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호주여행을 다녀왔다. 10일간 이곳 저곳을 돌아보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운 여행이었다. 여행에서 일상으로 돌아와 정신없이 지내던 중 우연히 펼친 잡지에서 '선하나로'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광고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지구반대편 시드니에서 공연한 1년간의 오페라 영상을 가정에서 1초 내에 전송받아 볼 수 있는 ○○○' 라는 광고카피였다. 다른 때 같으면 '응, 시드니'라고 그냥 무심히 넘겼을텐데 그 이름이 그곳을 안다는, 가봤다는 의미에서일까. 그 지역명이 아주 가깝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10여일동안의 머묾 속에서 알고 있음의 의미가 각인되었음일게다.

사람이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알게 된다는 것은 마음속에 그 사람이 지문으로 남게 됨을 의미한다고 했다. 때론 아무 지문도 남기지 못하고 잊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연히 만났던 사람이 잊혀지지 않고 남아있기도 한다. 또한 단 한번 만났을 뿐임에도 우리의 뇌속에 들어있는 창의력, 논리력, 현장적응력 등 3가지 우수한 능력으로 인해 생각의 상자속에 고이 접혀있다가 때때로 튀어나와 감동을 주기도 하고 힘을 주기도 한다.

울산은 내게 있어 머릿속에 남아 있는 크나큰 지문이다. YMCA시민중계실을 통해 젊음의 반을 쏟아부으며 보낸 울산, 그렇게 정이 든 울산을 떠나와서 서울에서 생활한지 벌써 10년이 다됐다. 한때는 울산이란 단어만 들어도 표현할 수 없는 반가움으로 인해 눈물이 왈칵 쏟아질 때도 있었다. 보고싶을 때마다 꺼내보는 '보고싶은 나무'라고 이름지은 나무의 가지마다 가득가득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들을 걸치며 무지개를 그려넣어보기도 했었다.

대숲이 아름다운 태화강, 무뚝뚝한 것 같지만 정 많고 사랑 많은 울산사람들의 지문은 아직도 가슴 속에 남아 있다. 방송을 보다가도 울산이란 단어만 나오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혹시 나쁜 일이 방송되면 저걸 어쩌나 싶어 안타깝기 그지없고, 좋은 일이 나올 때면 어디에 자랑이라도 하고 싶어진다. 요즘은 그리 나쁜 뉴스가 많지는 않지만 한 때 울산에서 올라오는 소식이면 무조건 나쁜 뉴스였던 적이 있었다. 심각한 공해가 1순위이고, 그 다음이 파업투쟁이 차지하지 않았나 싶다. 이런 이유로 상당수 서울 사람들은 울산이 사람이 살만한 곳이 못되는 줄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고, 얼마나 아름답고 살기좋은 도시인가를 침을 튀겨가며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하지만 겨우 설득될 만하면 다시 터져나오는 뉴스는 사람을 민망하게 하곤 했다.

그나마 최근 들어서는 '공해도시'라는 뉴스는 거의 사라져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사실상 체감하기로도 서울보다 울산이 훨씬 공기가 좋다. 울산은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 보다 훨씬 아름다운 도시라는 사실은 울산에서 살아본 사람은 안다. 그러니 홍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늘 뉴스를 통해 알려지는 울산이 아니라 색다른 홍보방법을 찾아 울산이 다시 알려지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울산은 곧 그리움'이란 지문으로 각인되어 있는, 지금은 다른 도시에서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큰 즐거움이 될 것이다.

'선 하나로…' 대한민국의 위쪽 서울에서 그리운 이름의 아름다운 지문, 사랑과 정이란 이름으로 각인시켜 제2의 고향 울산 사람들에게 1초내에 전송하고 싶다.

표혜령 화장실문화시민연대 상임대표·서울

(그 옛날 울산토박이들은 태화강을 '태홧강'이라고 발음합니다. 맑고 아름다웠던 그 '태홧강'은 울산사람들에게 마음의 고향입니다. 칼럼 '태홧강'은 울산을 떠나 다른 도시에 살면서도 가슴 한켠에 울산을 품고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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