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차 봤다" 목격자 진술 일사천리 수사
가족들 "진실 가려줄 지문조사 않았다"
장애인 배려없던 수사에도 서운한 감정
사건 종결처리 불구 인권위에 진정검토

다운증후군을 앓는 10대 정신지체장애아동이 트럭을 훔쳐 몰다가 사고를 냈다는 '믿기지 않는' 사연이 전해지면서 잔잔한 파문이 일고 있다.

특히 교통사고로 사건이 처리되는 과정에 비장애인이 사고를 낸 거나 다를바 없이 업무를 처리, 우리 사회에 퍼져있는 장애인에 대한 이해부족의 한 단면으로 비쳐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지난 3월23일 오후 9시30분에서 11시 사이. 다운증후군(정신지체 2급)을 앓는 조동훈(11)군은 어머니와 누나가 운영하는 남구 달동 가게 인근에서 자전거를 타러 나간 뒤 경찰로부터 연락이 왔다.

동훈군이 세워져 있던 트럭을 훔쳐 시동을 건 뒤 오토기어를 변속, 중앙선을 넘어 100곒가량 직진하다가 승용차를 들이박고 다시 후진기어를 넣어 인근의 세차장 유리를 깨는 사고를 냈다는 것이었다. 비장애인 운전자들도 익숙하지 않은 트럭을 타고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는 것이 쉽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경찰은 트럭에서 내리는 동훈군을 봤다는 목격자의 진술에 따라 사건을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자칫 절도에 무면허 뺑소니사고가 될 수 있다는 말에 당황스러웠던 가족들은 우선 세차장 유리값을 변상했으며 트럭의 범퍼도 수리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조군이 그런 사고를 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그 트럭은 신장 180㎝의 성인이 운행하던 차량이기 때문에 그에 맞추어 의자의 높이 등이 고정돼 있으므로 키가 130㎝에 불과한 11살짜리 조군이 운전대에서 가속페달(엑셀레이터)을 밟거나 기어를 조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조군의 가족들은 조군이 시동을 걸고 전진기어를 넣었다가 다시 후진기어로 변속할 만한 운전실력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조군이 사고를 냈다는 사실은 절대로 믿지 않고 있다. 다른 누군가가 실수를 저지른 뒤 인근에 있던 조군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다.

하지만 조군이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정신지체를 앓고 있어 현재로서는 무죄를 입증할 길이 없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변상을 해주었던 것이다. 조군이 의사전달에 동원하는 언어는 모두 10마디도 안된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이해부족이라는 벽에 부딪혀 조군의 가족들은 다시한번 좌절했다.

누나 조현정(26)씨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는데도 목격자 진술 한마디에 모든 일을 동훈이가 저지른 것처럼 돼 너무나 억울하고 안타깝다"며 "겉모습만 봐도 한눈에 중증 장애아동이라는 것을 알수 있는데도 조사과정에서 장애인에 대한 배려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며 서운해했다.

경찰은 정신지체아동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목격자 말만 듣고 정확한 진실 여부를 가리기 위한 지문조사 등을 실시하지 않았다. 어떤 부서에서 업무처리를 해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여성청소년계에서 자료를 넘겨받고는 진실여부를 가리지 않은 채 아동이라는 사실을 들어 '내사종결'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가족들은 진실을 가려 혐의가 없어지기를 기대했는데 사건을 대충 덮어버리려는 경찰과 '없었던 일로 하자'는 차량소유주의 의견에 따라 사건이 종결됐다면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 접수를 검토하고 있다.

조현정씨는 "금전보상이 억울해서가 아니라 우리사회에 퍼져있는 장애인에 대한 이해부족 정도가 너무 심해 힘든 일인줄 알지만 무죄를 입증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최석복기자 csb7365@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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