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 울주군 방기리는 울산에 주소를 두고 있지만 울산사람도 양산사람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 있다. 지리적으로 울산과 양산의 경계에 자리하고 있어 양쪽 도시의 이익을 고루 보고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양쪽 도시로부터 똑같이 소외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상방 방기 하방 연봉 등 4개의 행정마을로 구성된 이곳 주민들 가운데 하방마을 주민들은 전화번호의 지역번호를 울산광역시 번호인 052가 아닌, 경남도의 055를 사용한다. 전화번호가 광역화되기 전에는 양산지역번호인 0553을 사용했다.

 생활권을 나타내는 닷새장도 양산 통도사 아래 신평장을 보다가 큰 제사가 들거나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는 언양장을 찾는다. 초등학교는 방기초등학교를 다니지만 중학교는 또 신평중학교로 진학한다.

 상방마을 이장 이종근씨는 "울산시민이라는 생각은 별로 안하고 살죠"라며 "그렇다고 양산사람도 아니고, 좀 어정쩡하죠"라고 말하면서도 별 대수롭잖게 생각했다.

 울주군에 볼일이 있을 때면 하루 마음을 다잡아 먹고 시간을 내서 울산시까지 나가야 하지만 워낙 오래전부터 익히 그래왔던 일이어서 크게 불평을 늘어놓을 줄도 모른다.

 방기리는 통도사의 뒷산인 영취산의 바로 아래 자리잡고 있다. 통도사와 하나의 산을 베고 있는 셈이다. 방기리에 들어서면 영취산의 멋들어진 능선이 한눈에 잡힌다. 산줄기를 "어 흘러내리는 하천을 따라 마을은 길게 형성되었다. 방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살았던 터라하여 방기리라 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방씨는 거의 없고 오히려 최씨의 자손이 많이 살고 있다. 또 석가탄신일이면 통도사에 손님이 넘쳐 신도들에게 이 곳의 방을 내주어서 그렇게 불렀다고도 한다.

 지금부터 10여년전인 91년에만 해도 방기리는 영취산 가장 위에서부터 상방, 중방, 하방 3개의 자연마을에 500여명이 살고 있는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다. 그 때 막 새로운 택지가 조성되고 삼성SDI가 들어서면서 급격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었고 예상대로 주민 수에 변화가 생기면서 상방, 방기, 하방, 연봉의 4마을로 재편성되었다. 가구수도 2002년5월31일 현재 거의 배가 늘어난 974가구가 되었고 주민은 2천906명에 이른다.

 4개의 마을 가운데 상방마을은 땅은 예전 그대로이나 마을의 모양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자연마을 한켠에 삼아아파트라는 230여가구나 되는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데다 70여가구의 자연마을 앞뒤로 펼쳐져 있던 논밭은 산자락 바로 아랫쪽만 남겨두고 모두 주택지로 바뀌어 버렸다. 자연마을을 섬처럼 가운데 남겨두고 양쪽으로 신흥주택지가 된 것이다.

 상방앞들과 뒤쪽의 청룡들이 77년 도시계획에 따라 주거지역으로 지정되어 90년대 초반 1지구 2지구로 나누어 택지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1지구가 먼저 사업을 시작했으나 2지구가 1지구보다 빠른 96년 완료되어 2지구는 제법 주민수가 많다. 1지구는 이제 막 빌라라는 이름의 다가구주택이 몇채 들어서고 있다. 상방마을 전체 주민수는 513가구. 예전의 방기리를 모두 합친 규모다.

 산자락 아래 밭은 배과수원이 대부분이다. 10여가구가 1만5천여평의 배밭을 가꾸고 있다. 이익이 적은 논농사를 치우고 배농사로 바꾼 사람들이 있어 10여년전보다 배과수원의 규모는 더 늘어났다.

 택지에는 다가구 주택들이 군데군데 들어서 있으나 아직은 주택보다 빈터가 더 많다. 부지런한 주민들이 땅을 일구어 채소를 가꾸기는 하지만 도로만 덩그러니 드러나는 넓은 풀밭에 다름 아니다. 이들 신흥주택지에는 삼성SDI(옛 삼성전관)와 인근 중소기업에 다니는 젊은 사람들이 새로 이사를 해와 시골마을로서는 드물게 젊은 사람이 북적댄다.

 최근 회사 가까운 곳이라하여 상방마을의 새 주택에 세를 얻어 들어온 송창성씨(37)는 "아직 아이들이 어리니까 조용하고 시골분위기 나는 곳이 좋아 들어왔지만 아이들이 학교 갈 때 되면 다시 시내로 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퇴근하고 돌아오면 집앞의 빈땅에 심어둔 고추밭에 물을 주며 한가한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다.

 주거지개발로 투기붐이 일면서 한 때 술렁였던 토박이들도 이제는 차분해졌다. 주택이 죄다 들어서 신흥주택지로 주가를 높일 날은 언제가 될지 모를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종근 이장은 "삼성SDI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은 이미 자리를 잡은 상태이고 그 밖에 중소기업이 있긴 하나 그렇게 많은 인원이 집단으로 몰려들만한 규모는 아니다"면서 "그렇다고 울산시나 양산시와도 거리상으로 떨어져 있어 전원주택지로서 각광을 받을 위치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예전에 상방마을은 참으로 가난했다. 삼성SDI가 들어서기전, 그러니까 30여년전만 해도 끼니 때우기도 힘들었다. 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물이 풍부하지 못했기 때문에 농사가 잘 되지 않았다. 영취산의 다섯 골짜기가 마을앞 하천으로 흘러들지만 물이 고여 있지 않고 한꺼번에 급류가 되어 쓸려가 버리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의 젊은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는 산두(논이 아닌, 밭에 심어 수확한 벼)를 이 지역의 40대는 추억처럼 이야기한다. 수제비로 끼니를 때우기도 다반사였다.

 지금도 마을 앞의 하천은 거의 말라 있다. 비가 오면 금세 물이 불어나 급류를 이루지만 비만 그치면 어디론가 스며들어버리고 건천이 되고 만다. 지난 91년 택지개발을 하던 사업자는 하천에 물이 거의 없으므로 하천을 복개해서 택지를 늘리려고 했으나 지형적 특성을 체득하고 있는 주민들은 하천 복개로 인해 일어날 상황을 고려해 반대하고 나서 한동안 시비가 일기도 했다. 그 시비는 때마침 불어닥친 글래디스호로 산사태가 일어나 주민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발하는 바람에 당연히 주민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쪽으로 해결됐다.

 상방마을은 20여년 단위로 급속한 변화를 이루고 있다. 50여년전 산골오지가 배과수원으로 개간되면서 한번의 변모를 거쳤고 30여년전 삼성SDI 설립과 함께 또한번 변모했다. 그리고 10여년전 택지개발로 인해 마을의 외양이 바뀌었고 앞으로 10년 뒤 쯤엔 택지에 주택이 죄다 들어서면 또다른 도시로 변모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글=정명숙기자 jms 사진=김동수 dskim@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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