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밤에 웬일인지 일본 작가 구리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이 생각난다. 그 이야기는 섣달 그믐날의 이야기인데다 따뜻한 우동은 겨울이 제격이고 보면 조금은 뚱딴지 같은 생각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름휴가라는 이름으로 전국민이 휴양지를 찾아 떠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새삼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고 몇년전에 읽었던 〈우동 한 그릇〉의 따뜻한 이야기가 되살아났다.

 〈우동 한 그릇〉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섣달 그믐날 북해정의 주인이 마지막 손님을 맞는 이야기가 나온다. 가게 문을 막 닫으려고 할 때 두명의 아이를 데리고 들어온 한 여자는 우동 한 그릇을 시켰고 그들의 남루한 옷차림을 보고 주인은 우동을 더 넣어 맛있게 끓여주었다. 그 손님들은 해마다 섣달그믐날이면 북해정을 찾아 우동을 먹었고 주인은 그들이 앉을 2번 테이블을 예약석으로 만들어놓고 매년 그들을 기다렸다. 몇년을 기다려도 오지 않던 그들은 14년만에 정장차림의 두 청년과 한 여인이 되어 북해정을 방문했다. 십수년의 세월을 순식간에 밀어 젖히고, 그날의 젊은 엄마와 어린 두 아들이 장성하여 찾아온 것이다. 그들은 "그때의 우동 한 그릇에 용기를 얻어 세 사람이 손을 붙잡고 열심히 살아갈 수 있었다"며 "지금까지 인생 가운데 최고의 사치스러운 것을 계획했는데, 그것은 섣달 그믐날 어머님과 셋이서 삿뽀로의 북해정을 찾아와 3인분의 우동을 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조용하면서도 아름다운 인간애와 가족애를 물씬 느끼게 했다. 메마른 현실에 허우적거리는 현대인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이글을 읽으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지난해 미국은 9·11 테러를 맞았고 그 후 미국에서도 가족관계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형제들이 가급적 주말이면 부모를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새삼스레 가족의 소중함을 느낀 것이다. 은퇴하여 자식들과 떨어져 살던 사람들이 다시 대가족을 이루며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손자, 손녀를 돌보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도 한다. 그러면서 정서적으로 더 안정되고 평화스런 가정이 늘어난다고도 하며, 아이도 가급적 많이 낳으려 하여 올해 여름 이후 분만이 지난해 보다 약 50%가 증가하였다고도 한다.

 현대문명이 첨단으로 달리고 생활이 편리해지면 해질 수록 인간을 고독해지기 마련이다. 고도로 발달된 정보사회와 기계화된 산업사회에서 기계의 한 부품처럼 인생의 목적을 까맣게 잃어버린 채 상실의 세월을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본다. 살아갈수록 그 고독과 상실감을 벗어날 수 있는 한 방편이 바로 가족이고, 어릴 때의 추억이라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여름철이면 가족 단위로 휴가를 떠나는 것이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일상이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다행스럽게 생각된다. 예전에는 주로 남자들끼리 어울리던 문화도 가급적 가족단위로 돌아서고 있는 것을 자주 접하면서 새삼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렇게 흘러가야한다는 데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은 아름다운 자연과 인간의 착한 심성이 어우러진 정감어린 낙원이었으면 좋겠다. 여름이면 어릴적 냇가에서 발가벗고 물장구치며 놀던 친구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시려온다. 한겨울 "찹쌀떡 사려~! 메밀묵 사려~!"하며 골목을 휘감고 돌던 애잔한 목소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왠지 목이 메인다.

 이 여름날 저녁 어디 조용한 야외에 나가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보며 ‘별하나 나하나’하며 아이들과 속삭이든가, 파아란 반딧불이를 따라 어두운 밤길을 쫓아다니는 것은 어떨까. 또 멀리 떨어져 있던 부모형제들이 같이 모여 모깃불 피워놓고 옛 이야기나 하며 형제애를 맘껏 느껴봄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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