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이 현대자동차를 품고 산다는 것은
누가 뭐래도 울산시민의 은총이요 축복

자동차 전쟁은 얼마나 무서운가. 패전은 얼마나 비참한가. 자동차전쟁의 역사에서 1980년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20세기 초부터 자동차생산왕국의 자리를 확고하게 지켜온 미국이 일본의 대공세에 밀려 패퇴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일본에게 왕좌를 넘겨준 것이 바로 그해였다.

휘청거리는 자동차산업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닐 골드 슈미트 운수장관이 1년간의 작업 끝에 자동차산업 실태조사보고서를 완성시켜 레이건 대통령에게 제출한다. "자동차산업은 미국 제조업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미국국민의 일자리 6개중 한 개는 자동차와 관련된 것이다. 이 산업은 우리경제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자동차산업은 국내 철강생산의 21%, 합성고무의 60%, 알미늄의 11%, 주물의 30%, 유리의 25%, 공작기계의 20%, 그리고 플라스틱과 전자산업제품의 상당부분을 사용한다. 또한 석유제품의 34%가 자동차에 쓰인다. 자동차산업은 고용과 국가안보에 중심역할을 수행해 왔다" 이어 보고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시책을 제시한다.

80년대의 10년간 미국 자동차회사들은 혹독한 구조조정과 일본식경영(린 생산방식)에 대한 학습으로 재무장, 실지회복을 외치며 반격에 나선다. 1994년 미국은 천신만고 끝에 자동차생산 1위의 고지를 탈환한다. 혼다의 명차 아코드가 미국 안방 시장에서 베스트셀러 카의 자리를 3년 연속 차지하다가 포드의 토러스에게 밀려난 것도 90년대 초반의 일이었다.

전세의 역전과 더불어 일본업계의 비틀거림이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무렵. 일본경제의 장기불황과 맞물려 극심한 경영난에 빠진 닛산, 닛산 디젤, 마쓰다, 미쓰비시자동차, 후지중공업등 유력 메이커들이 미국과 유럽회사들에게 팔려 나갔다.

세기말을 강타한 세계자동차산업의 지각변동은 특히 한국과 일본의 업계판도를 크게 뒤바꾸어 놓았다. 한국에서는 대우, 기아, 아시아, 쌍용, 삼성자동차 등 현대자동차를 뺀 메이커들 모두가 엄청난 홍역을 치러야 했다. 6년전 대우자동차가 존폐의 위기에 몰렸을 때 상당수의 인천시민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아직도 필자의 기억에 진하게 남아 있다. 멈춘 공장의 담 너머 식당들은 대부분 파리를 날리고 있었다. 우리들의 고장 울산이 다름 아닌 현대자동차를 품고 산다는 것은 누가 뭐래도 울산시민의 은총이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 은총, 그 축복을 지키는 것은 수혜자인 울산시민 모두의 몫이다. 얼마안가 대우버스 공장이 우리 고장에서 가동되면 울산은 자동차산업 중심도시의 면모를 한층 충실하게 갖추게 된다. 우리나라 지방도시들이 예외 없이 가지고 싶어 하는 업종이 자동차산업이다. 대우버스의 경우에도 부산시는 계속 부산에 남기를 원했고 경상남도는 도내로 오라고 간절히 손짓했다는 후문이다.

주력산업의 번창 없이 지역경제의 지속적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내 고장의 주요회사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늘 주시하고 그 안에서 수고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때로는 충고와 채찍질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세계시장의 격전지에서 값비싼 전과를 올릴 때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자. 노사분쟁이 격렬해지고 길어지면 함께 걱정하고 해법의 궁리에 머리를 맞대자. 내 고장 산업을 아끼고 북돋우는 시민의식이 뜨거울수록 지역경제의 토대는 그만큼 탄탄해진다.

이 종 대 전 대우자동차 회장

(그 옛날 울산토박이들은 태화강을 '태홧강'이라고 발음합니다. 맑고 아름다웠던 그 '태홧강'은 울산사람들에게 마음의 고향입니다.

칼럼 '태홧강'은 울산을 떠나 다른 도시에 살면서도 가슴 한켠에 울산을 품고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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