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속에서 언제나 맑고 빛나는 강
후손에게도 동심의 놀이터 됐으면

얼마 전 태화강에서 수영 대회를 했는데, 물고기가 너무 많아 기록을 내는 것은 고사하고 수영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고향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울산 한복판을 흐르는 태화강이 수영대회를 개최하고 은어나 황어 같은 맑은 물에서만 살 수 있는 물고기가 돌아올 만큼 깨끗해졌다는 것을 자랑한 친구의 재기 넘치는 농담에 정말 기분이 좋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공장과 차들이 내뿜던 공해로 삼산들의 벼가 누렇게 말라 죽고 대현지역의 과수원 배나무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던 것을 생각하면 금석지감을 금할 수 없다.

태화강은 울산 시가지 중심을 흐르는 강으로 시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으나, 내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회야강에 대해서는 그리 많이 알려져 있는 것 같지 않다. 회야강은 양산시 웅상읍 원효산 기슭에서 발원하여 웅촌면, 청량면, 온양읍, 온산읍을 거쳐 동해로 흘러드는 길이 43.5 ㎞의 강이다. 강 중류에 1980년대 중반 시민들의 식수원으로 건설된 회야댐이 있는데, 댐 주변의 도로는 왕래하는 차량이 적은데다 오르막 내리막에 경치가 좋아, 특히 마라톤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신리마을은 지금 회야댐 물속에 잠겨있다. 원래 80여 호가 살던 작은 동리였는데 회야댐 건설로 마을 전체가 물속에 잠기고 말았다. 마을회관과 청량면사무소 청사를 사비로 지어 희사하신 선친께서 주민들의 오랜 숙원에 따라 건설한 현대식 교량 '철석교'도 마을과 운명을 같이 했다. 정든 마을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살던 고향을 떠나 뿔뿔이 흩어져 지금은 만날 기회가 거의 없고, 세월이 지남에 따라 점점 잊혀져 안타깝기만 하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지금같이 놀이터나 장난감이 많지 않았다. 대신 주변 자연이 모두 놀이터였다. 특히 회야강은 여름이면 멱감고 물놀이하며, 겨울이면 얼음 지치고 썰매 타던 최고의 놀이터였다. 그 당시 회야강은 참 깨끗했다. 수정처럼 맑은 물속에는 참게, 피라미, 은어, 민물장어, 기름쟁이 같은 물고기가 지천으로 많았다. 물이 너무 깨끗해 목이 마르면 강물을 그대로 마시곤 했다. 지금도 고향을 생각하면 친구들과 함께 뛰놀던 회야강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회야댐이 만들어 지기 전에 고향을 떠난 내게 회야강은 언제나 동심처럼 맑고 깨끗한 추억의 강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류지역에 많은 공장과 아파트 단지가 들어섬에 따라 예전에 비해 수량도 줄고 수질도 많이 나빠진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가끔씩 들려오는 난개발과 그에 따른 환경 오염 소식은 나를 우울하게 한다. 오염된 환경은 하루 아침에 복원되지 않는다. 당장의 편리함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면 우리 후손들이 오랜 기간 그 대가를 치러야 할 지도 모른다. 지방자치 4기를 맞은 울산이 수질 개선이나 대기 오염방지 등 쾌적한 환경 조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 기업체의 공해방지시설 투자도 늘었고 경영자와 지역 주민들의 환경의식도 많이 발전되었다. 태화강 수영대회는 이러한 노력들의 결실인 것이다.

나는 지금도 어릴 적 생각이 간절할 때면 가끔 고향 마을을 찾는다. 내가 살던 마을이 있던 회야강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의 추억에 잠기곤 한다. 친구들과 물장구 치고 놀던 그 깨끗했던 회야강의 아름다운 기억을 우리 후손들도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양 승 만 건국대 초빙교수 경제학 박사·서울

그 옛날 울산토박이들은 태화강을 '태홧강'이라고 발음합니다. 맑고 아름다웠던 그 '태홧강'은 울산사람들에게 마음의 고향입니다.

칼럼 '태홧강'은 울산을 떠나 다른 도시에 살면서도 가슴 한켠에 울산을 품고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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