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대작이 없는 틈을 타 조연배우들의 주연 경쟁이 치열하다.

올 2월에는 유난히 조연배우들의 주연 데뷔작이 눈에 띈다. 작년까지만 해도 조연 배우로 활동했던 황정민이 '너는 내 운명'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통해 각종 영화제의 주연상을 휩쓸며 주연 배우로 부상한 이후 누가 '포스트 황정민'을 열어갈지 관심이다.

먼저 9일 개봉한 김수로의 '흡혈형사 나도열'. 김수로는 93년 영화배우로 데뷔한 이후 13년 만에, 25편째 만에 첫 주연작을 따냈다.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 엔터테이너로서의 진가를 톡톡히 알린 그는 그 덕택인지 평일임에도 개봉 첫날 14만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출발이 이 정도면 썩 좋은 기록.

이어 16일에는 코믹 연기로 팬들의 주목을 받아온 최성국과 신이가 처음으로 주연배우로서 호흡을 맞추는 '구세주'의 개봉이 기다리고 있다.

23일에는 자칭 '54년 만의 첫 주연'이라는 명계남과 영화계에서는 만년 조연배우였던 성지루의 주연 데뷔작 '손님은 왕이다'가 개봉된다.

3월에도 조연배우들의 주연으로서 활약은 기세를 꺾지 않는다.

작년 '마파도'의 흥행 성공으로 주연급으로 올라온 이문식이 '형사 공필두'로 단독 주연에 도전하고, '광식이 동생 광태'를 통해 투톱 영화를 이끌었던 봉태규는 '썬데이 서울'에서 한 에피소드의 주연을 거쳐 '방과후 옥상'에서 명실공히 원톱으로 자리매김한다.

2000년 '자카르타'에서 임창정과 공동 주연을 맡은 후 스크린을 떠나있었던 김상중 역시 조연 이미지가 강한 배우. '투사부일체'로 재기에 성공한 이후 이무영 감독의 차기작 '아버지와 마리와 나'에서는 주연으로 우뚝 섰다. 물론 이 영화는 아직 크랭크 인 전이고 개봉은 멀었지만 의미 있는 캐스팅으로 여겨진다.

탄탄한 연기력으로 든든한 진용을 자랑하던 남자 조연 배우들이 회심의 일격을 준비하고 있는 셈. 조연급에 여자 배우들이 많지 않기 때문인지 주연에 도전하는 조연 배우진도 남자가 우세하다.

이들의 기용은 한국 영화의 스타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아지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의 눈높이가 올라갔기 때문이다.

물론 장동건, 설경구, 한석규, 권상우 등 톱스타 출연작이 개봉 전 훨씬 주목받는 건 여전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었을 경우 배우의 스타성보다는 영화 자체에 주목하는 경향이 짙게 나타나고 있다.

장동건-이정재 주연의 '태풍'과 권상우-유지태 주연작 '야수'가 대대적인 마케팅에 나섰으나 개봉 후 별다른 화제를 일으키지 못한 반면 톱스타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음에도 1천만 관객 고지까지 돌파한 '왕의 남자'의 성공이 이러한 현상을 강하게 대변한다.

백윤식, 김수미, 신구, 장항선, 나문희 등 중견 배우들이 젊은 스타 못지않은 팬층을 형성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경향 때문.

조연 배우들은 하나같이 "주연이나 조연이나 배우로서 임하는 태도는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작품을 책임져야 하는 책임감이 더해지는 것은 사실.

'흡혈형사 나도열' 이후 '먼데이 드라이브' 촬영에 들어갈 김수로는 "촬영 초반에는 심신이 너무 힘들어 '단독 주연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면서도 "촬영 중반부터 현장 분위기를 즐겼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할 것"이라 말했다. 연합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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