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대표팀 CEO 히딩크는 우리 나라 축구를 월드컵 4강까지 올려 놓았다. 그 전까지 한국축구가 월드컵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것을 감안할 때 그의 리더십은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덕분에 국민들(한국축구대표팀을 주식회사에 비유하면 소액주주들)은 급등한 한국축구의 시장가치에 즐거움을 만끽했다. 어느 경제연구소는 히딩크가 성공한 이유들을 밝히고 기업경영에 활용할 가치가 매우 높다고 분석했다. 지도자 혹은 한 개인이 조직을 하루아침에 얼마만큼 변화시키고 기쁘게 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극적인 사례라고 생각된다.

 성공한 히딩크와는 사뭇 다른 CEO 얘기들이 최근 미국에서 들려오고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다른 나라들에게 가르치는(때로는 강요하기도 하지만) 경제교과서 미국에서 대기업 CEO가 기업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회계부정을 저질렀다고 한다.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는 이유로는 허점이 많은 미국 일반회계원칙(GAAP)과 함께 상도에 어긋난 CEO 개인의 일탈행위가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CEO의 경영능력 혹은 보수를 결정하는 구조가 주가로 표현되는 단기 경영이익에 치우쳐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보수체계에서는 CEO가 주가를 높이기 위해 이익을 부풀리거나 더 나아가 스스로 주주들을 무시하고 자신만을 위한 룰을 만들 개연성은 높아진다. 이번 회계부정 사건은 그것 자체가 가지는 중요성은 제쳐 두더라도 CEO가 가져올 수 있는 명암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CEO와 관련한 몇 가지 재미있는 수치를 보자. 미국에서 지난 10년간 일반노동자 임금은 36퍼센트 늘어난 반면 CEO 연봉은 340퍼센트나 올랐다. 지난해 주요 선진국에서 CEO와 평사원간 임금격차는 미국이 34배, 영국이 24배, 프랑스가 15배, 일본이 11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찍부터 피터 드러커는 연봉차이가 가져올 부작용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그는 기업 내 어떤 간부도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보다 스무 배 이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20배 법칙"을 주장했다. 그 차이가 이것을 넘으면 구성원이 기업에 가지는 인내심과 충성심이 급격히 낮아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직원들을 무자비하게 해고하고 얻어진 성과로 자신의 연봉을 높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다른 연구에 의하면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우리 나라 대표기업에서 고용자수가 줄어들수록 주가가 높아지거나 혹은 고용자수가 늘어날수록 주가가 낮아지는 관계가 나타났다고 한다. 이것은 직원을 감축하면 주가가 오른다는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함의는 매우 크다. 많은 기업들이 CEO를 평가하기 위해 주가상승률을 반영하고 있는 상황에서 CEO가 단기적 경영성과를 높이기 위해 해고를 단행할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는 점에서이다.

 어쨌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점점 CEO 혹은 한 명의 개인이 조직의 성패를 결정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따라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CEO일수록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돈을 지불해야 모셔올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영입한 CEO가 도덕적 해이에 빠질지 아니면 만족스런 성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견제장치를 아무리 견고하게 만들더라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음은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회계부정 사건만 보더라도 명백하다. 차라리 조지 소로스가 처방하는 것처럼 CEO가 저지르는 전횡을 막기 위해 도덕률을 세우는 것이 현명한 지도 모른다.

 이제는 우리 나라에서도 히딩크가 성공한 것을 계기로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금전적 대가를 지불하고 최고 CEO 모시기가 활발해질 전망이다.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군가는 영웅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그저 그런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핵심문제는 구성원의 충성심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성공한 CEO가 합당한 대가를 받는 룰을 세우는 것이다. 만약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상관없이 CEO에게 과다한 몫이 주어진다면 그 구성원이 느끼는 박탈감은 매우 클 것이다. 아무튼 지난 6월에 느꼈던 가슴 벅찬 감동과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있는 CEO를 여러 분야에서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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