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 울주군 언양읍을 지나 경주로 가는 국도를 따라 접어들면 첫눈에 들어오는 마을 직동리는 인접해 있는 다개리, 평리와 더불어 울산의 최대 곡창지대라 불릴만큼 너른 들판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신화·신흥리 2개 행정마을로 이뤄져 있는 직동리 들판은 시원할만큼 넓게 펼쳐져 있어 눈만 뜨면 산이 보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직동리 신화·신흥마을은 국도를 따라 양 옆으로 자리한데다 언양읍과 다리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인구가 갈수록 늘어나 각 마을이 두서·두동면의 여느 법정리만큼이나 규모가 크다. 신화·신흥리 자연마을로 나뉘어져 서로 오고감이 별로 없는 각각의 마을로 살고 있다.

 신화마을은 새각단, 관정, 새터, 정거리 등 4개 자연마을로 대부분 살기가 넉넉하다. 특별한 부잣집은 없지만 그렇다고 궁상맞을 만큼 가난한 집도 없다. 새롭게 빛난다는 이름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곳이다.

 새터에 사는 정정화씨(65)는 "새각단이나 새터동네에 이불 한채만 달랑 들고 들어온 사람들이 지금은 다 떵떵거리며 살 정도로 부자로 변해 있다"며 "이름 덕인지 어떤 지는 모르지만 터가 좋은 동네"라고 자랑했다.

 언양읍과 인접해 있는 지리적 이점을 살린 시설채소 하우스나 육묘장들이 10여곳이나 들어서 있다. 운반의 편의성 때문에 국도에서 가까운 곳일수록 하우스가 많다. 그러나 직접 가꾼 채소를 언양장날에 직접 내다 파는 것에 그칠 정도이지 전문적인 대단지를 형성하고 있지는 않다.

 신화리 사람들은 지금 어느 때보다 가슴 부풀어 있다. 국도가 곧 확장되고 마을과 국도를 잇는 2차선 도로가 시원하게 뚫리는 마을의 숙원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윤부기 이장은 "국도가 4차선으로 확장되고 나면 국도변에 위치해 진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새각단에는 5m의 마을길이 확보되기 때문에 그동안 교통사고 위험으로 졸이던 마음을 다소 놓을 수 있을 것"이라며 "관정과 새터동네 진입로까지 마무리 되고 나면 여느 동네 못지않는 반듯한 모습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70년대에 닥친 사라호 태풍이후 마을 규모가 크게 달라졌다. 들판 가운데 흩어져 있던 가구들이 물난리를 겪으면서 위치가 높은 쪽으로 옮겨가면서 새각단과 새터에는 가구수가 크게 불어났고 관정과 정거리는 12가구와 19가구만 남았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새각단은 29가구, 새터는 52가구가 살고 있다.

 새터는 신화리의 중심동네다. 산을 등지고 들판을 내려다 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 동네다. 언양읍네와 인접해 있지만 변변한 음식점이나 중소기업 하나 없을 정도로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도심권과 가까워 교육 등 혜택을 볼 수 있는 점 때문에 노인들뿐인 농촌 현실과는 다르게 젊은 농군들이 꽤 많은 편이다. 기계화를 통한 대규모 영농으로 농촌을 이끌어 가고 있는 미래형 농촌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새터에는 최근들어 부쩍 늘어난 곳이 배 과수원이다. 벼농사로 별 재미를 보지 못하자 정부의 육성시책을 믿고 농지에다 배나무를 심은 것이다. 5년전만해도 꽤 짭짤한 수입을 올렸으나 요즘은 생산과잉으로 신통치 못한 실정이다. 현재 10여가구가 배 과수원을 하고 있다.

 관정은 들판 한 가운데 위치해 있는 동네이면서 채소를 언양장에서 사다먹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이는 곳이다. 온통 논으로 둘러싸여 있다보니 밭이 없다. 그래서 논둑이나 자투리땅에 겨우 상추같은 것을 심을 뿐 고추나 콩 같은 제대로된 밭작물은 심을 곳이 아예없다. 더욱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것은 12가구중 농사를 짓는 곳은 5가구뿐이라는 점이다.

 김정훈씨(63)는 "탁 트인 곳이어서 살기 좋을 것 같지만 겨울철에는 바람이 매섭고 여름에는 모기떼가 극성을 부려 보기와는 다른 곳"이라며 "사정 모르는 이들은 들판을 관정사람들이 다 소유한 부자동네인 줄 안다"고 말했다.

 농경지와 비슷한 높이에 있으면서 마을 앞 뒤로 2개의 물줄기가 고헌산에서 흘러들어 사라호 태풍에 휩쓸린 탓에 물에 대한 공포가 남다르다.

 새각단은 국도에 인접해 고속도로와 사이에 끼인 형상이지만 신기하게도 소음이 전혀 없다. 야트막한 야산이 등뒤로 고속도로를 차단하고 국도는 내려다 보고 있기 때문이다.

 6·25전만해도 초가집이 2~3채 있었을 뿐이었지만 지금은 갈수록 인구가 불어 제법 오롯해졌다.

 새터와 관정, 새각단은 지나 다니거나 교류가 빈번하지만 정거리는 평리 고중마을과 경계가 없을 정도가 가까운 다소 외진 곳이다. 새터나 새각단과는 동네분위기에서부터 다르다. 노인들이 힘닿는데까지 농사를 지을뿐 젊은 사람이라고는 찾기조차 힘들다. 그래서 소꼴을 베오는 사람도 노인이고 논밭에 있는 사람도 모두 노인들이다.

 이구만씨(73)는 "한 사람이 죽으면 한 집이 빌 정도로 노인들뿐이어서 젊다고 해야 환갑"이라며 "주말이나 돼야 아이들 소리가 들릴 정도로 적적한 곳"이라고 말했다.

 노인들은 전원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동네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데에 한몫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사는커녕 본척만척하고 다니는 이방인들이 한가족같은 동네분위기를 깨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못내 못마땅한 것이다. 최석복기자 csb7365@ksilbo.co.kr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