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고 교육의 수장이라는 분이 "이제는 입시지옥에서 우리 아이들을 해방시키겠다. 한두 과목만 잘하거나 특출한 재능만 있으면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우리 학부모들은 설마 하는 의구심과 혹시 하는 기대감을 가졌고 아이들은 여러 가지 재주를 배우러 여기저기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분은 늘 그랬듯이 그 자리에서 물러났고 그때의 아이들은 3년 후 여전히 변하지 않은 입시전쟁을 겪으면서 대학에 들어갔다. 다시는 이런 혼란이 없었으면 하고.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하나 된 지난 6월, "2+1"이라는 생소한 기호와 접하면서 우리는 또 한번의 의구심과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2005학년도 대학입시(현재 고교 1학년 대상)에서 수능 영역 중 두세 영역만 반영하라고 각 대학에 권고하겠다는 교육인적자원부의 발표였다. 수험생들이 준비하는 양을 줄여 입시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정책이었다.

 수험생들은 다시 흔들렸다. 자기가 지원할 대학의 모집 단위와 관계없는 과목은 소홀히 하기 시작했다. 인문계는 수리영역을, 자연계는 언어영역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구나하고. 그러나 두 달도 채 가기 전에 우리의 아이들은 또다시 혼란스러워졌다. 우리 나라 대표적 대학들의 입시책임자들이 모인 워크숍에서 2005년 입시에서 언어, 수리, 외국어를 모두 반영하겠다는 "3+1"이라는 방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나라 최고라고 자부하는 서울대에서 지난 2일 대부분의 모집 단위에서 수능 5개 영역 중 4개 이상을 반영하기로 하는 입시 방안을 발표했다. 학생들의 학력저하를 막기 위해서라는 이유였다. 우리 아이들은 덮었던 수리영역책과 언어영역책을 다시 펼쳤고 오락가락하는 입시정책만 원망하게 되었다. 언제쯤 우리는 입시 혼란을 겪지 않을까.

 물론 시험과목을 늘리려는 서울대나 이를 줄이려는 교육부나 나름대로의 논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어느 쪽이 교육이념에 맞는지 또 이 나라 발전에 기여할지 시비를 가리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들의 말 한마디에 인생을 걸고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 학생들을 생각해 달라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0교시수업, 보충수업, 야간자율학습, 방학중 보충수업까지 그네들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대학입시에 저당잡힌 우리 아이들을 생각해 제발 신중하라는 부탁을 하고 싶다. "권고해서 안되면 그만"이라든가 "이미 발표된 방안도 쉽게 뒤집으면 그만"이라는 발상은 문제가 많다. 국가백년지대계라는 교육정책은 물론이고 방안도 합의 도출해내지 못하고 자기 목소리만 내는 교육정책자들을 어찌 믿고 우리 아이들을 맡기란 말인지 도데체 이해할 수 없다.

 우리 아이들은 세계 어느 나라 아이들보다 우수하고 적응력이 뛰어나다. 각종 경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여주듯이 우리 아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입시전쟁을 잘 준비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그 아이들도 언제든지 다시 흔들릴 수 있을뿐더러 그렇게 되었을 경우 누가 책임질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처럼 학생들이 선망하는 대학은 한정되고 지원자가 많은 나라에선 경쟁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따라서 교육인적자원부는 각 대학이 공정하게 학생을 선발하는지 만이라도 확실히 관리, 감독해야 한다. 더불어 대학 학생 선발권은 각 대학에 맡겨 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다.

 대학 입학정책자는 "어떤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하느냐"가 이 나라 고등학교 교육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학생들을 "암기 기계"로 만들어서 입시지옥에서 헤매이게 하느냐, 아니면 바른 인격과 실력을 갖춘 사회인으로 성장하게 하느냐가 입학선발과정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