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전국에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실시되었다. 29.6% 라는 사상 최저 수준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과거의 4대 지방 선거보다도 낮은 투표율이었다.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은 개인적으로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겠지만 집단적으로는 아주 큰 정치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낮은 투표율을 유권자들의 정치적 무관심 또는 정치 혐오증의 반영이라고 단정할 수 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낮은 투표율을 바라보면서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회의가 우리 모두에게 가져올 문제에 대해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정치에 대한 관심은 먼저 우리의 권리의식을 고양시킨다. 우리의 권리가 그저 주어질 수는 없다. 예링이 말한 것처럼 권리는 단순한 이념이 아니라 살아 생동하는 힘인 것이다. 둘째, 정치적 관심은 우리 삶을 보다 더 자유롭게 만들 것이다. 우리 자신의 삶과 사회를 구조화하는 것이 바로 정치이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구조적 조건을 정확히 인식하고 부당한 현실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확고한 정치의식이 필요하다.

 현대사회란 모든 분야, 모든 차원의 의사 결정들이 정치로 종합·귀결되는 사회이다. 자기의 생활과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 바로 정치이며 정치에 대한 무감각과 체념은 우리 삶과 사회를 파탄으로 이끌 수 있다. 거짓말의 난무, 부정과 부패, 개혁과 민생법안의 처리 지연, 이기적인 정쟁 등은 많은 이들에게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혐오증까지도 느끼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에 대한 회의를 둘러싼 원인을 우리 밖에서 찾을게 아니라 우리 안에서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는 과연 정치에 대하여 얼마만큼 올바른 인식과 정확한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한번쯤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우리는 정치를 몇 해에 한 번씩 있는 투표나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정치는 우리 모두가 민주사회의 운명을 결정짓는 주체라는 인식과 그에 따른 적극적 행위를 요구한다. 또한 큰 이슈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현실 속에서의 작은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관심도 요구된다. 둘째, 우리는 정치를 정치가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는가. 혹자는 이를 정치적 분업주의로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인 시민들을 소극적 또는 단지 계도되어야 될 객체로만 전락시킬 수 있다. 그리고 시민들의 사회와 정치에 대한 무책임성을 낳게 하고 무감각한 체념에 빠지게 한다.

셋째, 우리는 정치현상을 도덕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지 않는가. 정치가의 부도덕을 볼 때 회의를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살펴보면 정치는 도덕이 아니라 현실이다. 정치란 각 이익집단 계층의 이익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대립하는 투쟁의 장이다. 한편으로는 대립하는 세력들을 통합하는 작용을 동시에 가지는 야누스적인 측면이 있다. 인간들의 갈등을 조화시키고 질서를 조직화해 나가는 정치를 도덕적 관점에서만 바라 볼 수는 없다. 우리는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할 필요가 있다. 넷째, 우리가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너무 세상에 대한 한탄과 짜증 그리고 체념으로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정치에는 열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열정이 삶을 개선시키려는 과학적 정신과 결합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현상은 우리를 지치게 만들 것이다.

 우리는 정치행위 또는 정치에 대한 관심이 최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선을 확보하려는 점진적 노력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노력이 책임감과 열정, 삶을 개선시키려는 과학적 정신과 균형을 이룰 때 가능하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상식이 통용되고 합리적 틀에 의해 운용되는 정치란 의식있는 시민들의 성숙된 자세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할 때 정치과정의 개혁이 합리적 국가의 발전이라는 방향으로 이루어 질 것이다. 우리의 정치적 관심이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 밑바탕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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