇쿵 저렇쿵 말이 많지만 그들의 의견을 재론하고 싶지도 않다. 문제는 누구냐가 아니라 임용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마땅한 사람이 없다"는 말로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지만 그것은 분명히 이유가 될 수 없다. 문제의 핵심은 개방형과 여성국장이라는 두가지 문제를 한자리를 통해 한꺼번에 해결하려는 인식 때문이다. 개방형 확대와 여성 고위직 진출이라는 시대적 요청을 기꺼운 마음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채워나가려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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