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뇌종양 수술을 받은 강혜림(가명·17)양은 수술 환자답지 않게 해맑은 모습이다. 머리카락이 군데군데 빠지고 오른손을 거의 쓸 수 없는 상태지만 혜림이 얼굴을 쳐다보면 그런 느낌이 먼저 든다. 그러나 그 해맑음 뒤에 숨겨진 아픔과 슬픔을 이야기하기만 하면 어머니 안선주(가명·49·울산시 중구)씨는 어김없이 눈시울을 붉힌다.

혜림이는 일곱살 때 갑자기 넘어지면서 경련을 일으켰다. 병원으로 급히 옮겨 검진한 결과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너무 어려서 곧장 수술은 힘들었다. 4년간의 투약생활 끝에 다행히 뇌종양 증세는 거의 사라졌다.

어머니는 혜림이의 증세가 나아지자 일단 안심했다. 1천만원대에 이르는 수술비를 마련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었다. 수술비를 마련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후 파출부와 식당에서 일을 하면서 1천만원의 수술비를 모았다. 혜림이 가족에게 이 돈은 희망과 같았다.

"가난 때문에 수술을 받지 못했던 혜림이에게 줄 수 있었던 유일한 희망이었어요. 그런데 친척이 이 돈을 빌려가서 갚지 않았어요. 화를 내고 달래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우리 가족과 혜림이의 희망이 날아가 버린 거죠. 마침 남편도 사업에 실패해 집안 사정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병마는 혜림이를 가만두지 않았다. 혜림이는 지난해 또다시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당시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아버지는 사업실패로 수천만원의 빚을 져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끼니를 겨우 때울 만큼 집안 사정은 악화됐다. 게다가 혜림이의 뇌종양은 머릿 속 깊숙이 뿌리 내린 상태였다. 아무리 독한 약도 혜림이를 다시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 수술만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수술비 마련에 애를 태우던 중 혜림이가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성금 1천800만원을 전달했다. 안씨는 구원을 받은 것 같았다.

혜림이는 주변의 도움으로 지난 8월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 그러나 종양의 뿌리가 너무 깊어 완치를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또 수술 후유증으로 몸의 오른쪽 부분과 혀가 마비돼 오른쪽 손발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말도 많이 어눌해져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상태다. 현재는 부산의 한 병원에서 방사선치료와 물리치료를 병행하며 병마와 지루하면서도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혜림이 못지않게 가족들도 힘겹다. 수술비는 어떻게든 마련했지만 입원비와 치료비 마련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혜림이네의 한달 수입은 작은 중소기업에 다니는 아버지의 월급 130만원. 그러나 한달동안 병원에서 쓰는 돈은 입원비와 치료비, 검진비를 포함해 150만원을 훌쩍 넘는다. 앞으로 얼마간은 수술 전에 병원에 미리 납부해 놓은 보증금 400만원으로 버티겠지만 곧 치료 자체를 포기해야 되는 상황까지 염려해야 할 처지다. 병원 비용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울산 집에서 거의 혼자 지내는 막내딸(13)의 생활비는 엄두도 못내고 있다.

"입원할 때 보증금을 내야 했어요. 보증인이 필요했는데 아빠가 신용불량자여서 아무도 보증을 서주지 않았거든요. 지금은 보증금으로 혜림이 치료를 하고 있지만 1~2개월 안에 그 돈도 바닥이 날 거예요. 그러면 어쩔 수 없이 퇴원해야 됩니다. 답답한 마음에 혜림이하고 밖에 나가서 바람을 쏘일 때면 눈물밖에 나지 않습니다"

현재 3인실에 입원중인 혜림이는 7인실로 병실을 옮기고 싶어 한다. 입원비 때문이다. 혜림이는 또 항상 밝은 얼굴로 어머니를 대하려고 노력한다. 물리치료를 마치고 절뚝거리면서 어머니를 찾을 때도 혜림이는 웃는다. 그만큼 어머니를 이해하려고 한다. 어린 나이에 병마와 싸우면서 체득한 딸의 철든 모습이 어머니는 안스럽기만 하다.

그래도 혜림이는 방사선치료 때문에 빠진 머리가 부끄러운 사춘기 소녀다. 누군가 자신을 쳐다볼 때면 까닭없이 서럽고 화가 난다. 학교에 다시 가서 친구들과 마음껏 수다도 떨고 싶고, 피아노도 마음껏 치고 싶어 한다. 1차 수술이 끝난 뒤 1주일간 집에 있을 때 혜림이는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갔다. 이후 몸 상태는 다시 악화됐지만 그 때가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다.

"앞으로 최소 1년동안 경과를 지켜보며 병원에 있어야 하는데 오죽이나 답답하겠어요.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하는 마음을 왜 모르겠어요. 정말이지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했다는 원망은 듣기 싫은데…. 너무 힘들어서 다시 일을 시작해야 될까 봐요. 빨리 낫게 해서 씩씩하게 다시 학교 가는 모습이 정말 보고 싶어요" 서대현기자 sdh@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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