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정부 초기 시절로 기억된다. 세계화에 대한 정의를 두고 많은 전문가들이 밤을 새며 논쟁한 적이 있었다. 개인적 혹은 정치적 성향에 따라 견해 차이가 컸던 것 같은데 당시 논쟁은 세계화를 하나의 트랜드로 이해할 것인가 혹은 국가나 개인이 달성해야 할 전략이나 목표로 해석해야 되는가에 모아졌다. 그런 한가한 시절을 지나 그 정권 말기에 경제위기가 닥쳐왔을 때 세계화는 물론 글로벌 네트워크에 동참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서는 모두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

 세계은행이 올해 초 펴낸 "세계화, 성장 그리고 빈곤"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세계화 정도와 소득(빈곤)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이 연구는 어떤 나라가 세계경제에 통합되는 정도가 커질수록 경제 성장률이 높아지고, 이것이 전 국민에게 확산되기 때문에 빈곤을 줄인다는 논리를 실증하고 있다. 개발도상국 50억 인구 중 세계화에 동참한 30억은 20세기의 마지막 10년 동안 1인당 소득이 매년 5퍼센트(같은 기간 선진국은 2퍼센트) 성장했고, 극빈층(하루 소득이 1달러 미만)수도 1억 2천만 명이 줄어든 반면, 이 길에 동참하지 못한 나머지 20억은 소득이 줄어들고 빈곤이 심화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한다. 세계화에 적극 동참한 우등생도 선보이는데 우간다, 인도, 베트남 그리고 중국이 바로 그 나라이다.

 이 연구처럼 진정 세계화가 긍정적 결과만을 가져왔는지는 많은 논쟁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세계화로 생성된 글로벌 네트워크에 편입되는 정도가 커질수록 소득은 높아진다는 논리는 타당해 보인다. 이 논리를 우리들의 일상 직업 생활에 적용하면 그 그림은 대강 이렇다. 글로벌 네트워크 편입 정도가 크고 그 속에서 핵심기능인 연구개발·기획·평가 업무를 담당하는 개인은 이전보다 높은 소득을 얻을 수 있다. 현재 고소득을 올리고 있는 대기업 혹은 유망 벤처기업 CEO, 금융 및 부동산 분석가, IT 분야 연구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세계화의 덫"을 쓴 한스 피터 마르틴이 말하는 20퍼센트가 이들이라면 나머지 80퍼센트는 지난 시기 중산층 자리를 유지했던 일반기업의 사무직 및 생산직 노동자와 서비스업 종사자이다. 이들은 세계화가 몰고 온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펼쳐진 리스트럭처링 구호에 떠밀려 그 대열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고, 오직 갈 수 있는 길은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벗어나 낮은 임금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내수 업종이나 서비스업이다.

 실제 우리 나라에서 시장 개방으로 표현되는 글로벌 네트워크 진입이 개인과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유통산업이다. 시장 개방 이전에 온 가족이 슈퍼마켓을 운영하며 중산층 생활을 누리던 사람들은 단 5년만에 월마트, 까르푸, 테스코 등 유통 공룡에 의해 이 영역을 거의 빼앗겨 버렸고 전반적으로 생활수준 하락을 겪었다. 이와는 상반되게 대형할인점에 소속되어 핵심 기능을 수행한 사람들은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산업 측면에서는 중소형 유통업체가 붕괴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최근 정부는 의료, 법률, 교육, 영화 시장을 조만간 개방하겠다고 한다. 영화를 제외하면 이 상품은 국지성과 전문성이 높은 특징 때문에 외국인이 진입하기 어렵고 여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고소득을 누리고 있다는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이 분야가 개방된 후 어떤 결과가 있을 지는 예단 하기는 힘들다. 앞의 논리를 적용하면 대강의 전망은 그릴 수 있다. 이 분야가 글로벌 네트워크에 편입되면 될수록 전체 파이 중 우리 나라 사람이 갖던 몫은 줄어들고, 줄어든 몫의 배분도 개인간에 양극화되어 좋은 직업을 갖고도 낮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을 주변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어느 분야든 글로벌 네트워크 경쟁을 벗어나는 산업이나 직업은 찾기 힘들 것이다. 결국 앞으로 우리가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는 내가 어떤 직업을 갖는가보다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가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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