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를 다녀온 뒤 휴가 후유증을 앓는 직장인이 상당수라고 한다. 모든 일에 의욕이 생기지 않고 육체적 피곤을 쉽게 느끼는 무기력증에다 밤에 잠을 설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입술주위가 자꾸 헐고 소화도 안되며 하는 일마다 짜증스럽다고 푸념한다. 한마디로 이제 희망이나 기대할 것이 없다는 얘기로 귀결된다. 1년을 기다려 온 휴가를 알차게 보낸 경우에야 다르겠지만 휴가기간 내내 장마비로 꼼짝달싹 못하고 소위 "방콕"신세를 면치 못한 경우에는 증세가 더 심할듯 하다.

 이들은 하루종일 집안에 틀어박혀 있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휴가가 부담스럽게 되고 "노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증폭돼 불안감마저 들더라고 얘기한다. 더구나 평소에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거의 없던 직장인들은 부부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상대를 간섭하게 되고 자기중심에 익숙해진 생활방식을 고집하다 서로의 존재를 못마땅하게 여기게 되면서 부부갈등마저 생겼다고 털어 놓는다. 일상에서 탈피해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고 휴식을 취하며 생활의 활력을 재충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휴가가 이 지경이 되면 쉬는 것 자체가 지겹다거나 괴로운 일이 되고 만다.

 휴가는 또 그렇다 치자. 내달이면 정부가 토요휴무제(주5일근무제) 도입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안에 재계와 노동계가 서로 유리한 내용을 반영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양대 노총은 조속한 주5일제 입법과 실시를 주장하고 있는 반면 경제단체는 시행시기를 1년이상 늦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쟁점이 어찌됐든 토요휴무제를 시행하는 사업장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최근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정부가 주5일근무제 도입을 추진하지 않거나 실패하더라도 주5일근무제는 계속 확산될 것이란 응답이 12.6%, 서서히 확산될 것이라는 응답은 70.1%에 달해 대부분이 이미 주5일근무제 도입을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행업체들은 벌써 해외여행객들이 더욱 늘어날 것에 대비해 기획상품을 개발하고 현장 가이드 모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레저관련 업체들도 캠프, 사교모임 등 오락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레크레이션 지도자 확보에 나서고 있다. 또 외식업체가 우후죽순 늘어나고 테마형 펜션(고급 민박)이나 전원주택, 농가주택, 주말농장 등의 개발 붐이 일고 콘도나 골프회원권 분양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그러나 주5일제 근무도입으로 예상되는 삶의질 향상이라든가 여가산업발전, 노동생산성 향상, 새 일자리 발생 등의 순기능에 대한 기대효과도 크지만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경우에는 다르겠지만 서민들은 "돈안드는 여가" 즐기기가 그리 쉽지 않다. 처음에야 가족과 함께 여행도 하고 외식도 하며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일들을 찾아 나서겠지만 차츰 경제적 현실과의 괴리감에 빠져들 수 있다. 소득은 그대로인데 지출만 늘어나는 것에 대한 부담이나 주말만 되면 가족과 나들이를 해야한다는 압박감에 짓눌릴 수도 있다. 결국 집에서 잠을 자거나 TV나 인터넷에 몰입하거나 아니면 빈둥대다가 스트레스만 받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또 각 사업장별 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도 우려된다. 물론 이런 부정적인 요소는 놀거리가 없고 놀이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주위 여건 탓으로 돌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휴가나 휴일에 대한 고정관념부터 고치지 않은 이상 이런 상황은 되풀이 될 수 밖에 없다.

 이제 주5일근무제가 대세임은 입댈 여지가 없다. 따라서 경제적인 면에서만 단편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삶의질"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접근해 나름대로의 준비가 필요하다. 정책 및 행정적으로는 생활주변의 산책로나 소공원 등 작은 곳에서부터 휴식의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우선적으로 지원돼야 하며 개인은 여가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자기계발의 시간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더불어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취미생활 등 다양한 "여가 레퍼토리"를 나름대로 찾아 "여가 장애인"이 되지 않도록 미리 조금씩 대비하는 지혜를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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