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시에서 지역 산업을 진흥하기 위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고 있는 것은 오토밸리 사업이다.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 이것의 규모와 청사진에 대해 들었을 것이다. 거의 모든 지방자치단체들이 이와 비슷하게 하나 혹은 몇 개의 산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구의 밀라노 프로젝트, 부산의 신발산업 육성, 경상남도의 기계산업 진흥 및 광주의 광(光)산업 육성이 그 예다. 이것은 산업자원부가 지역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지역산업진흥사업"이다.

 지역 경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여기에 열거한 사업을 보고 공통점을 이해하고 나서 약간의 의문을 품을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이 해당 지역에 집중된 산업을 육성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대구와 부산은 이미 사양길에 접어든 섬유와 신발산업에 그렇게 집착하는 것일까? 그 해답은 이 사업이 추진된 이유, 과정 및 지방정부의 권한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만 풀 수 있다.

 이 사업은 외환위기 이후 어려움을 겪던 대구가 섬유산업 육성을 명목으로 밀라노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국비 지원을 요청하면서 시작되었다. 이것이 전격적으로 "국민의 정부"에 의해 채택되자 부산, 경상남도, 광주가 곧바로 지역 산업을 육성하겠다며 자금을 요청하게 되고 산업자원부는 이를 모두 받아들였다. 여기서 이 사업이 끝났다면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이 불만은 있었겠지만 "나눠먹기" 라는 혹평은 듣지 않았을 것이다. 그 후 여기서 제외된 울산을 비롯한 나머지 지방자치단체들이 너도나도 특정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나서자 산업자원부는 이를 뿌리칠 어떤 논리도 없었다. 물론 오토밸리 사업도 여기서 생겨났다. 그 후편도 있는데 처음 자금을 지원 받은 4개 지역이 다시 "새로운 산업 육성"을 이유로 추가 자금 지원을 받았다.

 이제 지방자치단체들이 비슷한 사업을 추진하는 이유는 이해될 것이다. 그러면 앞서의 질문, "왜 부산과 대구는 사양산업에 집착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할 차례이다. 현재 산업 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부처는 중앙정부에 많이 있다. 정보통신산업은 정보통신부가, 항만산업은 해양수산부가, 농업은 농림부가 그리고 나머지 산업은 대부분 산업자원부가 맡고 있다. 따라서 산업자원부에서 국고보조금 형태로 자금을 지원 받기 위해서는 이 부처에서 맡고 있는 사업 혹은 산업 육성을 위한 명분이어야 한다. 따라서 대구가 산업자원부에서 많은 돈을 지원 받기 위해서는 다른 지역보다 집중도가 높은 섬유 산업을 육성한다는 명분으로 타당성이 떨어지는 사업들을 이것저것 내세울 수밖에 없다. 부산도 마찬가지 논리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같이 진행되고 있는 산업 정책이 가지는 문제점은 너무나 많다. 첫째, 자원배분 왜곡으로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의 자금 지원 요건을 맞추는데 급급하여 국가 혹은 지역 차원에서 구조조정이 필요한 산업 혹은 사양산업에 자원이 배분되는 경우가 흔히 발생하고 있다. 둘째, 지방정부의 기획 및 구상능력 향상을 지연시킨다. 지방은 중앙정부의 가이드 라인에 따라 자금을 집행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책의 자율성 확보에서 가장 중요한 "두뇌"를 키우는 게 힘들어 진다. 셋째, 지방자치단체 사이에 쓸데없는 경쟁을 유발시킨다. 시장경제에서 경쟁은 효율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는 중앙정부 자금을 조금이나마 더 따내기 위해 권력을 동원하는 등 과열경쟁을 벌일 수 있고 결국 정치논리가 경제를 결정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이같은 비효율을 없애는 방법은 간단하다. 지역이 산업 정책을 자율적으로 기획하고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총액 기준으로 자금을 배분하면 된다. 그러면 지방정부는 산업 혹은 사업별로 최적으로 자원을 배분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다.

 조만간 울산광역시를 비롯한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산업 정책을 총괄하는 조직을 만든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를 계기로 중앙정부가 산업 정책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그에 따르는 권한을 지방정부로 완전히 이양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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