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려는 것이 과학이라고 한다면 설명 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한 것이 예술이다. 설명해서는 안 되는 것을 설명하려고 한 것이 종교다." 책에서 읽은 내용이다.

 정혜사지 십삼층석탑은 과학이다. 예술이다. 그리고 종교의 자유로움이다. 신라 석공은 과학적인 비례와 눈높이를 맞출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탁월한 예술가의 감성으로 탑을 세웠다. 종교의 깊이를 완성도 높은 탑 하나 세워 명쾌한 설명을 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정혜사지 탑을 보러 가지고 조른다. 마치 우리 집 마당에 서 있는 탑을 보여 주듯 신나게 안내를 한다. 멀리서 온 사람은 물론 가까운 이들에게 이 탑을 보러 가지고 은근히 압력을 넣기도 한다. 제일 큰 피해자는 역시 남편이다. 하지만 그도 수시로 찾아가는 이 단아한 탑을 몹시 마음에 들어한다.

 아이들은 "이상하다"라고 첫 인상을 말하고 어른들은 "멋있다"라고 한다. 이상하다와 멋있다는 경배와 미적 감각이 적절히 조화된 표현이다.

 정혜사지 십삼층석탑은 이형 석탑이다. 삼층석탑이나 오층석탑을 보고 한번도 "재미있다"라고 표현하지 않던 아들 녀석은 이 탑을 처음 대하던 초등학교 때 몇 번이나 "와! 멋있다"를 외쳤다.

 아이들 눈에 재미있는 탑을 보러 가는 길도 즐겁다. 탑이 있는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마을에는 조선시대 대 학자인 회재 이언적 선생을 배향하는 옥산서원이 있다. 계곡과 잘 어우러진 서원에는 추사와 이산해, 한석봉의 글씨로 된 현판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회재 선생이 별당과 서재로 쓰면서 거처한 독락당이 계곡을 끼고 있다. 독락당의 계정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그림처럼 다가와 안긴다. 회재는 소년 시절부터 정혜사에서 공부를 했고 벼슬길에서 물러난 후에도 이곳 스님들과 교류를 하였다.

 국보 제 40호인 정혜사지 십삼층석탑을 찾아가면 오래 머물게 된다. 1834년 화재로 절은 불타 없어졌지만 탑은 그 자리에 사랑스런 모습으로 남아 뭇사람을 맞고 있다.

우리는 절터의 넓은 풀밭에서 준비 해 간 차도 마시고 계곡의 맑은 물에 씻은 과일도 먹는다. 반나절쯤 휴식을 취한다. 아이들이 뛰어 놀 동안 탑을 둘러싼 은행나무 그늘에 앉아 신라인의 세련된 미감을 부러워하며 오래 이야기도 나눈다.

 안개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좀 먼 길을 달려 혼자 탑을 보러 간다. 물기 머금은 탑은 무량한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비에 젖은 풀밭에 홀로 서서 바라보는 탑은 여럿이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독락당"이라 이름지은 회재 선생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그렇다 "독락"이란 말이 좋아 혼자 정혜사지 탑을 찾아간다.

 막돌을 놓고 나지막하게 흙을 쌓아 기단을 만든 것부터가 기존의 탑과 형식이 사뭇 다르다. 흙이 주는 안온함이 정혜사지 탑의 또 다른 매력이다. 통일 신라 석탑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형태의 탑으로 인도탑 스투파를 닮았다.

 13층이란 층수도 그러하지만 양식이나 조성방법도 모두 규격을 벗어나 파격을 보여준다. 1층 탑신부 네 면에 모두 감실이 개설되어 있는 것도 이 탑의 특징이다. 내부는 석재로 채워져 있지만 탑을 볼 때마다 그 속에 부처를 향한 마음을 채우고 싶다. 아이들은 꽃을 따다 놓기도 하고 벌레를 잡아다 감실에 올려놓기도 한다. 그 안에 누군가의 이름도 들어 있다. 아마 부처가 되고 싶은 사람일 것이다.

 1층 몸돌은 크고 높다. 지붕돌 또한 시원스럽게 넓고 단정하다. 그러나 2층부터는 급격한 체감율을 보인다.

 2층이상은 몸돌과 지붕돌이 한 장으로 조성되었다. 몸돌의 높이가 아주 낮아 마치 지붕돌만 차곡차곡 포개 놓은 듯 하다. 1층처럼 크게만 고집했더라면 13층이란 탑은 쌓지 못했을 것이다. 탑이든 집이든 주변과 어울려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답고 당당하다. 13층이지만 높이는 5.9m에 지나지 않아 예쁘다는 말이 어울린다.

 이 탑을 세우던 9세기 초는 신라 석탑의 획일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화와 양식을 추구하던 시기였을 것이다. 정형화된 것을 거부하고 번득이는 예술 정신으로 창조적인 변화를 추구한 신라 석공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정혜사지 십삼층석탑의 파격이야말로 설명해서는 안되는 종교를 가장 명료하게 설명하여 보여준 불법의 세계다.

 〈주변 볼거리〉

정혜사지 십삼층석탑을 보러 가기 전에 꼭 들릴 곳은 양동 민속마을이다.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양반 마을이다.

이 마을은 유가의 법도와 선비의 기품으로 5백년을 다져 오면서 많은 문화재를 조성해 놓았다.

 오늘의 "양동 전통 마을"을 있게 한 데 많은 영향을 끼친 분은 월성손씨 손소(1433~1484)공과 여강이씨 문원공 회재 이언적(1491~1553)선생이다.

 손, 이 두 씨족은 500년을 한 마을에 함께 살아오면서 조상들이 이룩해 놓은 훌륭한 미풍 양속을 계승하는 가운데 문화 유산을 잘 보전하여 왔다.

 보물로 지정된 건물 3채를 비롯하여 중요민속자료 13점, 경북도 지정 유형문화재, 향토문화재등 이 많다. 규모나 질에 있어 우리의 전통 가옥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한국 고 건축물의 보고다.

 정혜사지 탑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나원리 오층석탑(국보 제 39호)을 찾아가면 좋다. 경주시 현곡동 나원리에 있는 신라 팔괴의 하나로 알려진 나원리 오층석탑은 듬직한 위엄을 보여준다. 순백의 빛깔로 백탑이라고도 한다. 정혜사지 13층석탑과 비교 해 볼 수 있는 탑이다.

 〈찾아가는 길〉

울산에서 7번 국도를 따라 경주를 지나 포항 쪽으로 가다보면 강동교가 나온다. 이 다리를 지나면 바로 강동 IC가 되고 영천으로 가는 28번 국도로 연결된다. 다리에서 1km정도 가면 양동마을로 들어가는 표지판이 크게 보인다. 그곳에서 오른쪽 마을로 난 길을 따라 1.2km 들어가면 양동민속마을이다.

 양동마을에서 다시 28번 국도로 나와 영천 방향으로 향한다. 왼쪽으로 안강읍을 지나고 풍산금속 안강공장을 지나면 옥산서원이란 큰 도로표지판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옥산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2.5km 가면 옥산서원이 있고 이어 독락당이다. 독락당 뒤쪽 마을길을 따라가면 왼쪽에 정혜사지 13층석탑이 보인다. 독락당 앞에 주차 할 수 있다.

 돌아오는 길은 안강읍에서 경주로 오는 925번 지방도로를 택한다. 안강읍에서 경주로 가는 길에 나원역이 있다. 나원역을 지나 오른쪽으로 철길을 건너면 마을길이 나온다. 마을길을 가다 왼쪽 산기슭을 보면 나원리 오층석탑이 늠름하게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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