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미식축구 최고의 경기인 슈퍼볼 최우수선수, 한국인 어머니와 주한미군 흑인 병사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냉대와 따돌림으로 외롭게 보내야 했던 혼혈인인 하인즈 워드. 그의 검은 팔뚝엔 한국어로 하인즈 워드가 새겨져 있다. 자신의 성장과정과 성공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 오히려 방해만 주었던 반쪽 조국 한국을 잊지 않고 살았던 것이다.

매스컴이 연일 하인즈 워드를 다루고 있을 때 첫 아이의 장애로 인해 그에게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어 뜻이 맞는 부모들과 함께 장애인 복지시설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필자는 왠지 모르게 가슴 한 쪽이 시려왔다. 하인즈 워드에 대한 우리의 갑작스런 뜨거운 관심은 장애인복지 전반에 주어지는 사회적 관심과 상당히 비슷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장애인은 늘 같이 늘 항상 옆에서 생활하며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는데 유독 연말이나 장애인의 달이 되면 지역사회 여러단체가 물품후원, 자원봉사, 각종 행사 동원 등으로 관심을 보내온다. 매스컴도 장애인에 대한 복지 수준이 어떠하고, 과제가 어떠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떠하고 등등을 토론의 주제로 내세워 다룬다. 몇몇 장애인관련 전문가들은 신문의 칼럼을 통해 비슷한 의견을 개진한다.

너무 식상한 일이 아닐 수 없고 하인즈 워드의 얘기를 들으면서와 같이 가슴 한구석이 시려온다.

지금은 영웅이 되어있는 하인즈 워드 뿐만 아니라 국내에도 많은 혼혈인이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맡은바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의 노력과 상관없이 사회인식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장애인문제도 마찬가지다. 장애인들이 가진 능력, 자질, 노력이 아닌 동정의 존재, 특별한 존재 등으로 생각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인식이라는 벽으로 가로막고 있다. 결국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소외된 계층으로 살아 갈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관심조차도 무조건 비판만은 할 수 는 없다. 각박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주위를 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나마 장애인의 달에라도 장애인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주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먼저'라는 뭔가 특별한 의미를 가진 선심성 관심 보다는 항상 '장애인과 함께'라는 일상적인 관심으로 그들을 바라봐 준다면 함께 사는 사회, 더불어 사는 사회가 앞당겨 지지 않을까.

박정래 우리사랑복지재단 직업재활시설 우립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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