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이 미군궤도차량에 의해 여중생 2명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하여 한국당국의 재판권이양 요청을 거부한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사태의 원만한 해결도 되지 않았고, 한국민의 반미감정만 악화시킨 모양이 됐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의 상호필요에 의해 주둔하고 있는 미군에 의한 범행에 대하여 재판권이양문제로 반미감정을 촉발되는 것은 양국의 국익 차원에서 보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전쟁 때 미군은 유엔군의 일원으로 한국을 지켜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전쟁이 끝난 후 1953년 10월 1일 한미양국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여 동맹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으며, 아직도 주한미군은 한미연합방위체제하에서 한국안보의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고 잇다.

 그런데 최근 여중생사망사건을 계기로 흔히 "행정협정"으로 알려진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STATUS OF FORCES AGREEMENT)을 다시 개정하여야 한다는 논란이 일게 되었다. 이 SOFA는 주한미군의 법적지위를 규정하는 것으로서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근거를 두고 있다. 특히 1991년 2월에 상호주의 원칙하에 일부 내용을 개정하였으나 합의의사록과 개정 양해사항 등 2개의 부속문서가 본협정의 효력을 크게 제한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불평등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미 양국은 1995년 11월부터 약 1년간 7차례의 SOFA 개정협상을 가졌는데도 양측의 입장이 좁아지지 않았으나, 매카시상병사건 등 잇따른 일부 주한미군의 한국인에 대한 강력범죄가 발생으로 반미여론이 비등해 지고, 미군 쿠니사격장소음과 관련한 매향리 주민들의 사격장이전요구 등 한국 국민의 권리의식이 과거와는 분명히 다른 양상을 보이자 2000년 8월에 협상을 재개하여 2001년 1월 18일 SOFA를 새로 개정하게 되었다.

 이번 여중생사망사건과 관련하여 제기되고 있는 것은 "공무집행 중"의 미군범죄에 대한 재판권문제다. SOFA는 각 국에만 처벌규정이 있는 범죄나 안전에 관한 범죄는 각 국이 전속적으로 재판권을 행사하고, 미국재산이나 안전에 대한 범죄와 주한미군 구성원간의 범죄, 공무집행중 행해진 범죄에 대하여는 미군이 1차적으로 재판권을 갖는 반면 그 외의 범죄는 한국이 1차적으로 재판권을 갖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사항은 2001년 1월 18일 개정에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미군이 한국당국의 여중생사망사건에 대한 재판권이양요청을 거부한 것은 현행 SOFA규정상으론 하자가 없다.

 하지만 여중생 사망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미군측이 유가족 및 시민단체들에 대해 무성의하고 고압적인 자세를 보임으로 인하여 미국이 한국의 주권과 재판제도를 무시하고 불신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여론을 불러 일으킨 점을 감안하면, 미군측이 공무집행 중 사건에 관한 한 재판권을 이양한 전례가 없다는 점을 들어 거부한 것은 양국의 선린·우호관계를 고려하지 않는 소아적 발상이다. 필요하고 또 부당하지 않는 한국당국의 입장을 고려하여 전례를 만들어야 하는 지혜를 보였어야 한다. 더구나 SOFA에 의하면 미군은 한국이 1차적으로 재판권을 가지는 경우에도 재판권포기를 요청할 수 있는 반면 한국은 그러한 요청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어 잇지 않고, 공무여부판정은 일방적으로 미군주무당국에 있음에 비추어 볼 때 이 조항의 부당을 지적하며 개정하자는 여론이 있기 전에 미군은 한국당국의 입장을 고려한 양보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한국군이 독자적 방위력을 구축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한미군의 역할을 폄하할 수만은 없다. 또 SOFA를 개정한지 몇년되지도 않은 시점에 재차 개정협상을 요청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주둔은 단지 한국방위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동북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이익과도 관련되어 있을 것이며, 반면 한국의 민주주의가 과거와는 다르게 매우 발전되어 있고 재판제도 또한 피고인의 권익을 충분히 보장될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음을 인식한다면 양국간의 미묘한 문제가 더이상 반미의 빌미거리로 되지 않도록 하는 양당국간의 양보와 타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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